
숙소를 나선지 자그마치 세 시간 만에 지나가는 자전거를 봤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부엔 까미노" 하고 엄청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자전거 순례객은 우리와 순례의 리듬이 많이 다르다. 그들은 아마도 이 길이 잘못된 길이더라도 빨리 원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른 길을 알고 있어도 걷는 순례객들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사람의 속도와 자전거의 속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걷는 순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다보면 다음 마을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걷는 것밖에는 없다. 한참을 걷다보니 우리보다 앞서간 신혼부부와 옌스는 보이지도 않고, 우리 뒤에 쳐진 미국 할머니도 일부러 사진 찍으며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산티아고 2017.6.24(39,340걸음) 조용하고 미스테리한 마을, 조용하고 미스테리한 알베르게에서 잘 자고 일찍 길을 나섰다. 이 마을, 이 알베르게에서 묵은 건 꼭 꿈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발하려고 나왔는데 숙소에는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아무도 없었다. 옌스는 콜라를 우리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기다리면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독일판 노홍철같은 옌스와 알베르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늑장을 부렸는데, 끝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인 신혼부부는 언제나 조금밖에 걷지 않는데 오늘은 23킬로는 가야 첫마을이 나온다며 겁을 먹고 우리보다 일찍 길을 나선 터였다. 옌스와 함께 공립 알베르게 앞을 지나는데, 어제의 미국..

느티나무 숲에서 늘어지게 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집들이 몇개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의 14킬로만에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이제 물집은 거의 나았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쉴 틈 없이 14킬로를 걸으면 다리가 너무 무겁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도 쉬는 것에 대한 룰이 생긴다. 길에 배낭을 깔고 앉아 쉬거나 겨우 하나 있는 나무 그늘에 들어가 쉬거나 하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의자에 앉아 시원한 것을 마시며 신발을 다 벗고 발에 크림도 바르고 마사지도 하면서 쉬어야 진짜 쉰 것이다. 그러니 14킬로 만에 만난 바는 우리가 진짜 쉬어가야 하는 곳이다. 도대체 우린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거지? 하며 고민에 빠져있다. 오면서 사람을 한사..

로지가 소개해준 ‘사하건’이란 마을은 정말로 꽤 큰 도시였다. 마을 입구부터 뭔가 으리으리하다. 버스 정류장도 있다는 정보를 얻어 우리는 아침 먹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버스정류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적재적소에 길을 안내하는 표시가 있기 때문에 그다지 두리번거릴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처럼 순례길이 아닌 다른 것을 찾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버스정류장 이정표라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웃도어 매장이 보인다. 게다가 이날은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어서 문도 열었다. 여기서 옷을 살 수 있다면 굳이 버스를 탈 필요도 없기 때문에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적당히 입을 옷이 있어서 두개를 샀다. 겨우 10유로니 우리나라 돈으로 13,000원이다. 생각..

산티아고 2017.6.23(37,005걸음) 오늘은 모라티노스에서 칼자딜라 데 로스 헤르마닐로스(이렇게 긴 이름이라니...)까지 걸었다. 어제 전 마을에 숙소가 없어 남들보다 3킬로나 더 걸어와서 얻은 숙소는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제 저녁에 베드버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오늘 버스 정류장을 만나면 버스를 타고 큰 도시로 가기로 이미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아침에 늦게까지 잠을 잤다. 아마 숙소가 편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늦잠을 자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을텐데 정말로 편안한 숙소여서 늦게까지 잘 수 있었다. 어제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방법을 검색해 보니 버스를 타고 이틀치의 거리만 가면 큰 도시인 ‘레옹’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레옹을 가기 전에는 그 도시가 얼마나 큰지는 몰랐지만 산티아고를 ..

마을 없이 17킬로를 가야한다는 긴장감이 우리에게 힘이 됐을까 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쯤 차도에 지나가던 차가 한대 서서 아저씨가 우리에게 뭐라고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혹시 차가 고장이 나서 우리보고 밀어달라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더위에 하루 종일 걸은 우리가 그 차를 밀어줄 힘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차에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아저씨가 우리에게 요구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걸으면서 자기를 보고 손을 흔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우리도 신이 나서 손도 흔들고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도 해 주었다. 아저씨가 고맙다고 하더니 차를 타고 가던 길을 계속 갔..

걱정했던 17킬로는 다행히 점심 때쯤 다 걷고 제대로된 카페가 있는 마을에 도착을 했다. 우리가 산 과일에는 스페인에서 처음 보는 납작한 복숭아가 있었다. 아기 엉덩이처럼 봉긋하게 생긴 복숭아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품종의 복숭아이다. 다른 때 같으면 카페에서 밥을 먹었을텐데, 오늘은 들고온 짐을 줄어야 하기 때문에 커피만 주문하고 과일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이 복숭아는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당도가 꽤 높은 복숭아이다. 아직 음료수도 남아있고, 에너지바도 있다. 이걸 여기서 안 먹으면 가는 내내 짐이다. 짐.. 이 카페에서 미국에서 온 에릭과 폴라를 만났다. 이들도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는 스타일이라 또 언제 헤어질지 몰라, 이번에는 같이 사진을 찍어 얼굴을 남기기로 했다. 에릭은 약..

산티아고 2017.6.22(48,783걸음) 오늘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템플로리아까지 걸으려 했는데, 도착한 목적지에 숙소가 없어서 3킬로 추가한 모라티노스까지 걸었다. 아침에 숙소를 나오면서 숙소 마당에 있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제 우리가 잔 숙소가 지금까지 중 최고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는 숙소였지만 싼 숙소라 그런지, 많은 순례객이 이용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아무튼 산티아고길의 악명 높은 베드버그가 있었나 보다. 드디어 나도 그 '베그버그'에 물렸다. 이렇게 아침에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베드버그에 물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낮에 걷는 동안은 발도 아프고 덥고 여러 가지로 걷는 데서 생기..

5시가 넘어서 이제 겨우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은 우리가 가장 늦게까지 걸은 날이 될 것이다. 마을에 다 왔는데 정말로 한발짝도 더 못 걸을 것 같아 마을 초입에서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검색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중심가가 나오고 거기에 알베르게도 있었다. 아직도 걸어야 하는데, 시간은 6시가 되고 있었다. 중심가로 접어들고 있는데 바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세상에나 거기에 우리가 무리해서 쫓아온 동지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폴라와 에릭이었다. 서로 보고 얼마나 좋아했던지.ㅋ 그들은 우리가 6시까지 34킬로나 걸어서 온 것이 대단하다고, 우리는 다시 너희를 만나서 너무 기쁘다고, 그 와중에 폴라는 자기가 오늘 묵는 알베르게가 너무 좋다고 자랑하고, 마침 ..

짐의 무게를 줄이겠다고 가지고 있는 물병에 물을 반만 채우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 앞에 나타난 길은 자그마치 16킬로나 곧게 뻗은 길이다. 처음에는 굴곡 없이 쭉쭉 뻗은 이 길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걸을수록 전혀 변화가 없는 이 길이 오히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자갈길이나 흙길이 있는 것보다 더 지루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길을 네시간이나 걸었다. 물병에 담아온 물은 겨우 반도 지나지 않아 바닥이 났다. 가지고 온 피규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함께 했음을 인증하려고 이렇게 놓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이 피규어까지 꺼내서 이렇게 사진을 찍은 이유가 있다. 너무나 지루한 이 길에서 뭔가 재미난 것이라도 해야 덜 지루할 것 같았다. 가운데는 아스팔트 길이 곧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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