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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22(48,783걸음)
오늘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템플로리아까지 걸으려 했는데, 도착한 목적지에 숙소가 없어서 3킬로 추가한 모라티노스까지 걸었다.
아침에 숙소를 나오면서 숙소 마당에 있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제 우리가 잔 숙소가 지금까지 중 최고의 숙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는 숙소였지만 싼 숙소라 그런지, 많은 순례객이 이용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아무튼 산티아고길의 악명 높은 베드버그가 있었나 보다.
드디어 나도 그 '베그버그'에 물렸다.
이렇게 아침에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베드버그에 물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낮에 걷는 동안은 발도 아프고 덥고 여러 가지로 걷는 데서 생기는 고통이 많아서 더 베드버그에 물린 사실을 몰랐다.
베드버그의 악명은 이렇다.
베드버그는 모기처럼 한곳을 무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기어다니며(쓰면서도 끔찍하다ㅜㅜ) 수십군데를 문다.
베드버그에 물린 곳은 첫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둘째날부터는 미치도록 가렵고 아프다. 만약에 팔을 물렸다면 차라리 팔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렵다고 한다.
베드버그에 물린 곳은 이상하게 독이 퍼지듯이 점점 퍼져나가서 처음 물린 곳보다 더 많은 곳이 가렵고 아프다. 끝내는 물집이 잡히고 짓무른다.
베드버그는 물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짐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또 문다.
베드버그에 물린 후 가능하면 버릴 수 있는 짐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내짐 어디에 베드버그가 숨어있어서 나를 다시 공격할 수도 있고, 다른 숙소에 베드버그를 옮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베드버그에 물린 사람은 스스로 마치 전염병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아 멘탈이 붕괴된다.ㅜㅜ
사실 이 모든 베드버그에 대한 악명은 조금 과장 되긴 했다.
특히나 한국인들의 SNS를 보면 베드버그에 대한 공포심을 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베드버그에 대해 쿨한 자세를 보인다.
여행에 있어서 아직 초보인 사람들이 여행준비며 여행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요란한 편이다.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의 대처법은 이렇다.
모든 짐을 햇빛에 말려야 한다.
모든 옷가지는 물로 빨아야 한다.
가까운 약국에 가서 베드버그에 물렸다고 말하고 먹는 약을 사서 먹고, 바르는 약을 사서 발라야 한다. 약을 먹고 바르면 낫는 것은 아니고 견딜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고 바르지 않으면 고통이 계속 심해진다.
즉, 베드버그는 물과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빨 수 있는 것은 물로 헹궈 빨고, 빨 수 없는 것은 햇빛에 말리면 베드버그는 없어지는 것이다.
가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배낭과 모든 짐을 마치 플리마켓에서 물건 팔듯이 길가에 펼쳐놓고 있는 사람은 전날 베드버그에 물린 사람일 확률이 높다.
우리가 산티아고를 걸을 때 그런 사람을 보진 못했지만, 간단한 대처법이다.
특히 요즘 SNS로 베드버그 출몰 알베르게를 서로 알려주기 때문에 알베르게 측에서도 위생에 각별히 주위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알베르게 침대 시트를 하얀 것으로 쓰거나 일회용으로 쓰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베드버그가 있으면 하얀 시트에 검은 점이 조그맣게 보인단다. 그놈이 베드버그이다. 그러므로 하얀 시트에 눕기 전에 잘 살펴보면 베드버그를 잡을 수 있어서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하얀 시트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 쓰는 약은 한국에서 사간 벌레 물린데 쓰는 약보다는 현지 약이 더 잘 듣는다.
그러므로 베드버그에 물리면 현지 약국에 가서 현지약을 사먹으면 참을 수 있을 만큼만 아프니 참고하자.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하지만 사실 '복불복'이다.
침낭을 가지고 가서 침낭 안에 들어가 잔다.
침낭과 몸에 벌레 기피제를 뿌린다.
깨끗한 알베르게를 잘 고른다.
가능하면 이층 침대 중 이층에서 잔다. 많은 사람들이 편한 일층에서 자기 때문에 불편한 이층에 상대적으로 베드버그가 적다는 건데, 알 수는 없다.
아무튼 나도 이 때 베드버그에 물린 고통이 나머지 산티아고 길 내내 나의 몸과 정신을 힘들게 했고, 아직까지도 물린 곳에는 흉터가 남아 있긴 하다.
스페인은 워낙 땅이 넓다.
그동안은 밀밭이나 보리밭 그리고 포도밭이 많았었다.
오늘 오전에 걸을 때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물들이 넓게 심어져 있는 밭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콩이나 샐러드 재료 또는 허브 종류 등일 거라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무리 가까이 가서 봐도 우리가 정확히 아는 작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넓은 밭에 심어 놓은 작물에 이런 어마어마한 장비로 물을 주고 있었다.
언뜻 보면 경비행기 정도의 크기인 요상한 형태의 장비는 아래 바퀴까지 있어서 움직이면서 물을 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스프링쿨러나 점적 관수(호수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구멍으로 물이 뚝뚝 떨어져 밭에 물을 주는 시설) 정도로 밭에 물을 준다.
그것도 그나마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농가에서나 설치하지 대부분의 농가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 삼사 년 동안 봄에 가뭄이 심한 우리 나라의 날씨 때문에 농가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어마어마한 장비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농촌의 밭은 이렇게 대규모인 밭도 그다지 많지 않아 이렇게 큰 장비가 쓰일 수 있는 밭이 거의 없긴 하다.
농업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작은 땅은 참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스페인의 농가 옆을 걸으며 많이 들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은 우리나라의 농가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어두워진다.
또다시 허허벌판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남편이 오늘 걸을 코스를 확인하더니 17킬로를 걷는 동안 마을도 없고 카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 큰 슈퍼에 들려 물과 탄산음료를 페트병에 든 것으로 사고, 숙소 이층에 있는 간이 부엌 냉장고에 그것을 넣어 두었었다.
마을이 없으면 아침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과일도 여러 종류로 두둑히 사두었다.
아침에 나서면서 시원한 물과 음료수가 더위에 미지근해지지 말라고 수건으로 싸서 배낭 안에 고이 넣어가지고 나서는 세심함까지 발휘했다.
정말로 오전 내내 이렇게 허허벌판만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는 옆에 차도가 있어서 좀 시끄럽고 아스팔트의 열기 때문에 더 덥기도 했는데, 오늘은 조그만 자갈이 섞인 흙길을 걸어서 좀 덜 힘들었다.
그래도 이런 길은 그늘이 없기 때문에 오전에 시원할 때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오전 안에 우리가 17킬로를 다 걷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물과 음료수, 과일 때문에 남편의 배낭은 특별히 더 무거운 상태였다.
그런데, 산티아고 길에는 딱 죽겠을 때 카페나 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날이 되었다.
지도에도 없는 바가 7킬로 지점에 있었던 것이다.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밭 한 귀퉁이에 차려놓은 노점이기는 하지만 커피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온 것이 아까워 조금 더 가서 의자와 탁자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가서 싸들고 온 과일과 음료수를 먹었다.
오랫만에 정보를 검색해 17킬로 동안 아무것도 없다는 정도를 얻고 그에 대비해 무겁게 먹을 걸 싸들고 왔는데, 날로날로 변하는 산티아고 길의 정보가 그 사이 바뀌었던 것이다.
우린 다음부터는 절대로 먹을 걸 사서 짊어지고 걷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제 산꼭대기에서 만난 콜롬비아에서 온 환도 길에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어제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책을 읽다가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걷는 것에 자신이 있는 젊은이라 산티아고 순례길이 여유가 있는 듯하다.
우리는 걷는 게 가장 걱정이 되어 하루하루 걸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를 만났을 때도 환은 어제 그 책을 읽고 있었다.
한참을 자기가 읽은 데까지의 내용도 설명해 주었지만, 다는 못 알아들었다.
아무튼 하루이틀이면 다 읽을 듯하다.
우리만큼 걸음이 느린 외국인 부부이다.
남자가 좀더 못 걸어 여자에게 뒤쳐져 걷고 있다.
새롭게 나타난 우리만큼 잘 못 걷는 부부인 셈이다.
오전 내내 열번도 넘게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했다.
이들과는 곧 친한 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이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서 간단히 인사만 했다.
걷는 폼을 보면 발에 물집이 생겼을 것이고, 물집 때문에 저렇게 어기적어기적 걷는 걸 보면 걷기 시작한지 이제 삼사일 정도 됐을 것이다.
이때는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발이 아파’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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