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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숲에서 늘어지게 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집들이 몇개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의 14킬로만에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이제 물집은 거의 나았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쉴 틈 없이 14킬로를 걸으면 다리가 너무 무겁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도 쉬는 것에 대한 룰이 생긴다.
길에 배낭을 깔고 앉아 쉬거나 겨우 하나 있는 나무 그늘에 들어가 쉬거나 하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의자에 앉아 시원한 것을 마시며 신발을 다 벗고 발에 크림도 바르고 마사지도 하면서 쉬어야 진짜 쉰 것이다.
그러니 14킬로 만에 만난 바는 우리가 진짜 쉬어가야 하는 곳이다.

 

도대체 우린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거지? 하며 고민에 빠져있다.

 

오면서 사람을 한사람도 못 봤는데, 옆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려고 보니 둘은 한국 사람이고, 한 사람은 외국 사람이다.

그들의 이야기도 재미 있었다.
한국 사람은 최다환씨와 함지혜씨인데 지난 달에 결혼을 하고 산티아고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한다.
'와, 정말 멋진 신혼여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같은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를 했는데, 결혼 후에 홍천으로 귀농을 할 거라고 했다.
우리가 귀농하기 전 홍천에 가서 귀농 교육을 받았던 것과, 9년간 귀농 생활의 경력이 있던 것 때문에 우리는 금새 친해져 버렸다.

 

옆에 있던 외국인은 독일에서 온 옌스라는 사람인데, 스페인이 좋아 산티아고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스페인 여자와 로멘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본업은 따로 있는데, 취미로 디제잉을 하는데 앞으로 계속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틈틈히 글을 쓰고 있는데, 책을 썼으면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친구도 만나고, 제2의 인생도 설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셋은 생장에서 같이 출발해서 알게 되었는데, 신혼 부부가 일정을 정해놓고 온게 아니라 하루에 10킬로도 걷고 15킬로도 걷고 하느라 많이 뒤쳐져서 걷는데, 옌스 형은 다리가 아파 느리게 걸어서 8일째 같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제주도에 사는 것, 귀농 생활도 해봤던 것, 대책 없이 갑자기 산티아고에 온 것 등 서로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맥주만 마실 계획이었던 우리는 식사도 주문을 했다.

 

어라? 이집 식사는 푸짐한데다 너무 맛이 좋았다.
우리가 밥 먹고 다음 마을까지 갈 생각이라고 하니까 다환씨 말이 다음 마을이 23킬로 이후에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하루 동안 걷는 거리이다.ㅜㅜ
그런데 그들도 정보를 정확히는 알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까 맥주 마신 마을에서부터 갈림길이어서 목적지에 가는 두가지 코스가 있다는 것도 이때 우리는 그들에게 처음 들었다.
그러니 그들이 잘 모른다지만 그들의 말에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보다는 하나라도 더 알고 있으니.

 

숙소 가격은 좀 비쌌다.
일반은 15유로이고 프라이빗 룸이라고 말하자면 독방은 40유로라고 했다.
이래저래 우리 한국 사람들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독일인 옌스가 “밥이 맛있고, 숙소가 편안하고, 친구도 있고, 우린 모두 피곤하고, 그러니 여기서 묵는 게 좋겠다.”라고 말해서 우리 모두 그러기로 했다.

그들도 오면서 아무도 못 봤다고 했는데, 계속 있어보니 아무도 오지 않아 그 숙소에는 우리 다섯만 묵었다.

 

잠시 후 할머니 두분이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자기들은 조금 더 가면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묵는데, 거긴 식당이 없어서 이쪽으로 식사를 하러 왔다고, 그리고 그 알베르게에는 자기 둘만 묵고 있단다. 헐~ 이 마을 뭐지???
그럼 이 마을 전체에 순례자는 우리 7명만 있는 것이다. 이게 뭔일인지.

 

우리는 그후 다시 이런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왜 이런 갈림길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7명은 모두 첫 산티아고 순례 중이었고, 아무도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에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추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우리 7명은 전부 아무런 정보를 사전에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산티아고를 걷고 싶어서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즉, 뭔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 길로 오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숙소 주인들도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스페인말만 하고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물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커뮤니티 디너를 하자고 했다.
그러니까 모두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숙소에 묵기로 한 사람들은 좀전에 점심을 먹었지만, 공립 알베르게에서 오신 할머니들을 위해 일찍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할머니 두분은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이름은 메리와 아넷으로 둘은 친구 사이라고 했다.
생장부터 시작했고, 산티아고까지 간 후에 산티아고에서 하루 더 자고 다시 걸어서 피스테라라는 곳까지 더 걸어가신다고 했다.
피스테라는 스페인 가장 서쪽 해안마을의 명칭으로 산티아고에서 100킬로 떨어진 마을로 거기에는 0킬로미터라는 표지석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땅끝 마을이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배낭이나 입고 있던 옷, 신발 등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환경 문제 때문에 그러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산티아고까지 걷겠다는 목표만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땅끝이기도 하고, 한달갈 육지만을 걸었서 산티아고를 가는데 거기에 가면 바다를 볼 수 있었서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어도 우리는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린 사방이 바다인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 바다가 그렇게 매력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소규모로 커뮤니티 디너를 즐기면 모두 함께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옌스가 자기의 가죽 지갑을 가지고 와서 그 안에다가 각자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그곳에 이름을 적으면 행운이 온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옌스는 그동안 산티아고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름을 그 지갑 안쪽에 모두 받았다고 한다.
옌스와는 페이스북 친구도 맺었는데, 그 후로도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참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리 할머니(하늘색 셔츠를 입은 분, 마치 미국 시트콤에 나오는 사람처럼 생겼다.ㅋ)는 며느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며느리와 아들이 만난 사연과 그리고 손자와 함께 삼대가 미국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같이 찍은 사진을 며느리에게 보내줄려고 하는데, 한국말로 문자를 쳐서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언제나 외국어인 영어로만 사는 며느리에게 친근한 한국말 문자를 보내 감동을 주소 싶으셨던 것 같다.
나이는 엄청 많아 보이시지만 반짝이는 아이이어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금방 답장이 오지는 않아 얼마나 며느리가 좋아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감동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메리와 아넷은 영어를 천천히 또박또박해서 나도 그들의 말은 거의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미스테리한 마을에서 만난 우리 7명은 저녁 내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내일 다른 순례자들과 다시 합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각자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메리와 아넷은 숙소가 달라 그들을 먼저 배웅하고 각자 잘 준비하는 동안 밖을 보니 아직 해는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환하다.

 

이날로 우리는 이제 산티아고 길을 걸은지 2주가 되었다.
그 어느 것도 지루할 틈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함께 밥 먹고 함께 자는 것도 언제나 새롭고 긴장되어 지루할 여유가 없었고.
걸으면서 발에 생기는 물집이나 다리에 생기는 통증, 게다가 베드버그에 물리는 일까지 한치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2주를 그저 걷기만 한 것 같지만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어서인지 멋진 산티아고 길이란 생각이 더 든다.
게다가 이날 우리를 더 지루하지 않게 만든 것은 미스테리한 마을뿐 아니라, 며칠 강행군해 찾은 친구를 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구글 지도만 가지고는 내일 우리의 가는 길과 목적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궁금증은 아마도 다시 친구들을 만나야 풀릴 듯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때 다른 길로 간 사람들이 묵은 알베르게에서 베드버그가 엄청나게 출몰해서 큰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마법처럼 우리는 베드버그를 피해 시크릿한 저녁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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