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나선지 자그마치 세 시간 만에 지나가는 자전거를 봤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부엔 까미노" 하고 엄청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자전거 순례객은 우리와 순례의 리듬이 많이 다르다. 그들은 아마도 이 길이 잘못된 길이더라도 빨리 원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른 길을 알고 있어도 걷는 순례객들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사람의 속도와 자전거의 속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걷는 순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다보면 다음 마을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걷는 것밖에는 없다. 한참을 걷다보니 우리보다 앞서간 신혼부부와 옌스는 보이지도 않고, 우리 뒤에 쳐진 미국 할머니도 일부러 사진 찍으며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바퀴 다 돌고 나서 우리는 육지에 추석을 쇠러 가기로 했다. 그해 추석은 10월 4일이었다. 넉넉잡고 20일 정도면 부모님이 사시는 경기도 광주까지 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추석 연휴를 가족들과 지내고 찬바람이 부는 11월이 되기 전에 제주도 집으로 돌아오자는 계획이었다. 지난번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완주한 후, 자전거 용품점에 가서 왠만한 준비물은 거의 샀다. 남편이 많은 자전거 중 영국산 수제 브롬톤 자전거를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자전거가 매우 튼튼해서 크게 고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먼저 접이식이지만 골격이 튼튼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자전거는 2단 자전거라 기어 변속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체인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으므로 체인이 끊길 염려도 ..
산티아고 2017.6.24(39,340걸음) 조용하고 미스테리한 마을, 조용하고 미스테리한 알베르게에서 잘 자고 일찍 길을 나섰다. 이 마을, 이 알베르게에서 묵은 건 꼭 꿈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발하려고 나왔는데 숙소에는 주인이든 종업원이든 아무도 없었다. 옌스는 콜라를 우리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기다리면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독일판 노홍철같은 옌스와 알베르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늑장을 부렸는데, 끝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인 신혼부부는 언제나 조금밖에 걷지 않는데 오늘은 23킬로는 가야 첫마을이 나온다며 겁을 먹고 우리보다 일찍 길을 나선 터였다. 옌스와 함께 공립 알베르게 앞을 지나는데, 어제의 미국..
이날 우리는 용두암에서 함덕까지, 다시 함덕에서 용두암까지 왕복을 하기로 했다. 용두암에서 함덕까지 25킬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왕복해야 50킬로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50킬로 정도는 쉽게 덤빌 수 있는 킬로수가 되었다. 처음엔 함덕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버스 배차 시간이 너무 길어 버스 시간표대로 움직이려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시련이 닥쳤다. 가파른 오르막을 찻길로 갈 것인가, 저기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것인가. 남편은 찻길은 오르막도 심하고 곡선이라 위험하다고 계단으로 가자며 먼저 가본다. 저러고 올라가야 한다. 자전거는 옆에 자전거 바퀴를 올리는 곳에 바퀴를 올리고 굴리면서, 사람은 옆에서 계단을..
느티나무 숲에서 늘어지게 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집들이 몇개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의 14킬로만에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이제 물집은 거의 나았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쉴 틈 없이 14킬로를 걸으면 다리가 너무 무겁다. 이쯤 되면 우리에게도 쉬는 것에 대한 룰이 생긴다. 길에 배낭을 깔고 앉아 쉬거나 겨우 하나 있는 나무 그늘에 들어가 쉬거나 하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의자에 앉아 시원한 것을 마시며 신발을 다 벗고 발에 크림도 바르고 마사지도 하면서 쉬어야 진짜 쉰 것이다. 그러니 14킬로 만에 만난 바는 우리가 진짜 쉬어가야 하는 곳이다. 도대체 우린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거지? 하며 고민에 빠져있다. 오면서 사람을 한사..
이번 코스는 법환바당인증센터에서 쇠소깍 인증센터를 지나 표선해변 인증센터까지 48킬로를 달리는 코스이다. 제주도에 살고 있으므로 언제나 자전거를 타러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렇게 이어서 제주도를 한바퀴 완주를 하려니 출발지점까지 가는 것이 항상 문제이다. 다행히 우리 자전거는 착착 접히는 접이식 자전거라 언제나 차에 싣고 출발점에 갈 수는 있지만, 출발점에 차를 주차하고 목적지까지 갔다가 다시 출발지점으로 자전거를 타고 와야 한다는 애로점이 있다. 그렇다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자니, 버스도 택시도 만만치 않다. 우선 버스는 최근 제주도에서 버스만 이용해서 제주도 관광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노선을 많이 늘리고, 간선과 지선으로 구분하여 멀리가는 버스와 가까운 곳 가는 버스를 구분해 놓았지만, 너무 ..
비가 그치고 며칠 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는 아예 밖에서 잘 생각을 하고 비가 올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계속 제주도를 돌아보자는 생각에 세면도구에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서 길을 나섰다. 육지로 국토종주 여행을 가면 자전거에 어느 정도까지 짐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도 테스트해봐야 하고, 가지고 간 짐을 싣고 하루종일 잘 달릴 수 있을 지도 확인해 봐야해서, 한번쯤 시도해 봐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번에 해거름 공원까지 탔으니 거기부터 이어서 타야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 반 걸려 해거름 공원까지 갔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자전거를 탈 것이므로 이번에는 차로 출발점까지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어쩌면..
로지가 소개해준 ‘사하건’이란 마을은 정말로 꽤 큰 도시였다. 마을 입구부터 뭔가 으리으리하다. 버스 정류장도 있다는 정보를 얻어 우리는 아침 먹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버스정류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순례길을 걸을 때는 적재적소에 길을 안내하는 표시가 있기 때문에 그다지 두리번거릴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처럼 순례길이 아닌 다른 것을 찾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두리번거리게 된다. 버스정류장 이정표라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웃도어 매장이 보인다. 게다가 이날은 주말도 아니고 평일이어서 문도 열었다. 여기서 옷을 살 수 있다면 굳이 버스를 탈 필요도 없기 때문에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적당히 입을 옷이 있어서 두개를 샀다. 겨우 10유로니 우리나라 돈으로 13,000원이다. 생각..
이제 자전거 수첩도 왔으니 인증 도장을 수첩에 직접 찍을 수 있다. 며칠 시간을 내서 한번에 싹 완주를 하고 싶었지만, 날씨가 계속 비예보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해만 나면 자전거를 끌고 나가기로 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소개하는 코스를 보면 시작이 용두암 인증센터부터이다. 그러므로 이제 자전거 수첩도 있겠다 무조건 시작은 용두암 인증센터부터이다.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방향도 있다고 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주도는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딱히 바람의 저항이 적은 방향을 정하기가 어렵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돌면 되지 싶다. 그래도 시작은 용두암 인증센터부터 하는 걸로.ㅋ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의 '유인' 인증센터가 용두암..
산티아고 2017.6.23(37,005걸음) 오늘은 모라티노스에서 칼자딜라 데 로스 헤르마닐로스(이렇게 긴 이름이라니...)까지 걸었다. 어제 전 마을에 숙소가 없어 남들보다 3킬로나 더 걸어와서 얻은 숙소는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제 저녁에 베드버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오늘 버스 정류장을 만나면 버스를 타고 큰 도시로 가기로 이미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아침에 늦게까지 잠을 잤다. 아마 숙소가 편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늦잠을 자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을텐데 정말로 편안한 숙소여서 늦게까지 잘 수 있었다. 어제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방법을 검색해 보니 버스를 타고 이틀치의 거리만 가면 큰 도시인 ‘레옹’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레옹을 가기 전에는 그 도시가 얼마나 큰지는 몰랐지만 산티아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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