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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며칠 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는 아예 밖에서 잘 생각을 하고 비가 올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계속 제주도를 돌아보자는 생각에 세면도구에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서 길을 나섰다.
육지로 국토종주 여행을 가면 자전거에 어느 정도까지 짐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도 테스트해봐야 하고, 가지고 간 짐을 싣고 하루종일 잘 달릴 수 있을 지도 확인해 봐야해서, 한번쯤 시도해 봐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번에 해거름 공원까지 탔으니 거기부터 이어서 타야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 반 걸려 해거름 공원까지 갔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자전거를 탈 것이므로 이번에는 차로 출발점까지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어쩌면 이대로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완주해 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다.
버스를 타는데 운전수 아저씨가 처음에는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우리 자전거를 보시고는 자전거가 의자 시트에 걸려 시트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승차를 승락해주셨다.
아마도 자전거를 싣는다고 하니 큰 자전거인 줄 알았는데, 차곡차곡 접혀 가방만해진 자전거를 보고 뻘쭘하셨던 것 같다.
우리 자전거는 대중교통에 실을 수 있는 국제 규격을 지키는 작은 사이즈의 자전거라 사실 승차 거부를 할 수 없다.
아저씨도 까칠하게 구실려고 하다가 우리 자전거의 사이즈를 보고 더이상 말씀을 못하신 것 같았다.
아무튼 제주를 한바퀴 도는 이 버스는 해안가 거의 모든 마을에 서면서 서귀포 쪽으로 가는 것이라 목적지까지 가는데 좀 오래 걸렸다.
해거름 공원에서 다음 인증센터인 송악산인증센터까지는 34킬로이다.
거리는 매우 길지만 길이 평지이고, 한적한 해안도로라고 하니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닐 듯 싶다.
버스에서 내려 오늘 우리가 갈 코스를 앱으로 확인하는데, 길가에는 가을이라 코스모스도 보인다.
한참을 달리다가 멋진 바다와 섬이 보이면 자전거를 멈추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길이 한적해서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경치도 아주 멋지다.
방파제 근처에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지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가 하고 있다.
이 해안도로는 자전거도로이기도 하고 올레길이기도 하다.
올레길을 표시하는 리본이 군데군데 묶여있다.
제주 바다는 어디나 멋진 사진이 된다.
송악산 도착 5킬로 정도 남기고 유명한 '옥돔식당'이 있다.
보말칼국수가 엄청 유명한데, 우리하고는 언제나 인연이 안 닿던 가게였다.
제주도 이사오기 전에도 두어번 왔었는데, 매번 문이 닫혀있어서 칼국수를 먹어보질 못했다.
두어번 헛걸음을 하고 나는 이집이 어쩌면 망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나 티비에서 제주도 칼국수 하면 이집이 꼭 나오곤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이 집은 11시에 문을 열어 4시면 끝난다.
그것도 언제나 재료 소진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몰리는 날은 4시 이전에도 영업이 끝나기도 한다.
전에 왔을 때도 올때마다 재료 소진으로 영업이 끝났거나 정기휴일(매주 수요일이다.)이어서 아직 한번도 못 먹어봤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아직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는 이 식당 옆을 지나게 된 것이다.
완전 횡재였고, 먹어보니 소문대로 정말 맛있었다.
국물이 걸죽한 것이 완전 진국이다.
이날도 사실 조금만 늦었어도 못 먹을 뻔했다.
칼국수를 다 먹고 나오는데 이 팻말이 붙어 있었다.
겨우 3시쯤이었는데, 재료가 다 떨어진 것이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업업이 끝나서 한가해지신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자전거가 신기하다며 이것저것 물으신다.
엄청 작다고, 신기하게 접힌다고, 예쁘다고 하시면서.
우린 아주머니 식당이 더 신기하구만.ㅋ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한참을 달리는데, 앞에 멋지게 바다가 펼쳐진다.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전거는 정차 중 세우는 거치대가 없다.
뒷바퀴를 접어서 정차를 해야 하는데, 한참 달리다가 멋진 풍경이 나오면 바퀴 접을 겨를도 없어서 이렇게 내팽개치다시피 세워두고 사진부터 찍는다.ㅋ
자전거 도로로 계속 달려가면 마치 바다로 들어가 버릴 것같은 그런 길이다.
송악산도 보이고, 형제섬도 보인다.
형제섬 앞을 지나는 노란색 배는 여전히 그 앞을 왔다갔다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PpBiDShxBg
제주도 해안도로 라이딩이 이렇게 신남.ㅋ
처음 자전거를 사서 탈 때도 이렇게 동영상을 찍었었는데, 그때랑 완전 자세도 다르고, 뒷모습에서 풍기는 여유로움도 다르다.
자전거 타는 것이 많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풍경도 멋져서 라이딩 인생 동영상 하나를 건진 듯하다.ㅋ
https://www.youtube.com/watch?v=Pf6rPFM0iOk
해안도로를 따라 바람을 가르며 송악산을 향해 달려본다.ㅋ
차르르르르르르르륵^^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도 안되게 신나는 해안도로 라이딩을 하며 송악산인증센터에 도착한다.
다음 코스는 송악산에서 법환마당 인증센터까지인데 거리는 31킬로이다.
그런데 이 코스는 오르막이 너무 심해 엄청 힘들다고 한다.
천천히 가기에는 오르막이 너무 길어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빠르게 가기에는 허벅지가 터지고 숨이 바닥까지 다 쉬어져 넘어갈 거 같은 그런 끝없이 급격한 오르막이 계속 되는 완전 죽음의 코스이다.ㅜ
오르막 중간쯤 너무 힘들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하며 걷고 있는데, 젊은 청년 한명이 우리처럼 끌바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자전거가 커도 이 언덕은 한번에 절대로 못 오르는 구간인 듯하다.
게다가 청년은 국토 종주 중이어서 엄청나게 큰 배낭도 메고 있었다.
종아리며 허벅지까지 쥐가 난다며 국토 종주 만만히 생각하면 큰일 난다며 우리와 함께 한참을 끌바를 했다.
언덕을 거의 올라갈 때쯤 앞에서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다시 되돌아서 내려온다.
순간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길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니고 아저씨 자전거의 체인이 끊어져서 다시 내려가 어딘가에서 수리를 하고 가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그리고 배 타고 제주에 어제 도착해 종주 중이라는 아저씨는 텐트까지 짊어지고 종주 중이라고 하셨다.
제주도는 해안가 아무데서나 텐트를 치고 잘 수 있어서 이런 날씨에 종주하기에 참 좋은 섬이라고 하시지만, 체인 때문에 약간 짜증은 나신 것 같았다.
우리 자전거가 특이하게 생겨서 아저씨는 우리를 아까부터 봤다고 하신다.
아저씨는 체인 고장난 김에 우리는 허벅지가 너무 아픈 김에 앉아서 국토종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쉬었다.
아저씨는 체인 때문에 근처 해변에서 오늘 밤 주무시고 가신다고 하시고, 우리는 법환마당 인증센터까지 더 달려서 왔다.
여기까지 이날 총 65킬로를 달려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달렸던 하루 거리 중 최고로 길게 달린 거리이다.
자전거에 바람 보충하고 나니 어두워졌다.
주변에는 관광객도 많았고, 음식점에는 빼곡히 손님들이 차서 왁자지껄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이날은 짐도 챙겨 왔으니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자야했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서 가격을 알아보니 일박에 8만원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여기는 서귀포시이니까 우리집인 제주시의 완전 반대 쪽이다.
그래도 근처에 집을 두고 비싼 게스트하우스에서 잘려고 하니 갑자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서 버스를 타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서귀포 터미널까지 찾아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면 해안 마을을 모두 들려서 제주시를 가게 될텐데... 그럼 너무 늦어질 것이다.
그래서 앱으로 택시비를 알아봤더니 35,000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저녁 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박을 하느니 택시 타고 집에 가서 자고 다시 오는 게 경비도 덜 든다.
그래서 아침 계획과 달리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집까지 오는 내내 택시 아저씨가 정치 얘기를 너무 수다스럽게 하셔서 엄청 피곤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탄 우리는 아저씨 얘기를 들으면서 몰래몰래 졸아야 했다.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이렇게 그냥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제주도에 사는 혜택인 것 같다.ㅋ
인증 도장으로 치면 열개 중 다섯개 찍었으니 환상 자전거길의 반은 한거다.
이 수첩 없을 때 함덕에서 표선까지 이미 돌았지만, 도장 때문에 다시 돌아야겠지?
거긴 자전거 도로 상황이 양호하니 가볍게 다시 돌아도 좋을 구간이다.
지도로 보니 제주시에서 반대편 서귀포시까지 돌았다.
밖에서 자고 다시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는 연습은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간단히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가지고 자전거를 하루종일 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생겼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없으므로 정말로 간소한 짐만 챙겨서 자전거에 부착된 가방에 빵빵하게 챙겨야 한다.
우리 가방으로도 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하루에 달리는 거리도 길어지고, 점점 육지로의 자전거 여행 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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