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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라이딩을 끝내고 집근처 이마트에 가서 가방을 하나 샀다.
자전거에 달린 가방은 아직 그 적절한 용도를 찾지 못했고, 아무래도 핸드폰과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다닐 가방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많이 메고 다니는 어깨 가방으로 하나 장만했다.

아무래도 국토종주를 하려면 소지품 넣을 가방과 여행용품 넣을 가방이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이니 장착하고 라이딩하는 연습을 하자며 일찌감치 생각해 두었던 가방을 샀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려면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
유럽 여행을 가듯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닐 수는 없다.
아마도 내 자전거에 달린 조그만 가방에 모든 여행용품을 담아야 할 것이다.
슬슬 국토종주 때 가지고 갈 짐에 대한 고민도 시작해봐야 했다.

이날은 성산 일출봉에서부터 표선해변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국토종주를 하려면 매일 자전거로 장거리 달리는 연습을 하겠다고 전날도 자전거를 탔는데, 이어서 다음날도 아침부터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 것이다.
아침에 집근처에 있는 '마녀김밥' 집에서 김밥 네 줄을 사서 출발했다.
이 김밥집은 김밥에 소세지를 안 넣고 간 고기를 볶아서 넣었다.
김밥 한줄이 1인분일 정도로 두툼한 김밥이다.
아침에 한줄씩 먹었는데, 점심 때가 훨씬 넘어서까지 든든하다.
점심에 마저 먹으니 하루 식사를 김밥 네줄로 가뿐히 해결한 느낌.ㅋ
국토종주 때는 어떻게 식사를 해결하지?
우리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은 맛집화되어 있는 느낌이 다분히 있지만,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몇 시간씩 시골길을 달리게 되면 어쩜 이렇게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날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과 나의 여행 스타일은 닥치는 대로 해결하는 스타일이라 특별히 코스별로 식당을 검색해두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것도 닥쳐서 해결하는 걸로 했다.
굶기야 하겠어??

우리 집 근처 진짜 맛있는 김밥집

소세지나 햄 대신 간 고기를 볶아서 넣어준다.

이날은 이틀 연속 자전거를 타는 날이라 안장통이 많이 걱정되었다.
출발하려고 자전거 안장에 착석하자마자 역시나 엉덩이에 꼭 불이 나는 것처럼 아팠다.ㅜㅜ
이날 우리의 코스는 우선 차로 성산 일출봉 주차장까지 간 후에 거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표선해변까지 간다. 그리고 다시 표선 해변에서 차가 있는 성산 일출봉까지 자전거로 돌아와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이었다.

성산 일출봉에서 표선까지가는 것은 거의 내리막이어서 신나게 달렸는데, 다시 성산일출봉으로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이 불고 길은 오르막이고 해서 아주 많이 힘들었다.
자전거를 탈 때 앞에서 바람이 부는 것과 뒤에서 바람이 부는 것은 천지차이가 난다.
뒤에서 바람이 불면 마치 누군가 내 자전거를 밀어주는 거 같아 수월하지만, 앞에서 바람이 불면 엄청나게 패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게다가 우리 자전거에는 앞에 가방이 달려 있어서 더 바람의 장애가 심하다.
그래서 보통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거나, 뒷쪽에 가방을 옆으로 장착하고 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내몸 하나도 못 가누는 나에게는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는 건 완전 고난이도라 엄두도 못낸다.
남편은 자전거를 잘 타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배낭을 등에 짊어지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힘든 안장통이 더 심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딱 요만큼의 장비로 라이딩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주도 바닷 바람이 앞에서 불면 그때부터는 바람과의 전쟁이다.
그러니 오르막에서 제주도 바닷바람이 앞에서 불었다? 죽은 거지, 뭐....

인증센터 옆에 누가봐도 제주도스러운 돌하르방과 야자나무가 있다.
바닷가에는 늦은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을 위해서 쿵짝쿵짝 신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고, 해수욕장 주차장에는 바다에서 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왔는지 차들이 꽉 들어차 있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가서 화장실만 사용하고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에서의 화장실 인심은 참 좋다.
외국 여행을 가면 화장실을 찾기도 어렵지만 겨우 찾은 화장실도 유료 화장실인 경우가 참 많았다.
돈내고 화장실을 가는 것은 완전 문화적 충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표선해변 인증센터에서도 그냥 손등에 도장을 찍었다.
아직도 인증 수첩이 도착을 안해서 수첩에 도장은 못 찍고 이렇게 인증샷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실 모바일 인증수첩도 있다는데, 그땐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라서 이렇게 인증센터만 보면 도장을 못 찍는 것이 안타깝고 그랬다.
인증 수첩 넣을 가방까지 먼저 장만한 난 설레발??ㅋ
모바일 인증 수첩을 핸드폰에 깔아두면 인증센터 근처에 가면 앱에 도장이 저절로 찍힌다.
나중에 앱을 깔아서 그것도 써 봤는데, 아무래도 진짜 수첩에 스템프를 꾹꾹 눌러 찍는 맛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리고 만약 인증 수첩이 없을 경우에는 인증센터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흰 종이에 인증센터에 있는 도장을 찍어 두면 나중에 완주 확인을 받을 때 사진과 도장을 확인하고 인정해 준다는 것도 알았다.
이때는 그것도 몰라서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 여긴 다시 한번 돌자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온김에 찍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여전히 있었다.

성산 일출봉 이후 해안도로에는 포장마차에서 회 파는 곳은 가끔 있는데, 카페도 없고 가게도 없고 흔한 편의점도 겨우 하나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곳곳에 쉴 수 있는 정자도 있고 바다 풍경도 멋지고 한적한 것이, 여기도 마찬가지로 환상 자전거길임을 입증한다.
나는 패달을 밟지 않고 체인 소리만 차르르르르르 내면서 달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 코스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마치 끝없는 바닷가 옆 해안도로를 '매우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처럼 달리는 기분이 드는 그런 코스이다.
그리고 이쪽 해안 도로에는 널찍한 자전거 도로도 확보되어 있어서 아주 안전하다.

목 타 죽겠을 때쯤 나타난 편의점에서 2리터 짜리 물을 사서 반 이상 그 자리에서 마셔버렸다.
정말로 물이 끝없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 코스를 라이딩하고 싶다면 반드시 생수는 사들고 시작해야 한다.
사진처럼 이 코스는 하늘도 바다도 멋지고, 예쁜 등대도 보이고 길은 넓고 자전거 도로도 확보되어 있고, 차도 별로 안 다니고 관광객의 셀카 지뢰도 없는 곳이다.
신나는 라이딩이 가능한 코스이다.
단, 방향은 성산 일출봉에서 표선해변 쪽으로 달려야 한다.

42킬로를 달렸다.
라이딩을 한번 더 나가면 드디어 서귀포다.
서귀포까지 가면 코스로만 보면 제주도를 반바퀴 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전날 버스를 타보고 좀 고생을 해서 다시 차로 출발점까지 왔다.
그래서 차를 주차해놓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다시 차 있는 곳까지 돌아오느라고 매번 왕복을 하니 빨갛게 표시된 길을 두번 달린 셈이다. 그러니 거리상으로는 곧 제주도를 한바퀴는 돌게 되는 거리이다.

이날 최종 42.56킬로를 달렸는데, 40킬로가 넘으면 안장통과 손목통, 무릎통이 극에 달한다.
통증은 심해지지만, 점점 자전거는 잘 탄다.
그래서 나는 점점 국토종주가 만만해지고 있었다.ㅋ
처음 자전거를 살때 얘기했듯이 '나는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도 반바퀴 돌고 국토종주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주도를 한바퀴 돌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이런 지도도 찾아두었다.

이 지도를 보니 제주도에는 10개의 인증 센터가 있는 듯하다.
모두 가 주겠어.^^

그리고 다음날은 도저히 안장통이 심해서 더이상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우선 엉덩이의 통증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쉬기로 했다.
"쉬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면 다시 아픈 게 안장통."이란 절망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엉덩이에 굳은 살이 생기면 안장통이 없어진다"는 믿을 수 없는 말도 들었다. 엉덩이 살에 굳은 살이 생기는 일이 가능한가?
아무튼 국토 종주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안장통인 듯했다.

이렇게 안장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며칠 쉬는데, 드디어 인증 수첩이 도착했다.

여권만한 크기의 인증수첩과 전국의 자전거길을 알려주는 노선도가 들어 있었다.
이 수첩을 받고 나니 당장 떠나고 싶어졌다.

수첩 첫장에 나름의 포부를 적어보기도 하고, 이 순간부터 우리는 꿈을 꾸기 시작한 듯하다.

안장통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데, 그때 제주도에 가을비가 며칠 동안 추적추적 내렸다.
인증수첩 받고 풍선처럼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공부도 했다.

공부는 개뿔!!
온통 머릿 속에 자전거 생각만 가득차 있다.

딱 요렇게 하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랬다.ㅜㅜ

 

https://www.youtube.com/watch?v=bsehnRZj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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