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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이사짐에 싣고 제주도로 왔지만, 일상생활에서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 생각처럼 잘 되질 않았다.
우선 이사오고 처음 맞는 제주도 겨울은 황당하지만 추웠다.
난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으니 겨울이 그리 춥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울이 되니 제주도도 추웠다.
그래서 첫 겨울에는 자전거를 탈 엄두도 못냈다.
봄이 되는 3월 첫날 자전거를 끌고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꺼낸 자전거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도선관으로 갔는데, 도서관 마당 자전거 거치대에 우리 자전거를 나란히 주차해 두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분심만 들었다.
저기에 우리 자전거가 있는데... 창가에 앉아서 책을 보는건지 자전거를 지키고 있는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꾸만 눈이 간다. 그래서 자전거 타고 도서관 다니기는 몇번 해보고 포기.ㅜㅜ
그리고 우리는 산티아고에 가서 한달을 걷고 돌아왔고, 식구들이 그런 우리를 보겠다고 여름 휴가를 제주도로 왔다. 형제들이 대부분 라이딩을 즐기기 때문에 자전거를 대여해서 제주도 해안가를 달려보기로 했다. 김녕해변에서 명진 전복(엄청 유명한 전복비빔밥집)까지 갔다 다시 김녕해변으로 돌아오는 라이딩을 했다.
아빠와 여동생.
오빠와 조카(무려 초등학생).
여전히 어설프게 자전거를 타는 나.
남편은 혹시 중간에 낙오하는 사람을 위해 승용차로 천천히 따라오고, 실제 아빠가 더는 못 타시겠다고 중간에 포기.
이렇게 멋진 제주도 해안 도로에서 라이딩을 해보니 더이상 우리의 자전거 여행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 자전거 여행'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가을이 되면서 제주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열대야도 폭염주의보도 바깥활동 자제도 없는 가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추석에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가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선 제주도 해안도로를 한바퀴 돌면서 장거리 라이딩 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오랫만에 타는 자전거라 잠깐 타볼까?하고 나갔다가 날씨도 좋고 너무 신나서 그만 너무 멀리 가버렸다.
우리 자전거는 접이식 자전거이기 때문에 착착 접어서 트렁크에 자전거 두대를 싣고 함덕 해수욕장으로 갔다. 함덕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자전거를 꺼내 착착 펴서 라이딩을 시작한 것이다. 이때 우리는 하나 착각한 것이 있었다. 자전거로 갔던 거리를 다시 돌아와야 다시 차에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온다는 것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그리곤 날씨 좋다고 신나게 달렸으니...ㅜㅜ
아무튼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출발했는데 22킬로나 간 것이다. 다시 돌아와야 하니 22킬로를 더 달려야 했다.
그래도 제주도 해안 도로의 경치는 절경이었다.
날씨가 좋으니 신이 안 날 수가 없다. 해안가에 멋진 돌, 그리고 쓰여진 글귀.
제돌이의 꿈은 바다였습니다.
왠지 멋진 문구에 멋진 돌멩이라며 사진도 찍고,
자전거도 이번 여행의 주인공이니 같이 꼭 사진 찍어주고.
이때만 해도 사람들의 휴가가 아직 안 끝났는지, 해안가에는 아직도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함덕, 김녕, 월정리 해수욕장을 지났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자전거를 잘 못타는 나한테는 완전 고욕이었다. 해안가 옆으로 인도도 있고 자전거 도로도 있고 차도도 있는데, 관광객이 많은 해안가에서는 사람과 자전거와 차가 서로 뒤죽박죽으로 엉켜있기 일쑤였다. 특히나 이날 우리가 라이딩을 한 구간이 바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라서 언제나 관광객이 붐빈다. 길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웠다. 따르릉따르릉해도 셀카에 빠진 사람은 도통 자전거가 오는지 눈치를 못챈다.ㅜ 난 그럴 때마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특히 월정리 해변에서는 계속 그냥 내려서 걸었다.
이렇게 신나게 가다가 더는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돌아서 다시 그 관광객 많은 해안가를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얼른 깜깜해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데, 바다로 지는 해는 왜그리 예쁜지...ㅜ 이번에는 우리가 관광객 모드가 되어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주도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때만 해도 앞에 가는 남편의 자전거가 보였다.
바다에 해가 퐁하고 빠지는 순간의 사진을 찍느라 더 늦어졌다. 아무튼 이런 인생샷 하나 건져보겠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는 다시 출발~~
이제 하늘은 껌껌해지고 바다에는 오징어 잡이 배에서 켜놓은 등만 보인다. 캬~ 이것도 멋지다.
우리 앞의 길은 이제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야간 라이딩은 생각도 안한데다가 준비도 안 되어 있어서 우리도 우리 옆에 지나가는 차도 서로 긴장긴장해야했다.
야간 라이딩을 위해서는 야광 옷을 입던지, 깜박깜박하는 경광등을 헬멧과 자전고 후방에 달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지나가는 차들이 앞에 자전거가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전거 앞에는 라이트도 환한 것으로 달아야 한다. 밤에는 노면의 상태가 보이지 않으므로 어떤 장애물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라이트는 필수이다.
그런데, 우린 이런 것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자전거에 장착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경광등만 하나씩 있어서 우선은 헬멧에만 하나씩 달고 조심조심 차가 있는 함덕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앞을 주시하는데, 혹시 눈 한번 깜빡일 때 돌뿌리에라도 걸릴까봐 나는 거의 눈을 한번도 깜빡이지 않고 달린 것 같다. 나중에는 눈에서 눈물이 질금질금 났다.ㅜㅜ
조심조심 겨우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너무 긴장하며 자전거를 타고 와서 눈이 핑핑 돈다. 무사히 돌아온 기념 셀카를 찍었는데, 마치 울 것 같다.
자전거 타고 어디까지 가봤니?
어쨌든 우린 44킬로를 4시간 동안 달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본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어? 잘하면 자전거 타고 서울 가겠는걸??ㅋ 자전거 여행이 위험하다니 이런 거 하나 만들어 등에 붙이고 갈까?ㅋ
물론 40킬로가 넘으면 안장통도 무지하게 심하고 무릎, 어깨, 손목 안 아픈 곳이 없지만 자전거 라이딩은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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