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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축제에서 꽃구경 잘하고 신나게 시골길을 달리다 남편 자전거에 빵구가 났다.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꼭 겪을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린 튼튼한 우리 자전거만 믿고 빵구가 나는 것에 대한 대비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1킬로미터 내에 자전거 가게가 있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보기로 했다.
빵구가 너무 확! 나버려서 남편 자전거를 내 자전거 안장에 접어서 올리고 나는 앞에서 내 자전거 핸들을 잡고 걷고, 남편은 뒤에서 안장 위에 있는 본인 자전거를 잡고 걷고...
어정쩡한 자세로 걷다보니 1킬로도 꽤 멀게 느껴졌다.
빵구가 난 곳은 경상도 '남지'라는 곳인데 자전거 가게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자전거의 발상지란다. 믿거나 말거나.ㅋ

 

바람이 빠지려니 순식간이다. 완전히 바람이 빠져서 한발짝도 자전거를 타고 나갈 수가 없다.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우리같은 자전거는 태어나서 처음 보셨다는데도 열심히 고쳐주시고, 빵구 났을 때 응급조치하는 요령도 알려주신다.
빵구를 떼우는데 필요한 물품도 우린 이제야 장만하기로...

일명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자전거 여행 중 빵구나는 건 큰일이 아니니 당황하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자전거가 특이해서 시골에서 고장이 나면 자전거 가게에 가도 고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구 브롬톤 매장에 '체인링' 교체하러 가면, 예비 튜브도 살 생각이다.
빵구를 떼워준 아저씨 말씀이 아저씨 가게에 우리 바퀴에 맞는 튜브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 자전거는 일반 미니 벨로의 바퀴보다 조금 더 작은 바퀴여서 그렇다고 한다.
특이한 자전거를 살 줄은 알지만, 그에 맞는 대비는 전혀 안 된 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빵구보다 당혹스런 일은 다음에 나타난 길에 있었다.
바로 엄청난 고갯길...
자전거에서 내려 끝없이 끌고 가야했다. 일명 '끌바'다.

 

이러고 하염없이 산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한다.

 

사진으로 봐서는 경사가 잘 표현이 안 되는데, 끌바로 올라가기도 헉헉거려야 할 정도이다.

 

이것이 끌바의 정석이다.ㅋ
열심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있는데, 자전거 타고 가다가 떨어진 밤송이에 발목이 잡혀 밤 줍기에 정신을 팔고 계시던 아저씨 말씀이 '이렇게 작은 자전거로 어떻게 국토종주를 하누?" "에고~ 다음에 나오는 구름재는 더 높은데, 오늘 안에 가겠나?"하시며 걱정걱정을 하신다.
지금도 거의 경사가 45도는 되는 거 같은데, 더 가파른 경사의 고개가 잠시 후 나타난단다.
그래도 우리는 산티아고를 걸었던 내공이 있는 사람들이라 이 정도 끌바야 하고 쉽게 생각했다.
산티아고 때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1,300 미터 높이의 산도 오르고 내렸는데 뭐~ 하면서...

 

첫번째 고개의 정상에 왔다.
저 아래로 산이 보이고, 구름도 발아래 있다.
저절로 만세가 나온다.

 

숨도 돌릴 겸 발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까마득하기까지 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다음에 나타난 고개는 정말 엄청났다. 연거퍼 두개의 산을 끌바하려니 힘도 엄청 든다.
마지막 구름재는 국토종주 중 악명 높은 '박진고개'이다.
우린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은 아예 안하고 맘 편히 끌바를 하기로 했다. 이 고개는 진짜 끌바도 힘들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국토 종주 중 마치 죽을 거 같은 죽음의 고개가 3개 있단다.
이 '박진고개' 또는 '구름재'가 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악명도 모르고 고개를 넘으며

도대체 이걸 자전거로 넘어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하고 의아해 하기만 했다.
구름재를 올라가는 양 옆으로 콘크리트 벽이 있는데, 그 벽에 온갖 낙서가 다 되어 있다. 심지어 심한 욕까지..ㅋㅋ
자전거 족들이 자전거로 이 고개를 넘으며 남긴 실감나는 흔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snax-gNX6E

 

재미있는 건 심한 낙서가 있는 벽면 끝에 표시된 마을 이름이다.
'낙서면'이라니.ㅋㅋ 그러니까 이 벽은 낙서면이니 낙서가 허용되는 거다.ㅋ
그걸 알아챈 자전거족들은 너도나도 자기만의 낙서를 한 것이다.
아무튼 고개를 두개나 넘느라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야간 라이딩은 안해봤지만 아직 숙소는 멀었으니 라이트 켜고 산길, 시골길을 아무것도 못 보고 귀뚜라미 소리만 들으며 달렸다.
난 좀 무서웠다.
이 어두운 길을 가다가 남편은 넘어지기까지 했다. 아스팔트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걸 못 보고 달리다 전복이 되었다.
뒷바퀴가 45도나 들릴 정도로 완전 꼬꾸라졌다.
자기가 운동 신경이 좋아 안 다쳤다는 남편이지만 뒤에서 쫓아가다 넘어지는 걸 본 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깜짝 놀래서 나도 자전거에서 얼른 내려 넘어진 남편한테 가느라 안장에 허벅지를 부딪쳤는데, 나중에 보니 넘어진 남편보다 안장에 부딪친 내 허벅지의 멍이 더 심각했다.ㅜㅜ

어두워서 주변이 거의 안 보이는 길을 자전거에 달린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서, 최대한 집중해 조심조심 '적교장'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매우 친절해 자전거길 숙소로 매우 유명한 집이란다.
시설은 오래되어 낡았지만, 정말로 친절한 아저씨다.
어두운데 늦게까지 자전거 타고 오느라 수고했다며, 자전거도 직접 들어 옮겨주셨다.
그리고 이 집은 숙박비도 35,000원으로 매우 싸다.
저녁은 숙소 옆 '부산통닭'집에서 치킨을 먹었다. 물론 막걸리도.ㅋ
꽃길 이후 너무 스펙타클하게 숙소까지 오느라 치킨에 막걸리를 먹으면서 사진 한장 찍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가 헤매고 다닌게 지도에도 다 나오네.ㅋㅋ
오늘도 84킬로로 강행군을 했지만 스템프는 하나밖에 못 찍었다.
낙동강 자전거 길은 한 코스가 너~무~ 길다.
아직도 어려운 코스가 남았다니 푹 쉬자.

이 글은 2017년 브롬톤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던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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