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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투리를 들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제주어는 완전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낯설다.
제주도로 이주해 온지 2년이 넘은 나도 제주도에 대한 관심을 엄청 가지고 있지만, 제주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도 요즘 알바를 다니면서 거기서 일하는 언니들에게 제주어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사실 한참 바쁘게 일할 때는 언니들이 하는 말의 반도 못 알아듣는다.
대화가 가능한 일상적인 말은 거의 따라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
그래서 약간 일하는데도 곤란한 경우가 있어서, 급식소에서 사용하는 도구의 제주어는 외우려고 노력 중이다.

제주어 중에서는 즉각적인 표현으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조리사 언니가 나에게 "저기 물박세기 좀 가져와라."라고 얘기했는데, 난 도대체 뭘 가져다달라고 하는지를 몰라서 얼음!하고 서 있었다.
옆에 있는 언니들이 막 웃으며 내 손에 쥐어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지이다.
그러니까 바가지가 박세기이고, 조리사 언니가 말한 물박세기는 물바가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다른 언니가 알려준 제주어도 재미있었다.

딱 봐도 맷돌이다.
육지에서 봤던 맷돌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게 생겼지만, 제주도 자연사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제주도 맷돌은 이렇게 생긴 것 같다.
아무튼 모양이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보면 맷돌인지는 알 수 있다.
이 맷돌을 제주도 사람들은 '고래'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래???
그런데 고래라는 말을 듣고 다시 맷돌을 보니 정말 고래처럼 생겼다.ㅋ

제주도 사람들은 작명을 할 때, 즉각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밥 주걱이다.
이걸 제주도 사람들은 '밥자'라고 부른다.
처음엔 도대체 이걸 왜 밥자라고 부를까 의아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국을 뜨는 것을 '국자'라고 하듯이 밥을 뜨는 것이니 '밥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난 앞으로 주걱을 밥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작명을 즉각적으로 하는 것의 또다른 예로 딱이 제주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작명 스타일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사실 이런 그릇의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는 네모난 큰 그릇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물이나 기름이 밴 음식을 담아서 물이나 기름을 빼면서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을 제주 언니들은 '뽕뽕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없다.
구멍이 뽕뽕 나 있기 때문에 뽕뽕이인 것이다.ㅋ

이런 신조어로 제주 언니들의 작명 스타일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급식소에서 큰 가마솥에 국을 끓일 때 저을 수 있는 기다란 나무 주걱이다.
이걸 제주 언니들은 '미스코리아'라고 부른다.
내가 "이게 왜 미스코리아에요?"라고 물었더니 언니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길고 늘씬하잖아."ㅋ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알바를 가려면 전날 피로가 풀리지 않는 상태여서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급식소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되는 제주어 폭탄에 뭔가 새로운 언어를 현지에서 배우는 것 같아서 참 재미있다.
난 급식소에 알바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주어를 배우러 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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