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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고사리를 끊으러 출발했다.
어제 준비한 모든 채비를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거의 완벽한 고사리 채취 복장.ㅋ
하지만 너무 예쁜 모자 쓰고 왔다고 친구한테 혼남.ㅋ

저 앞에 가시는 할머니도 분명 고사리 채취하러 가시는 복장이다.

친구가 알려준 정류장에서 제주시 와흘리에 있는 전원마을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근데,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도 어째 복장이 대부분 고사리 끊으러 가는 복장이다.

어? 친구가 가르쳐준 버스가 아닌데, 배낭 멘 사람들이 다들 저 버스를 탄다.
와흘로 가는 버스이기도 하지만 흔들리지 말고 친구가 가르쳐준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초행길이니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고사리밭에 가지도 못하고 길을 잃을 게 뻔하다.

드디어 친구가 알려준 버스가 와서 탔는데, 버스 안에 탄 사람들 모두 다 고사리 채취하러 가는 복장이다.
마치 단체 체험학습 가는 것 같다.ㅋ

전원마을 앞에서 하차하자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알고 있는 고사리밭으로 흩어진다.
근데, 오늘 안개가 엄청 많이 끼었다.

정류장 옆 수풀 속에서 누군가 쓰윽~ 일어난다.
친구가 기다리면서 그 사이 고사리를 끊고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난 것이다.
고사리를 끊다가고 숲속에서 이렇게 쓰윽 일어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자주 있다고 한다.
놀라지 않아야 한다는.ㅋ

그리고 친구가 나를 데리고 산속으로 꼬불꼬불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이렇게 넓은 풀밭이 나온다.
"우와~ 이렇게 멋진 초지에서 고사리를 끊는 거야?"
했더니 아니란다.
이렇게 넓고 평평한 초지에서 끊는 고사리는 '백고사리'라고 하고, 저 초지 둘레에 있는 울타리를 넘어서 가시덤불 속에서 끊는 고사리는 '먹고사리'라고 하는데, 먹고사리가 진짜 맛있는 고사리란다.
먹고사리를 한번 먹어본 사람은 백고사리는 절대로 안 먹을 정도로...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이 초지 둘레에 철망과 그물망이 쳐져 있다.
우측은 말과 소를 키우는 목장이고, 좌측은 더덕을 심은 밭이고, 맞은 편은 개를 기르는 목장이란다.
울타리를 넘어 목장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끊는 것이라고...

"그럼 목장 주인들이 싫어하지 않나?"
하지만 고사리철에만은 목장 주인들도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자, 그럼 지천으로 깔린 고사리밭에 가보자구~

이렇게 초지를 가로질러 목장 안으로 철망을 넘어 들어간다.

아직 아침 이슬도 마르지 않았다.

이런 가시덤불이 엄청나게 많아서 고사리에 꽂혀 쫓다보면 어느새 팔이며 얼굴, 다리 등을 가시에 찔리고 긁힌다.
완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저 가시 덤불 속에 있는 너무나 예쁜 먹고사리를 보면 나도 모르게 따끔!!

저기 고사리 있다.
어디, 어디?

여기!!
이렇게 작은 고사리를 풀숲, 덤불숲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서서 슬슬 다니면 절대로 보이지 않고, 앉아서 유심히 봐야 볼 수 있다.

고사리를 끊을 때 원칙이 있다.

고사리의 잎이 벌어지지 않아서 마치 아기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생긴 것을 끊어야 한다.
고사리가 하나 보이는 그 주변에 5개는 더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
고사리를 끊고 뒤돌아 서면 또 있다.

이런 것들을 명심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아주 잘 봐야한다.

처음에 친구가 "저기 있다."라고 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고사리가 한참을 가시에 찔리고, 돌에 걸리고, 풀에 미끄러지다 보니 이제 내게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 신기하고, 너무 재미있고, 너무 신나는 고사리 끊기였다.

정말로 해보지 않고는 그 재미를 알 수가 없다.
한참을 고사리를 쫓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계속하니 빈혈이 있는 것처럼 어지럽고, 금새 배가 고파진다.
그래도 하나하나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다니는 고사리가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사리를 끊으러 갈때는 잘 보이는 옷을 입고 가야한단다.
고사리 찾아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같이 간 무리와 떨어질 수도 있단다.
어떤 사람은 고사리 끊는데 정신이 팔려, 혼자 산을 넘었다는 사람도 있단다. 믿거나 말거나.ㅋ

새벽에 도착한 아주머니들이 한번 훑고 갔지만 나같은 어리버리한테도 걸리는 고사리는 아직도 많다.

두시간 정도 덤불 숲을 헤치고 끊은 고사리다.

친구랑 점심도 먹고 커피 한잔하고 또 가서 고사리를 끊으려고 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은 여기서 끝!

제주도 사람들이 고사리를 먹는 방식은 육지 사람들과 좀 다르다.
고사리를 삶아서 볕에 하루이틀 말린 후에 말린 고사리를 먹는 육지사람들과 달리 제주도 사람들은 고사리를 한번 삶아서 이틀간 찬물에 우려 쓴맛을 뺀 후에 먹는 생고사리를 즐긴다고 한다.

이번에 첫 도전한 고사리 체험이므로 제주도식으로 고사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굵은 소금 조금 넣고 살짝 삶아준다.
고사리가 너무 부드러워서 살짝만 삶아도 부들부들하다.

이렇게 찬물에 넣고 물을 열심히 갈아주면서 이틀간 담궈둔다.

나의 첫 고사리는 육지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끊은 고사리 사진만 보고도 "세상에, 고사리 너무 좋다."고 감탄을 하신다.

친구가 오늘 저녁에 해먹어 보라고 자신이 삶아놓은 고사리를 조금 주었다.
들기름에 볶다가 조선 간장을 조금 넣고 들깨가루를 넣고 달달 볶아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집에 들깨 가루가 없어서 그냥 고춧가루만 조금 넣고 볶았는데,

이래서 생고사리를 먹는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로 맛의 신세계였다.

며느리도 모르는 고사리밭을 알아뒀으니 이 봄이 가기 전에 몇번 더 원정을 가야할 듯하다.
다행히 그 밭은 제주도 중산간에 있는 고사리밭이라 아직 기온이 낮아 뱀은 안 나온단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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