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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길 / 박노해

gghite 2021. 11. 2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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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사진 에세이 3권은 ‘길’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나만의 빛나는 길은 잘못 내디딘 발자국들로 인하여 비로소 찾아지고 길이 되는 것이니.

-아마도 이 책의 주제일 듯하다. 코로나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말이다.

마지막 순례길
티베트인들은 인생의 세 단계를 살아간다.
청년기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장년기까진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돌보고
노년이 되면 신에 귀의해 다음 생을 향한다.
“내 생의 마지막 순례길은 오체투지로 왔다오.
엎드려 대지와 하나가 되면 들꽃이 말을 하고
일어서 합장하면 하늘 구름이 말을 한다오.
일하고 살림할 땐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는데
텅빈 마음에 고요한 환희심이 차오른다오.
내 영혼이 낡은 육신을 떠나면
초원의 들꽃이 되고 독수리의 날개가 되어
다음 생으로 유유히 날아가기를 기도한다오.”

-노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그런 것이리라. 다음 생을 위해 낡은 육신을 떠날 영혼을 가꾸는 일.
다음 생으로 이생의 어떤 미련을 남기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가벼운 영혼을 만드는 일.

길 위의 학교
먼 길을 걸어 선생님이 찾아온 날,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마치 활자를
자신의 오장육부에 새기겠다는 듯
빛나는 눈길로 책 속으로 걸어간다.
길 위의 학교에선 안 되는 게 없다.
어깨너머로 배운 동생들이 “저요, 저요!”
언니 오빠를 뛰어넘어 버리고,
막내는 “오늘의 반장은 내가 할래”
배움에 목마른 형과 누나들에게
바지런히 물을 길어다 나르고,
“쌤, 아기 양한테 먹이주고 올게요.
진도 나가지 마요.” 씽 다녀온다.
등 뒤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은 간절한 만큼 고개를 숙인다.

-정겨워 보이는 서술이지만 그들의 가난이 느껴진다.
가난은 아이들의 동심을 짓밟을 수는 없는 듯하다.
다부지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풍요가 지나치도록 넘치는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다. 흔히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바로 그 가을이다. 사진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박노해의 책을 읽으면서 이 가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노해의 책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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