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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세상의 용도

gghite 2021. 7. 1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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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목이 아주 멋지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슨 용도가 있을까? 여행에 관한 내용이라니 세상을 여행의 용도로 사용해 보자는 얘길까??

여행같은 욕망은 무엇보다도 상식에 어긋나지만, 그런데도 욕망이 계속해서 상식에 저항하면 우리는 이러저런 이유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이유들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억누르기 힘든 욕망, 그걸 뭐라 불러야할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무엇인가가 점점 더 커지다가 어느 날인가 닻줄이 풀리면, 반드시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떠나고 보는 것이다.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2017년 남편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었다. 그당시 우리가 이랬던 거 같다. 산티아고에 가면 안되는 이유를 무지하게 찾다가 끝내는 비행기표를 사고 무작정 산티아고로 날아갔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800킬로를 걸었다.

우리에게는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돈의 액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나는 꽤나 느리게 사는 사람이었다. 요즘 일을 시작하고 모든지 빨리빨리 해야 하는 일터에서 지내다 보니, 가끔은 느림이 그립다. 난 은퇴하면 더더더 느리게 살 것이라 다짐하며 지금을 이겨내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여행을 가면 이런 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파리 한복판에서 빈둥거려 보면 아주아주 신난다.

여행의 미덕, 그것은 삶을 말끔히 비웠다가 다시 채워넣는 것이다.

돈이 돌고 돈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돈은 위로만 올라갈 뿐이다.

-정말 그러네? 우리도 옛날부터 돈은 돌고 돈다고 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보면 돈은 위로만 올라가고 있는 것이 맞다.

이런 광활한 풍경에서는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이라도 개으름뱅이처럼 보이리라.

-나도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대학 때 중국에 간 적이 있는데, 기차를 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데 지평선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끝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안 됐으며 마치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거 같았다. 이란에도 이런 광활한 풍경이 있다니 가보지 않고는 믿기지 않는다.

지적인 사람은 마치 거울처럼 그의 얼굴이 비쳐내는 나이를 가진다.

-오~ 난 좀 동안이란 얘길 많이 듣는데.. 그렇담 덜 지적이란 얘긴데… 좀더 지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ㅋ

비록 그대가 밤을 보낼 곳이 불확실하고
그대의 목적지가 아직 멀지라도
종착점이 없는 길은 없다는 걸 알고
슬퍼하지 말라
‘하페즈의 시’ 하페즈는 500년된 이란의 시인

-멋진 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종착점이 있단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도 자기 본래의 모습을 조금도 내던지려 하지 않았다. 정말 얼마나 터무니 없는 계획인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겠다니! 원래의 어리석은 자로 그냥 남아있겠다니! 그래서 그는 별다른 걸 보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나도 살면서 나의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반성했다. 그래, 사람은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뭔가를 움켜쥐었으며, 그리하여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결코 완벽하게 획득되지 않는다. 세계는 마치 물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당신이 당신 가슴 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그 텅빈 공간 앞에, 영혼의 불충분함 앞에 다시 당신을 세워둔 채 물러난다.(일년 반의 여행을 마치고)

-여행 후 세계라는 물은 나에게 물색깔만 띠게 하고 물러난다. 여행을 다녀온 후 느끼는 감상을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했다.

책이 어머어마하게 두껍고, 우리가 쉽게 가보지 못하는 곳을 여행한 여행기라 조금 어렵지만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다. 오래 걸렸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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