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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27(37,239걸음)

오늘은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서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까지 걸었다.
우리가 처음 목적지보다 한 마을 더 걸어서 그곳에서 묵기로 한 것은 며칠 간 중학생팀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였지만, 어제 묵은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한 마을 더 걸어가서 다음 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조용하고, 사람들도 사무적이지 않고 매우 친절한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가끔 이렇게 한적한 마을에 묵게 되면 편의 시설이 별로 없어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레옹을 지나고부터는 마을들이 그렇게 심하게 낙후된 경우는 보기 드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레옹부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목적지 마을에 숙소가 모자라 다음 마을에 가서 묵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나름 편의시설도 갖추어진 듯하기도 하다.
사람이 많아져서 낯설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아져서 편리한 것도 있다.

 



이 마을에 다른 숙소가 또 있었는데, 그 앞에 재미있는 조형물이 있어서 우리도 사진을 찍어봤다.
놀이 공원에 가면 아이들이 이런 조형물에 얼굴을 내밀고 재밌는 사진을 찍곤 하는데, 여기 산티아고에 오니 우리도 애들처럼 이런 사진을 다 찍는다.
단조롭게 걷기만 하는 여행은 이런 장점이 있다.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에도 관심이 가고, 단순한 장난도 재미가 있고, 스쳐지나가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고, 짧은 대화에도 친근한 정을 느낀다.
언제나 볼 게 너무 많아서 볼 것에만 집중하는 여행과는 많이 다른 여행이다.
오늘은 우리도 조금 서둘러 걷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7킬로 전 마을에서 아침에 부지런히 출발했다면 곧 우리를 앞질러 갈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자고 같이 출발해서 다른 사람에게 뒤쳐진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어제 그렇게 힘들게 걸어서 7킬로나 앞에서 출발하게 된 우리가 또 그 사람들에게 뒤쳐진다면 더 힘이 빠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 우리가 선두 그룹보다 앞에 걸어보겠는가 하는 생각에 선두에서 좀더 오래 걷고 싶어서 더 열심히 걸었다.
괜한 경쟁심 같지만 산티아고를 걷는 내내 선두에 서보지 못했던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니 만끽해 보기로 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순례 코스 대로 걷다보면 마을을 한바퀴 돌며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제 우리가 들렸던 슈퍼마켓도 지나고 작은 가게들 그리고 예쁜 레스토랑 등도 지니서 마을 중앙까지 오니까 아담한 성당이 있었다.
마을의 분위기를 닮아 성당도 아기자기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듯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온통 비슷한 분우기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끝에는 갈림길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하나는 자전거를 타고 순례하는 사람을 위한 길이고,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써 있었다.
아마도 하나는 도로 옆으로 난 길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 길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산티아고 책자는 없지만 이제는 갈림길에서 좋은 길을 선택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을 길과 밭길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제처럼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길이었다.

 

출발하고 처음으로 만나 마을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묵은 마을에서 아침을 먹을 것이고, 그 마을과 이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 아니라 대부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마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바의 주인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시고 음식도 정성껏 만들어서 맛도 좋았다.
모든 장사가 다 그렇겠지만 산티아고에서도 가게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마을이 금방 나오는 경우, 그 마을의 레스토랑이랑 바는 장사가 잘 안 된다. 이전 마을에서 먹을 것 먹고 쉴 것 쉬고 온 사람들이 또 레스토랑이나 바에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을이 한참만에 나오는 경우, 그 마을의 초입에 있는 첫 레스토랑이나 바는 대박 장사가 잘 된다.
오랫동안 걸어온 순례자들이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한 걸음도 더 가서 먹거나 쉬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을 들어서기 전에 어떤 사람이 서서 레스토랑이나 바의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가게는 두번째나 세번째에 있는 가게가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환영한다, 맛있는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홍보를 해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첫집으로 간다.
그렇다고 순례자들에게 야박하다고 할 수도 없다.
누구나 산티아고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걸음까지 걷고 난 다음에 쉴 수 있는 마을이 나온다.
그러니 다음 집까지 걸어갈 힘이 순례자들에게는 거의 없다.
우리가 아침을 먹은 바는 여러 가지 조건 상 장사가 잘 될 수 없는 가게이다.
2킬로 전에 조금 큰 마을에 예쁜 가게가 있고, 순례자들의 걷는 리듬 상 전 마을에서 모두 아침을 두둑히 먹고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힘차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고, 아침을 먹는 우리의 사진도 나와서 직접 찍어주셨다.
산티아고를 걷는 그 동안 우리는 그날 밤에 묵는 알베르게에서만 스템프를 찍었었는데, 이 바는 너무 인상깊어서 여기서도 스템프를 찍고 약간의 메모도 남겨두었다.
아마도 아저씨가 이렇게 열심히 장사를 하니 약간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같은 경우도 다음에 산티아고에 또 온다면 분명히 이 집은 다시 방문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산티아고 길에 있는 맛집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아저씨의 친절과 정성이 담긴 음식들은 천천히 먹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프랑스팀의 쎄씰이 다른 프랑스 아주머니랑 같이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쎄실은 주정뱅이 다미앙과 함께 다니는 친구인데, 언제나 숙소에서 제일 먼저 출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선두 중에서도 선두에 서서 걷는 사람이다.
우리는 겨우 2킬로 와서 선두에게 꼬리를 잡힌 것이다.

 

그들도 전 마을에서 아침을 먹었는지 여기서는 그냥 화장실에만 들리는 것 같은 분위기여서 우리는 그들에게 선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인사만 간단히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우리는 이제 출발한지 2킬로 되는 것이고 쎄씰은 출발한지 거의 10킬로가 되는 것이어서 금방 우리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길이 약간 오르막 길이어서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우린 산티아고에서 처음 잡아본 선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참 열심히 걸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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