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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지나간다.
동규씨이다. 초반에 며칠 보이고 안 보여 포기하고 집에 간 건 아닌가 하고 내심 궁금했던 청년이다.

 

동규씨는 우리와 초반에 며칠 같이 걸은 친구이다.
그는 걸을 때 보면 아주 걸음이 빨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뒤쳐져서 못 만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최근 며칠 동안 하루에 30킬로 이상씩을 걸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다 따라잡았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동규씨는 보이지 않았다.
동규씨는 짐도 엄청나게 많고, 걷는 자세도 구부정해서 아무래도 초반에 무리하다가 걷기를 포기했나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규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로 걷는 자세가 이상한지 초반에 발이 너무 아파 며칠 많이 뒤쳐져 걸었다고 한다.
그간 살도 타서 벗겨지고, 가방 맨 어깨도 살갗이 벗겨지고 하는 고통이 있어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산티아고를 걸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내서 며칠 열심히 걸었더니 겨우 따라잡았다고 한다.
게다가 어제 레옹에서 라면을 4개나 사서 지금 자기 배낭에 짊어지고 다닌다며 행복하고 기운이 펄펄 난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 더위에 뜨거운 라면을 끓여먹는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만 자기는 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아랑곳 않고 맛있게 먹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게 초반에 동규씨가 세상에서 콜라를 제일 좋아할 때 사진이다.ㅋ

동규씨는 언제나 말할 때 과장이 많다.^^
초반에 걸을 때는 “저는 세상에서 콜라를 제일 좋아해요.”하더니, 오늘은 “저는 세상에서 라면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언제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내가 라면까지 그렇게 싸들고 다니면 배낭이 너무 무겁지 않냐고 물었더니, 라면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다가 자기를 위로하고 싶은 날 끓여먹을 거라고 한다.
그의 배낭 안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우린 외국에 나오면 굳이 한국 음식은 찾지 않는다.
꼭 먹고 싶지도 않고, 안 먹고 싶지도 않은 정도이다.
그래서 힘들여 한국 음식을 찾지 않는다.
그래도 라면 얘기를 들으니 매우 군침이 돌긴 했다.

동규씨도 우리를 만나 반가웠는지, 카페에서 같이 출발해 한참을 같이 걸었다.
우리가 친구들을 찾아 며칠 강행군한 얘기를 해주었더니, 자기도 조만간 강행군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산티아고까지 이삼일 단축해서 걸은 후 차를 타고 다시 팜플로냐(우리가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 지점)로 돌아갈 생각이란다.
팜플로냐에서 있는 소몰이 축제에 참가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팜플로냐에는 이런 소몰이 축제 동상이 있다. 나는 동상 앞에서 이렇게 포즈만 취해 봤는데, 동규씬 진짜 소한테 몰려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 축제가 너무 유명해서 축제 기간에 티비에서도 생중계를 해주고,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과 참가자들이 몰려와 그때 쯤이면 숙소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자기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만 지금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일정도 무리해서 단축하고, 무리해서 돈을 지불하기로 했단다.
“팜플로냐에서 3일 머물려면, 한국에서 3달 일한 돈이 다 들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 여기 아니면 언제 소에게 몰리는 경험을 해보겠어요.”라며 벌써부터 소에게 몰릴 생각에 들떠 보였다.

동규씨는 사교성이 매우 좋다. 그래서 그 동안 외국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고 한다.
우리도 외국 사람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하지만 외국사람들도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기를 힘들어한다.
외국 친구들이 동규씨가 23살같아 보인다고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아 더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동규씨는 한국 나이로 30대 중반이란다.
오늘도 가는 길에 어떤 알베르게에 수영장이 있는데 거기서 친구들이랑 만나 파티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동규씨는 젊은 사람답게 산티아고 길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동규씨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 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 앞을 지나가던 스페인 할아버지가 우리를 세워놓고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신다.
우린 모두 하나도 못 알아 듣는 스페인말이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다 알 것 같았다.
이 길로 가다보면 산티아고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한쪽은 무슨 길이고, 다른 한쪽은 무슨 길이다라는 설명 같았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예쁜 성당이 있으니 구경하고 그 성당에서 스템프도 찍고 가라고 설명해 주고 계시는 것 같다.
우리도 이제 벳토아저씨가 한국말을 알아듣게 된 것처럼 스페인 말을 알아듣게 됐나 보다.ㅋㅋ

할아버지의 이 얘기를 듣고 동규씨는 새로 생긴 길이 5킬로 정도 더 길지만 그 쪽으로 가야 수영장이 있는 알베르게가 있기 때문에 그 길로 가기로 했다.
다른 한쪽 길은 원래 산티아고 길인데, 우리는 며칠 전 경험으로 원래 산티아고 길로 가기로 했다.
새로 생긴 길은 분명히 가는 도중에 집도, 카페도, 알베르게도 없을 게 분명했다.
동규씨도 우리 얘기를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는 친구들과의 약속 떄문에 그래도 새로 생긴 길로 가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산티아고 길에서 갈림길이 생기는 이유를 이때 쯤 파악했다.
정확한 이유는 이날 길을 다 걷도 알았지만.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정말로 예쁜 성당이었다.
특히 성탕 입구 위에 있는 조각상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조각상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이 성당도 가우디가?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찾지 않은 우리가 그걸 알리는 없다.
스페인 말을 좀더 잘 알아들었다면 할아버지 설명에서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럴린 더 만무하고...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스템프는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에서만 찍었었다.
동규씨는 성당이든, 카페든, 알베르게든 스템프를 찍어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다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순례자 수첩에 있는 스템프 찍는 란이 부족해서 아껴가며 찍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정말로 열심히 스템프를 찍는다.
가끔 카페나 바에 들어가 스템프만 찍고 나오는 사람도 있다.ㅋ

우리는 왠지 우리의 행적을 증명하는 도장이므로 신중하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잠깐 들려 커피나 맥주를 마신 카페에서 찍는 건 왠지 이상했다.
그리고 성당에도 잠깐 들려 묵념 정도만 하고 나오면서 도장을 찍는 게 좀 어설퍼 보였다.
최소한 그 마을에서 잠을 잔 숙소 정도는 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규씨 순례자 수첩과 우리 수첩을 비교해 보니 많이 차이가 났다.
우리도 더 열심히 찍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걷는 중에는 힘이 들어 스템프 찍을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동규씨는 성당 안에 있는 사무소 같은 곳에 가서 스템프를 찍고 오는 동안, 나는 성당 안에 들어가서 베드버그로부터 지켜달라고 아주 간절히 기도했다.

 



성당을 지나 얼마 걷지 않아서 드디어 갈림길이 나왔다.
여긴 이렇게 갈림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있는 이정표가 있었다.
며칠 전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는 분명히 이런 이정표를 못 봤다.
그냥 바닥에 다른 때와 달리 화살표가 아주 많이 한 방향으로 그려져 있어서 이끌리 듯이 그쪽 방향으로 갔었는데, 그게 바로 새로 생긴 길이었던 것이다.
그날 신혼부부가 해준 얘기도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그들과 서로 연락이 닿는 사람들이 우리가 간 길이 아닌 원래 산티아고 길로 갔는데, 그쪽의 알베르게는 너무 시설이 안 좋고, 베드버그도 자주 나온다고 악명이 높다고 했단다.
아, 그러니까 원래 길에 있는 주변 여건이 별로 좋지 않아 순례자들의 불만이 많아지니까 새로운 산티아고 길을 개척해서 길도 새로 내고 카페도 하나씩 들어서고 알베르게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쪽 알베르게가 너무 열악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지만, 가는 길 내내 사람도 없고 친구들도 겨우 찾았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이번에는 원래 산티아고 길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갈린 길은 이틀 후면 다시 만난다고 하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동규씨와는 여기서 헤어졌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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