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산티아고 2017.6.26(52,825걸음)

이날은 레옹에서 마르틴 델 까미노까지 가려다가 중간에 힘이 남아(?)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까지 걸었다.
사실 꼭 힘이 남아서만은 아니다.
이틀 전부터 중학생 단체팀과 계속 같은 곳에서 잤는데, 아이들이 밤에 안자고 엄청 떠들어서 그 아이들이 머무는 마을, 무조건 다음 마을로 가서 자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거점으로 되어 있는 마을이 큰 차도를 가운데 끼고 있는 마을이라 차 지나가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다.
아무튼 이래저래 한 마을 더 걸었는데, 7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그래서 이날 원래 걷는 거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또 30킬로를 넘게 걷게 되었다.
발이 나아서인지 자꾸 더 먼 거리를 도전하게 되는 이유도 있다. 산티아고가 만만해지고 있나보다.ㅋ

 

어제 묵은 레옹의 공립 알베르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깨끗하고 편안하다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우선 남편이 베드버그에 조금 물렸다.
다행히 약간 가려워할 때 바르는 약을 발라주었더니 더 이상은 가려움증도 없고 흉터도 남지 않았다.
특별히 벌레에 반응하지 않는 체질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틀째 같은 숙소에서 묵게 된 중학생들 팀이 밤에 너무 심각하게 떠든다.
아마도 순례를 시작한 지도 며칠 안 되었을 뿐 아니라,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라 순례라기 보다는 그들에게는 친구와 함께 떠난 캠핑 같은 것인 듯하다.
아무튼 우린 얘네들을 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다음부터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안 간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는 우선 가격이 엄청 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간 다양한 사람이 거쳐갔다.
그러니 단체팀이 와서 시끄럽게 굴 수도 있고, 베드 버그의 위험에도 노출될 확률이 높다.
단체팀이든 베드버그든 오래 걸은 순례객들의 피로를 푸는 데에서 아주 악조건인 것이다.

숙소를 나와 화살표를 따라 순례를 시작해 보니, 어제 우리가 도시 구경을 한다고 돌아다니며 봤던 모든 건물과 도시의 모든 길을 다 돌고 레옹을 벗어나게 해 놓았다.
다른 마을은 주로 중심을 관통하는 길이 있고 그 길 양 옆으로 알베르게나 명소 등이 있어서 느끼지 못했는데, 레옹은 매우 크고 복잡한 도시인데 거길 빙빙 돌아 다 보고 순례길에 오르게 해 놓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제 괜히 다리 아프게 돌아다닌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화살표 따라 걷다보니 오히려 우리가 지도를 보고 찾아다니며 볼 때 빠뜨린 것이 더 있었다.
도시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냥 순례길 따라 걷는 것이 그 마을을 구경하는 가장 좋은 루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돌아돌아 성당, 가우디 건물, 가우디 동상, 광장 등을 다 다시 보고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대단한 계략이다.ㅜㅜ

 

그렇게 돌아돌아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어제 못본 순례자 동상을 하나 보았다.
지금껏 본 순례자 동상 중 가장 현실감 느껴지는 동상이었다.
동상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신발도 벗어놓고 의자에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개껍대기도 있고, 지친 발과 나른한 휴식을 너무 잘 표현해 놓았다.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나도 이 할아버지처럼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레옹은 큰도시라 도시를 벗어나는데도 오래 걸렸다.
겨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나타난 카페에서 벌써 아침을 먹어야 할 정도였으니, 두어 시간을 걸려 도시를 벗어난 것 같다.
월요일 아침이라 도시로 일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매일 우리같은 순례자들을 보면서 아침에 출근을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참 나쁜 출근 조건이겠다 싶다.
언제나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들이 길을 나서는 행렬과 반대로 자신들은 일터로 일하러 가야하니 매일매일 ‘나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하지 않을까?
특히나 레옹부터는 순례자들이 더 많아져서 아침에 길을 나서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인다.
또 스페인 사람들은 마음 속에 나도 언젠가는 순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니, 레옹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많이 싱숭생숭하리라 짐작된다.

 

레옹을 벗어나는듯 마는듯하면서 다음 마을에 도착을 했다.
길가에 있는 카페 주인이 밖에까지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이 “아마도 이 집엔 손님이 별로 없나봐, 주인까지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을 애처로이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라고 하는 말에 우리는 이 카페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지나갈 때 카페 주인이 “부엔 까미노”하고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데, 나도 습관적으로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했다.
참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는 서로 이렇게 같은 인사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이 카페 주인은 오늘도 아침 일찍 카페 문을 열어야 하고, 손님도 별로 없어 그닥 유쾌하지 않을테고, 여행자들을 보며 약간의 부러움도 있을텐데, 거기다 대고 “부엔 까미노(즐거운 여행되세요)”라고 인사를 했으니, 그것도 매우 미안한 일이었다.
커피와 스페인 오물렛을 주문하고 어제 어제 먹다남아 싸들고 왔던 KFC치킨을 함께 먹었다.
아침부터 고기를 먹으니 든든하니 힘이 난다.

외국에 오면 식성도 참 많이 달라진다.
한국에 있으면 아침도 잘 챙겨먹지 않는 우린데, 아침부터 치킨이라니.ㅋ
그래도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환경이 아침부터 든든히 먹게 한다.

이렇게 우린 우리를 잘 놔주지 않는 레옹을 떠났다.
남편 말에 의하면 어제 밤새도록 거리에서 쿵쾅쿵쾅하는 음악소리와 술마시며 떠드는 순례자와 관광객들의 소란소리가 끊이지 않았단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떠나고 싶지 않은 레옹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놔주지 않는 레옹이란 도시에 대해 오래오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