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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험상 새로 생긴 길은 좀 힘들텐데 하는 걱정은 됐지만, 동규씨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여전히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새로난 길로 걸어갔다.
살면서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하는 근거는 그간의 자기 경험에 기반하는 거니까.
우린 우리가 선택한 길로 고고고~!!!

 

동규씨와 헤어지고 열심히 걷고 있는데, 앗! 저 앞에 프랑스인 다미앙이 가고 있다.
이틀 내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더니 드디어 친구들이 버리고 갔나보다.
매일 같이 다니던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다미앙 혼자 걷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술이 깼는지 혼자 씩씩하게 잘 걸어간다.
남편은 술 취한 다미앙만 봐서 저렇게 멀쩡하게 걷는 게 다미앙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찍어둠, 술 취했을 때 확인해 보려고.ㅋㅋ
다미앙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술 마시며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우리가 보기에 친구들은 다미앙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무더위 속에서 2, 30킬로를 걸을 생각을 하면 그렇게 취하기 쉽지 않을텐데, 매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취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다미앙에게 그 이유를 묻자니, 취했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할까봐 그것도 실례인 것 같고... 참 궁금하다.

우리도 술 마시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낮에 마시는 맥주는 워낙 더위 속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서 걷기 때문에 갈증 해소만 되고 그렇게 취기가 많이 올라오지 않는다.
뭐 여러 잔을 먹으면 취하기야 하겠지만, 더운데 취하기까지 하면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져 너무 힘들기 때문에 보통은 딱 한잔만 마시게 된다. 그러니 취할 겨를이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때는 하루 종일 걷느라 힘들어 배고픈 것이 제일 시급하다. 그러니 씻고 레스토랑에 가면 가장 푸짐한 순례자 메뉴를 시킨다.
순례자 메뉴를 시키면 에피타이져로 샐러드, 스파게티, 스프 중 하나를 먹고, 본식으로는 육고기나 생선요리 중 하나를 먹고, 후식까지 먹을 수 있는데, 양도 많고 저렴하고 게다가 집에서 담은 와인(하우스 와인)을 한병이나 무료로 준다.
이 와인을 둘이서 나눠 마시면 적당히 취해 피곤도 풀리고 잠도 잘 오기 때문에 아주 좋다.
그러니 더 이상의 술은 잘 마시지 않게 된다.
같이 저녁을 먹은 친구와 대화가 길어져 맥주를 한잔 더 마시더라도, 알베르게에는 소등 후 취침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늦게까지 많이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취할 겨를은 여전히 없다.
이렇게 취하기 힘든 여건 속에서 도대체 다미앙은 언제부터 얼마나 마시는 걸까?
그러니 그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마을을 가나 오래된 종탑은 큰 새가 둥지를 틀고 차지하고 있다. 꼭 에니매이션에 나오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벽에 화살표와 함께 적혀 있는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킬로수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산티아고가 298킬로밖에 안 남았단다.
걷다보니 어느새 300킬로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산티아고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쯤 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걷는 게 힘들었었는데, 왠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가 아쉽다.
곧 이 걷기가 끝날 거라는 것이 아쉬워서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얘네들이 밤에 숙소에서 떠드는 그 중학생들이다.
며칠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이 학생들이 나는 너무 궁금했다.
인솔 교사도 있는 걸 보면 분명 학교에서 단체로 온 것 같은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온 건지 아니면 성당에서 하는 여름 수련회같은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영어를 총 동원해서 이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학교 친구들이랑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14세 소년 소녀들이다.
"Where are you from?"을 안해서 어느 나라 애들인지는 모른다.
이 아이들이 숙소에서 너무 떠들어서 우리는 이제는 이 아이들을 피해다닐 거라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나중에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스페인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산티아고 길의 일정 정도의 거리를 걷는 것이 필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니 안 물어도 스페인 아이들일 것 같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 고등학교 때 꼭 수학여행을 가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아이들의 표정은 아주 즐거워 보인다.
몇몇 아이들은 걷는 것이 힘들어서 또 몇몇 아이들은 너무 더워서 힘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명랑 쾌활한 분위기이다.
이 아이들의 가방은 모두 작은 가방이다.
저녁에 숙소에서 보면 큰 캐리어도 가지고 있는데, 그 짐은 아마도 단체로 차에 실어 다음 목적지에 보내는 것 같다.
산티아고 길이 스페인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길이니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 길을 경험해 보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인 듯도 싶다.
그리고 이 경험이 그들이 선택에 상황에 놓였을 때, 뭔가 작용을 하겠지?

 



어제 레옹에서 산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오늘부터는 가방에 하나씩 달고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할 때 사는데 우리는 짐이 무거우면 안 된다고 안 샀다가 그동안 필요없는 짐을 너무 열심히 버려서 이제 짐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아 하나씩 사서 가방에 달았다.
이렇게 멋질 걸, 아무리 짐이 무거워도 이건 처음부터 사서 달 것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오늘 걷는 길 선택은 또 완전 잘못했다.
큰 도로 옆길로만 계속 걸어서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게다가 그 큰 도로는 레옹이라는 큰 도시에 연결된 길이라 그런지 대형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큰 도시를 진입하거나 진출할 때는 매번 이렇게 큰 차도가 있었지만 이렇게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차도 옆을 걸었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이렇게 차도 옆으로 걷는 산티아고 길은 개인적으로 매우 싫다.
왠지 차를 두고 무식하게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차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도무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원래 길을 두고 대체 길이 생긴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큰 차들이 쌩쌩 지나가면서 생기는 소음과 매연 때문에 많은 불평을 했을 것이다.
간사해 보이지만, 다음부터는 갈림길이 나오면 동규씨처럼 원래 길 말고 대체 길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편의 시설이 좀 부족하기는 하고 걸어야 하는 거리가 길기는 하지만, 짧아도 차도 옆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래도 원래 길이 진짜 산티아고 길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니 이 길이 없어지니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산티아고를 걷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온 터라, 이 길이 전통 산티아고 길로 '프랑스 길'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뭔 알고 선택했을까만...ㅋ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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