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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욱 차도만 따라서 걷다보니 목적지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상태가 우리를 또 고민하게 했다.
마을이 작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큰 차도를 가운데 끼고 양 옆으로 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형태였다.
그러니 숙소에서도 큰 차들의 소음이 엄청나게 들릴 것이 분명한 형태였다.

 

마을을 지나면서 슬쩍 염탐을 했는데, 공립 알베르게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사립 알베르게 하나가 괜찮아 보여 그 앞에서 어쩔지 고민하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계속 만나는 한국 아저씨들을 만났다.
이분들은 며칠 전 마을에서 우리가 도착한 마을에 더이상 숙소가 없을 때 다음 마을에 전화로 알베르게를 예약하는데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다.
알베르게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통성명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비오아저씨와 정선아저씨는 광주에서 오셨는데, 둘이 친구지간이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산티아고에 오고 싶었는데 사는 게 바뻐 미루다가 올해 둘다 시간이 나서 같이 오게 되었다고 한다.
생장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코스대로 걷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중학생 단체팀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 숙소로 들어간다.
아까 분명히 공립 알베르게로 가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 인원수가 많아 거기서 다 못 자고 일부는 이쪽 사립 알베르게로 와서 자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알베르게로 들어가는 것을 본 우리는 더이상 고민 안하고 다음 마을로 더 걷겠다고 했다.
아저씨들은 다음 마을이 앞으로 7킬로는 더 가야 하는데 이 더위에 더 걷기 힘들 거라고, 본인들이 들어가 보니 숙소도 깨끗하고 좋다고 하셨다.
술 한잔 살테니 같이 묵자고까지 하셨다.
우린 더울 때 걷는 건 안 힘든데, 아이들이 떠들어 잠 못자는 건 힘들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술은 마시는 걸로 하고 더 가기로 했다.
사실 하루치를 다 걷고 7킬로를 더 걷는 것, 게다가 이상기온으로 30도가 넘는 땡볕 아래서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저씨들 말대로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가장 더운 시간이 지금부터 몇시간은 계속 될 것이다.
이 시간에는 순례길에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겨우 자전거족만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마을을 벗어나기 전 바에 들려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마셨더니 힘이 펄펄 난다.

 

슈퍼에 들려 물도 사고, 출출할 때를 대비해 과자도 한봉지 사들고 나서다, 프랑스에서 온 다미앙의 친구인 쎄씰과 까미유를 만났다.
그들도 우리가 더 걸어간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난리난리다.
우린 진짜 점점 걷는 게 무섭지 않아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우린 더 걷는 걸 선택했다.
갈림길에서의 우리의 선택은 잘못됐었지만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한 이번 선택은 탁월했다.

 

도착한 마을은 전 마을보다 예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초입부터 멋진 다리가 있었다. 아주 운치있다.
마을에 큰 캠핑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휴가로도 많이 찾는 곳인 듯하다.
캠핑장 옆에 있는 숙소에 묵기로 했다.
저렴한 4인실은 거의 다 차서 우리가 각자 다른 방에서 자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떨어진 방 두개에 각각 침대가 하나씩 남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비싼 2인실을 쓰기로 했다.
가격이 40유로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52,000원이다.
사실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닌데, 산티아고 길에서는 다른 숙소가 워낙 저렴해서 꽤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런 숙소는 거의 호텔급이라서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방 안에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침대도 깨끗해서 침낭 없이 잘 수 있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런 곳에서 자면 베드버그 걱정도 안하기 때문에 얼마나 잘 자는지 늦잠까지 잔다.
게다가 어제 잔 곳에서 남편이 베드 버그에 물린 것 같아서 침낭도 햇빛에 한번 말려줘야하기 때문에 침낭은 밖에 널어두고, 좋은 숙소에서 침낭 없이 편하게 자면서 푹 쉬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는데 남편이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보여준다.
정말로 둘다 너무 놀랬다.
얼마나 열심히 걸었으면 양말 바닥에 구멍이 났을까?
이 양말은 집에서부터 신고 온 양말도 아니고 중간에 사서 신은 양말이다.
우리가 엄청나게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일이었다.
내 양말도 바닥이 매우 얇아진 걸 보면 조만간 구멍이 날 것 같다. 신기하다.

양말도 새로 사고 마을 구경도 할 겸해서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 지도 봐야 하는데 우선 숙소에서는 레스토랑이 있다.
캠핑장에서 물놀이를 즐긴 가족들이 숙소 앞 테이블에서 이른 저녁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돌아다녀보고 마땅한 곳이 없으면 숙소에 와서 먹으면 되기 때문에 여유있게 마을 구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7킬로를 추가로 걸은 탓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가게에 가서 양말만 샀다.
일반 슈퍼라 트레킹 양말이 아니고 시원한 여름 양말이라 적당하지는 않지만 구멍난 양말을 신고 걸으면 다시 물집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얇은 양말이라도 구입을 했다.
숙소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데 여기가 뜻밖에 맛집이었다.

 



특히 에피타이저로 먹은 스프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먹은 그 어느 스프보다 맛이 좋았다.
우리가 이집에서 스프를 먹어보기 전에는 스페인 스프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스프라고 하면 걸죽한 죽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탕에 가깝다.
오늘 먹은 것은 야채로 국물을 내고 국수를 넣어 만든 것이었는데, 속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한국식 맑은 장국같은 느낌의 스프였다.
에피타이저로 한국식 맑은 장국같은 것을 먹고 나니 본식으로 시킨 매운 소세지도 기대했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매운 맛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냥 색만 빨갛고 매운 맛은 거의 나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남들보다 7킬로나 더 걸어서 힘은 더 들었겠지만, 숙소도 마음에 들고 저녁밥도 너무 맛있게 먹어 아주 만족한 마무리를 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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