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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가까워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언덕을 하나 넘어야 했다.
이런 경우 엄청 지친다.
킬로수로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걷기에는 지치는 그런 타이밍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ㅋ 도네이션 코너!!

 

언덕 꼭대기에 물과 탄산 음료를 아이스박스에 넣고 큰 얼음을 올려놓고 순례자들에게 제공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도네이션 서비스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나중에 도시에 들어서고는 이 좌판이 도네이션으로 운영된 사연을 알 것 같았다.

 

정말로 레옹은 큰 도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굳이 대도시를 앞에 두고 작은 가게에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가게를 낸다면 타산이 안 맞을 것이다.
그래도 레옹이라는 도시에 들어서는 순례자들이 마지막 고개를 넘을 때 목이 탈 것을 염려해서 도네이션으로 시원한 음료를 제공해주고 있는 듯하다.


산티아고를 걷다보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생각도 순수해진다.
이런 작은 도네이션 좌판에 대해서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요즘 세상엔 도네이션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산티아고에서는 마음 씀씀이도 달라진다.

 

이쪽으로 가시요.
한달간 우리를 인도하는 노란 화살표가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노란 화살표가 딱 필요한 곳에 매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아무도 길을 잃고 갈곳을 몰라 헤매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텐데...
그래서 <살다가 길을 잃었으면 산티아고에 가라>라는 책이 나왔을까?
여기 산티아고에 와서 걷다보면 이 화살표가 큰 위로가 된다.
언제나 우리가 갈 곳을 이 화살표는 알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조금이라도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이 화살표가 우리가 갈 방향을 향해 그려져 있다.

 

여기서 멈추시오.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곳, 멈출 그곳도 알려준다.
그러니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걸어서 먼 길을 가고 있는 힘든 일을 하고 있지만, 길은 이런 표시가 인도해 준다는 생각으로 길 찾는 어려움 없지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걷는 일은 참 단순한 일이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픈 다리만 걱정하면 되고, 걷다가 경치가 좋으면 그 경치에 젖어 감상하면 되고, 걷다가 목이 타거나 배가 고프면 카페에 앉아 쉬면서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하면 되고, 걷다가 힘이 들면 적당한 숙소를 정해 그곳에서 자면 된다.
뭐 하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없다.
걸으면서 힘든 만큼 내 몸은 단련이 되고, 단련이 된 만큼 걷는 게 쉬워지는 것이다.

인생을 쉽고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하다.

대도시 레옹에 들어서니 도시의 상징인 사자 문양이 여러 곳에 있다.
가게 간판, 각종 표시판, 이정표, 보도블럭, 맨홀 뚜껑까지 이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것도 기념이라고 찍는 우리를 보고 레옹시민들은 그럴꺼다.
"쟤넨 왜 맨홀 뚜껑 사진을 찍지?”ㅋ
얼마 전 ‘제주시’라고 적혀있는 맨홀뚜껑을 보고 좋다고 사진 찍는 사람을 보고 우리가 한참을 웃었던 것처럼…ㅋ
그래도 왠지 대도시에 들어선 기분으로 새삼 들뜬다.

 


레옹을 들어서면 이 문양과 함께 “This is LEON.”이라고 써있다. 멋지다.
뭔가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오늘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기로 했다.
마치 오래된 병원같이 하얀 시트가 씌워져 있는 이층 침대가 방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어제 묵은 숙소가 공립이었는데, 시설은 낙후된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잘 자서, 여기서도 믿고 공립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여기도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싸고 깨끗하고 시원하다.
이렇게 오래된 공립 알베르게는 약간 병원 분위기가 난다.
그래도 일회용 시트도 주고, 값도 싸고, 숙소에 레스토랑도 딸려 있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숙소에 들어가니까 우리 방에 우리의 산티아고 동지들이 많이 있었다.
브라질 팀인 엘리오, 로지, 벳토 그리고 미국에서 온 에릭과 폴라가 우리 양쪽 바로 옆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폴라는 또 나를 보자마자 베드버그에 물린데는 괜찮은지 걱정이 한가득이다.
내가 나중에 폴라가 자는 걸 보니 정말로 침낭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밀고 애벌레처럼 자고 있었다.
아마도 베드버그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가 보다.ㅋ

 

벳토 아저씨는 이번 숙소 직원에게 자기가 전날 숙소에서 베드버그에 물린 것을 이야기하고, 침낭과 신발 등을 직원에게 주었다.
직원이 커다란 비닐 봉지를 가지고 와서 그것들은 집어넣고 스프레이로 된 약을 엄청 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베드버그가 숙소에서 숙소로 옮겨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 것이 생각나서 아저씨에게 위로의 말을 많이 해주었다.
내가 보기에 아저씨도 내가 베드버그에 물렸을 때만큼이나 멘붕이고 울적해 보였다.
나쁜 베드버그…ㅜㅜ

 

이렇게 기대되는 대도시 레옹으로 우리는 입성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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