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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21.(56,296걸음)

오늘은 베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까지 걸었다.
자그마치 56,296걸음... 걸음 수처럼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긴 거리를 걸었다.
초반에 같이 걷던 사람들, 즉 동지라고 느껴지는 멤버가 있는데 그들을 며칠째 걸으면서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걸음이 느려 그들에게서 많이 뒤떨어진 것 같다.
전에 브라질에서 온 로지 아주머니의 여행 가이드 책자를 보았는데, 어제 우리가 본 김경석 아저씨의 것과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보다 한두 마을 앞에서 묵고 출발하고를 하고 있으니 걸음이 느린 우리와는 중간에 길에서도 못 만나고 하니 계속 얼굴을 못 보는 것 같았다.
동지들을 며칠째 못보니 그리워진다.
이제 우리의 발도 걷는데 적응이 되었는지 물집이 아직 조금 있기는 하지만 더 생기지는 않아 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강행군해서 동지를 쫓아가자고 결정했다.

 

우리가 얼마나 일찍 출발했냐면, 아침에 해 뜰 기미도 안 보여 앞이 아무 것도 안 보일 때 출발했다.
사진을 보니 달도 아직 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없는지 알베르게의 대문도 닫혀 있었다.

 

우리가 이런 곳에서 묵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면서 항상 사진을 찍었었는데, 오늘 찍은 사진으로는 어떤 알베르게인지 보이질 않는다.
아무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조금 낙후된 알베르게였는데, 이 사진으로도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 알베르게에서 제일 먼저 길을 나선건 분명하다.
간판도 숙소의 형체도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출발한지 한참이 됐는데도 아직 사람의 모습은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해발 고도 800미터에서는 해가 이렇게 멋있게 뜬다.
내 뒤로 해가 계속 떠오르고 있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몇 걸음 걷고 뒤돌아보면 더 올라와 있고 몇 걸음 더 걷고 뒤돌아보면 또 더 올라와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해돋이를 보기 좋은 명소로 꼽히는 곳이 주로 바닷가이다.
저멀리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솟아 오르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지다.
떠오른 태양이 바다에 반사되는 것 또한 멋진 모습이다.
여기 스페인에서는 지평선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요 며칠 걷고 있는 곳은 해발 고도 800미터가 계속되는 고원지대이다.
그러다 보니 시야 그 어디에도 산으로 막힌 곳을 볼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땅을 뚫고 나오는 태양의 모습도 아주 멋이 있다.
빠르게 떠오르는 태양의 색도, 그 태양을 받치고 있는 하늘의 색도, 그리고 그 태양이 비추고 있는 들판의 색도 빠르게 변한다.

숙소가 불편해서였든 앞서간 친구들을 찾으려고 해서였든, 이날 우리가 어두운 새벽에 길을 나선 건 정말로 잘한 것 같다.
다른 날도 해가 뜨는 새벽의 경치는 아름답고 좋았지만, 이날이 가장 멋진 태양을 본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진 일출을 처음 본 날은 그냥 그 모습에 감탄하느라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그게 못내 아쉬워서 다음에 일찍 출발하는 날에는 일출을 멋지게 동영상으로도 찍어놔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찍긴 했는데, 이날의 일출 모습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마도 산티아고 여정 중 가장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이 마을인 듯하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생겼을 정도이다.
이런 아쉬움이 있으니, 다시 이 길을 걷게 되는 날이 또 올 듯하다.

우리가 일찍 나와서 길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독일에서 온 모니카와 피터를 이 멋진 일출을 보면서 사귀게 되었다.
나이는 우리 정도 되어 보이는 부부였는데, 그저께부터 우리와 같은 숙소에서 묵은 인연도 있었다.
묻지 않아도 그들은 분명 브르고스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왜냐면 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하면 딱 3일째 되는 날부터 발이 엄청 아프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프기 시작한 발은 삼사일 동안 정말로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프다.
모니카가 딱 그런 상태였다.
걸음의 속도를 잘 내지 못하고 있었고, 걷다가 아주 자주 길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출발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시간인데도 그들은 자주 앉아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우리에게 추월을 당했다.

그렇게 우리가 추월한 그들이 우리가 일출이 너무 멋있어서 한참을 감상하고 사진 찍고 그러고 있는데 다시 우리를 따라잡았다.
발이 너무 아파 걷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던 그들이 우리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고 '이들이 뭐하나?'해서 처음 뒤돌아 본 듯하다.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벌써 해가 꽤 많이 떠올라서 아까보다 덜 예쁜데도 독일인 부부는 이제서 감탄하고 사진 찍느라 바쁘다.
사진으로 보니 모니카의 배낭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산티아고에서는 저렇게 큰 배낭을 지고 걸으면 더 심하게 물집이 잡히는데...ㅜㅜ

뒤돌아보는 여유를 갖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것이 산티아고의 일출이다.
또한 산티아고의 긴 여정 중 멋진 모습을 보는 순간은 바로 그때 거기가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다.
현재를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산티아고 길이다.
아무리 생애 가장 멋진 일출을 본 포인트가 어제였어도 다시 걸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산티아고 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예쁘게 장식해 놓은 건물도 해가 뜨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가 뜨니 형형색색의 이 예쁜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꼭두새벽에 눈도 제대로 안 떠질 때 알베르게를 나섰지만, 멋진 일출을 본 후라 걷는 발걸음이 힘차진다.
물집 잡혔던 발에서 오는 고통도 점점 사라져가던 시기여서 아침 나절의 순례길은 한껏 상쾌하다.

 

아침나절에 본 이 이정표는 곧 알베르게가 있다는 안내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찾고 있는 동지들은 어제 저 마을 알베르게에서 묵고 오늘 아침 출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희망적인 것은 저 길의 가로수 아래에서 어제 산꼭대기에서 만났던 콜롬비아에서 온 '환'을 본 것이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소리쳐 인사하면서 어제 읽고 있던 책을 흔들어 보여주며
"거의 다 읽어가고 있어, 아주 재미있는 책이니 이 책을 만나면 꼭 읽어봐."라고 말했다.
잘 걷는 환을 아침 나절에 만난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지들도 저 길을 지나쳤겠지?
저 길의 끝에 동지들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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