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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적지인 브르고스라는 마을은 매우 큰 도시이다.
그래서 마을 입구 이정표가 나오고도 9킬로는 걸어야 숙소가 나온다고 리치아드 아저씨가 알려주었다.
시골 마을은 마을과 마을 사이가 대충 4킬로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브르고스는 정말로 큰 도시인 것이다.
마을 이정표에는 그 마을을 랜드마크가 그려져 있다.
작은 마을의 경우에는 랜드마크가 없어 그냥 마을 이름만 적혀 있기도 하지만, 상당히 많은 마을들이 랜드마크를 그려놓았다.
당연히 큰 도시에도 랜드마크가 그려져 있다.

아주 멋진 성당인데, 우리가 오늘 묵으려는 숙소가 이 성당 근처라니 볼거리도 많을 것 같다.
오히려 큰 도시에 들어서면 길도 복잡하고,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순례자들을 위한 표시가 잘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쉽게 식수대도 찾을 수 없어서 가지고 있던 물의 마지막 모금도 숙소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마셔버렸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탈..

물은 떨어졌는데 숙소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도시에도 사람이 많고 북적인다.
가는 길에 예쁜 성당이 있고, 그 앞에 공원과 광장도 있었다.
날씨도 너무 화창하고 사람들도 길거리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리도 더는 못 걷고 바에서 시원한 맥주와 안주로 주문한 엔쵸비와 올리브를 먹으며 스페인의 화창한 일요일 오후를 즐기기로 했다.

 

전날 머문 마을에서 오늘 도착한 마을까지는 계속 아스팔트 길이었어서 더 갈증이 심한 것 같다.
우리가 해외 여행을 하면서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노천 카페에 앉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우리끼리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을 매우 재미있어한다.
자주 오래 그러고 있으면 느껴지는 그들만의 느낌이 있다.
어쩌면 잘못 판단한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느끼고 알게 되는 경험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견문이 넓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그 나라에 관련된 책을 읽어서 알 수도 있겠지만, 더 조금 알게 되더라도 이렇게 직접 느껴서 알게 된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게 쌓여가는 기억이 여행의 추억이 된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도 이날 일요일 오후의 화창한 날씨와 시원한 맥주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맥주를 마시며 한참을 느긋하게 사람 구경을 하고 다시 숙소를 찾으러 걸었다.
일요일이라서 조그만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젊은 사람들은 큰도시에 도착하면 도시 구경을 하느라고 하루 정도 더 머물기도 한다.
그리고 산티아고를 한번에 완주하지 않고, 몇년에 걸쳐 완주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그 해의 코스를 이런 큰 도시를 중심으로 잡기 때문에 여기서 돌아가는 사람도 많고, 여기서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큰도시에 도착하는 날은 걷는 거리도 짧다. 아마도 일찍 도착해서 구경도 하고 볼일도 보고 그러라는 의미인 것 같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는 꽃잎이 뿌려져 있는 거리도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오늘 결혼식을 올린 것 같다.
여기 저기 축하객들인지 멋지게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다.
군데군데에서는 악기를 들고 나와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래저래 큰도시는 시끄럽고 활기차다.
사진? 마을 입구를 지나친지 한참이 되었는데, 숙소가 안나와 지칠대로 지쳐서 사진도 안 찍었다.ㅜㅜ

큰 도시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도 아주 좋다.
작은 마을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는 조금 큰 집에 큰 방 하나에 많은 침대가 있다.
여기 공립 알베르게는 높은 건물이고, 큰 방도 층마다 있고, 많은 침대가 들어서 있다.
알베르게 로비는 마치 호텔 로비처럼 잘 꾸며져 있다.

로비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가 씻고 나온 우리에게 말을 거신다.
한국 사람이 많아 와서 “안녕하세요.”정도는 한국말로 하신다.
그렇지만 이 할아버지도 스페인 말밖에 할 줄 모르신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계셔서 열심히 들어보지만 대략남감이다.
대충 내용은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옆에 있는 유명한 성당 이야기, 그리고 알베르게 로비에 있는 성인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시고 계신 듯하다.
한참을 못알아듣는 스페인말로 이야기를 하시더니 저녁을 어디서 먹을 것인지를 물으셨다.
그러면서 아주 맛있고 싼 집을 소개해 주신다며 지도를 보며 식당 위치를 알려주셨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식당 이름과 위치를 듣고 마을 구경도 하고 식당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성당은 마을 초입에 있는 이정표에 그려져 있던 바로 그 성당이었다.
정말로 크고 멋진 성당이었다.
사람들은 성당 관람도 하고, 앞에서 사진도 찍고, 성당 앞 광장에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우린 성당 구경을 마치고 여행 안내소에 들려 지도를 하나 얻어 들고 식당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잘 못 찾겠어서 우리가 할아버지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식당을 찾으며 헤매고 있는데, 브라질에서 온 벳토아저씨를 만났다.
“난 길을 잃었어. 우리 알베르게가 어디에 있지?”하고 물으셨다.
좀전에 알베르게에서 이들을 만났었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숙소에 묵는 걸 아시고 우리에게 그렇게 물으신 것이다.
간식으로 먹을 빵을 사러 나오셨는데, 평소처럼 두리번거리며 마을 구경을 하시다가 길을 잃으신 것이다.
땀도 뻘뻘 흘리고 당황한 기색도 역력해서 숙소가는 골목 앞까지 같이 가서 숙소가는 방향을 알려드렸다.
산티아고의 모든 길에는 노란 화살표가 있어서 길을 잃을 일이 없는데, 너무 큰 도시에 들어오니 너무나 쉽게 길을 잃는다.
우리도 그러고 살고 있겠지?

그리고 나서 힘들게 찾아간 식당은 시에스타로 저녁 7시에 연다고 했다.

우리도 갈곳을 잃은 것인가? 아무튼 사진이나 한장 찍자고 찍었는데, 그간 얼굴이 많이 탔다.ㅋ

다시 숙소 앞으로 돌아와 숙소 앞에 있는 바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했다.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한국에 있는 동생이랑 조카와 영상통화했다.
통화가 원활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을 보니 반갑고 신났다.
우리는 이렇게 한국에 있는 식구들과 연락할 여유가 생길 만큼 이제 산티아고 걷는 것에 적응한 것이다.
그동안은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힘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삼분의 일 쯤은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했다.
동생은 내가 힘들어 초반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니 아주 신나 보인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는 이쯤부터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슬슬 재미있어졌던 것 같다.
재밌고 신나니 자랑이 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시에스타 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숙소에 들어와 쉬기로 했다.

이층침대에 누우면 이런 상태가 된다.
걸터 앉지도 못하는 낮은 높이라 언제나 누워 있어야 하는 아래층과 대충 철사나 나무로 받쳐 놓아 삐걱거리는 이층은 어디에 누워도 딱히 편하지는 않다.

알베르게에서 소개시켜준 식당으로 7시가 되기 전에 갔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진짜 맛집을 소개시켜주신 걸까? 아니면 할아버지는 그 알베르게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이 식당을 소개시켜주는 것일까?

할아버지에게 모두 소개를 받았는지, 브라질 팀도 오고 홍콩 아가씨들도 여기로 왔다.
처음에 메뉴판이 스페인 말로만 쓰여 있어서 난감해 하고 있는데, 벳토아저씨가 대충 메뉴 설명을 해주셨다.
포루투갈말과 스페인말은 비슷한 게 많아서 아저씨는 대충 어떤 메뉴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확실치 않아 영어 메뉴판이 있는지 물었더니 다행히 하나 있다며 내주었다.

주문은 일인 일접시, 그리고 시원한 샹그리아 한병.ㅋ

소세지도 크고 감자튀김도 큰 거라, 정말 엄청나게 양이 많은 한접시였다.
그리고 할아버지 말대로 양도 많고 아주 싼 집이었다. 게다가 아주 맛도 좋았다.

홍콩아가씨들도 스페인말로만 된 메뉴판을 들여다 보며 난감해 하길래 우리가 본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홍콩아가씨들은 항상 숙소에서 밥을 만들어 먹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같이 묵는 알베르게는 부엌 시설이 없어서 외식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랭이 내일은 버스를 타고 먼저 갈 거라 이별 파티를 한다고 했다.
언제나 소박하게 밥을 지어 먹더니 오늘은 와인까지 한잔 해서 둘이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내게 서로 누가 더 얼굴이 빨가냐고 물으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마을 구경을 더 했다.
남편이 발이 아파 버린 쪼리 슬리퍼 대신 편한 슬리퍼나 스포츠 샌들을 사고 싶어했는데, 일요일이라 왠만한 가게는 문을 안 열어서 살 수가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오늘은 왠지 쉽게 잘 생각이 들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은 밖에서 웃고 떠들고, 여기 저기에서 음악소리도 크게 들리고,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밤 10시가 되어도 지지 않는 해는 예쁜 노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왠지 설레는 마음이 드는 건 큰 도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이제 산티아고 길의 재미에 제대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일까.
엘리사도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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