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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라는 영화는 개봉 당시 실제 노부부의 잔잔한 삶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라고 많이 회자 되던 그런 영화였다.
그때는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회자되는 내용을 들어서 어떤 내용의 영화인줄은 알고 있었다.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왔는데, 왠지 기분이 묘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크게 어떤 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 흐름은 백살이 다 되어 가는 조병만 할아버지와 구십살이 다 되어 가는 강계열 할머니가 강원도 시골 자기들의 보금자리에서 노년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주는 것이 전부이다.

이 노부부의 삶이 영화같다면 아마도 부부로 산지 75년이 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서로에 대한 애뜻함이 남다르다는 것에 있을 듯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작은 시골집에서 공짜로 얻어 공순이라고 부르는 강아지와 작고 귀여워서 꼬마라고 부르는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꽃을 한아름 꺽어와 준다. 서로의 귀에 꽃을 꽂아주며 예쁘다고 칭찬도 건네면서.

 

무뚝뚝해서 말이 많지 않은 할아버지이지만, 밤에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자 이렇게 화장실 앞에서 할머니를 위해 노래도 부르며 지켜주신다.

 

젊을 때는 힘도 세서 일도 잘 하던 할아버지이지만 이제는 겨우 뗄감으로 쓸 나뭇짐 하나 지기도 버겁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쉬엄쉬엄 산에서 마른 나무 가지를 주워다가 뗄감으로 쓴다.

 

정월 대보름에 귀밝기 술을 마신다는 풍습은 알지만, 이렇게 첫눈을 먹으면 귀가 밝아진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처음 보았다. 믿거나 말거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그저 작은 재미일 뿐이다.

 

할아버지가 평생 음식 타박 안하고 잘 드신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시던 할머니,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두분은 잘 때도 이렇게 나란히 누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쓰다듬어 주며 잠이 든다고 한다. 우리 어르신들의 소소한 애정 표현일 것이다.

 

언제나 커플 옷처럼 이렇게 입고 다니는 두분은 어쩌면 영화적 설정일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말에서 함께 옷을 맞춰입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것을 즐기시는 듯하다.
요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장에 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렇게 손을 꼬옥 잡고 다니시네.'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걸 보면 완전 영화적 설정만은 아닌 듯하다.

 

할머니는 장에서 어린 아이의 내복을 여섯 벌 샀다.
나는 처음에 손주들에게 명절 선물로 주려고 산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집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설명을 한다.
두 분은 슬하에 자녀를 12명을 두었다고 한다. 그 중 6명이 홍역에 걸리거나 전쟁통에 죽었다고 한다.
그 6명의 죽은 아이에게 과거에 가난해 한번도 사입히지 못했던 내복을 해입히고 싶어서 산 것이다.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먼저 죽은 사람의 장례 때 이 6벌의 내복도 함께 태워 저승에 있는 죽은 자녀에게 입히고 싶다고 울면서 이야기하신다.

 

두분의 나머지 자녀들은 다들 잘 자리를 잡고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명절이나 어른들의 생신 때가 되면 다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 모이면 의례 그러듯이 크고 작은 다툼도 있다.

 

할머니의 무릎이 자꾸 아프다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도 할아버지는 따라가서 검사실 안에서 지켜봐 주신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우리의 옛 풍습대로 저승에서 입을 옷을 태워준다.

 

이렇게 눈이 덮힌 산속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서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며 하염 없이 우는 할머니의 모습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온다.

 

이 영화는 크게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스포라고 할 것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어르신들의 사랑법에 대해 왠지 낯설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75년을 부부로 살았던 두분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관계라고 할 수도 없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의 사랑법과 전혀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나 또는 부모님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부부처럼 알콩달콩하며 살지만도 않는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긴 시간이 어쩌면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동생이 부모님과 이 영화를 함께 보고 나와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는데, 나도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인 줄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말로 뭐라 할 수 없고, 그냥 그 '묘한 기분'을 화면을 통해 스스로 느껴야 하는 영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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