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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전날 그러니까 2월 4일이 입춘이었다.
농사를 주로 하던 시절에 24절기는 매우 중요한 시간의 척도였다.
입춘이란 봄이 오는 길목으로 그 해의 농사를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런 입춘이 되면 제주도는 2천년 전부터 입춘을 맞이하는 굿을 했다고 한다.
특히나 아직도 마을굿이 조금 남아있는 곳이 있는 제주도에서의 입춘굿은 볼 것이 많을 듯했다.

입춘굿을 한다는 현수막이 거리에 나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꼭 구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제주도로 이주해온 지 2년이 되었는데, 그동안은 제주도를 잘 알지 못해서 이런 행사가 해마다 열리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이 굿은 탐라국 시절부터 있던 풍습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잠시 그 맥이 끊겼다가 1990년대에 다시 복원되어 이어져 오는 전통이라고 한다.
이번에 나도 이 굿을 구경하는 것으로 제주의 전통을 하나 배워볼 생각이다.


이걸 보고 올해의 행사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ㅋ
제주 와서 제주도 설화에 관한 책을 몇권 읽어서 얘들이 자청비와 문도령 그리고 정수남인 걸 난 이미 안다.

탐라국 입춘굿은 입춘 전전날부터 시작된다.
올해는 2월 2일부터 2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2일은 거리굿, 3일은 열림굿, 4일이 입춘굿을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설연휴 육지에 가는 일정과 맞물려서 올해는 2월 2일에 있는 거리굿만 구경할 수 있었다.

마을 거리굿은 각마을에서 시작한다. 춘등을 나누며 입춘을 알리고 집집마다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제주시여서인지 거리굿은 많이 퇴색이 되어 있었다.
주민센터 앞에서 시작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갔더니 한산하니 아무도 없었다.
주말이라서 주민센터도 문을 닫아서 전화를 했더니 당직하고 있는 공무원이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마을 마을굿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 슈퍼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그거 돈 받으러 다니는 건데, 뭐 볼게 있나?"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풍물패들이 가게마다 들리면서 풍악을 울려주고 돈을 받고 그러는 것으로 간소화된 듯하다.
멋진 거리굿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커서 많이 아쉬웠다.


아주아주 협소해져서 실망이 컸던 거리굿 모습이다.ㅜㅜ

아무튼 이렇게 각 마을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제주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세경제'라는 유교식 제례를 올린다.
세경은 제주도 말로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땅에 올리는 제사인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농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자청비'에게 제사를 지낸다.
탐라국에 살고 있던 나이 많은 부부가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올려 얻은 딸이라고 '자청비'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자청비는 하늘 옥황의 아들 문도령과 사랑을 키우고, 하늘 나라까지 올라갔지만 이런 저런 사연으로 다시 땅으로 내려오면서 오곡을 가지고 내려와서 제주도에 씨를 뿌렸다고 해서 농사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여인이다.


내가 몇날 며칠을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은 자청비거리에 있는 자청비와 문도령의 동상이다.
마실용으로 산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가다가 발견(?)했다.ㅋ

아무튼 세경제는 농사와 관련이 있는 자청비 설화를 알고 있으면 구경하는데 도움이 된다.

상세경신은 문도령이고, 중세경신은 자청비이고, 하세경신은 정수남이란다.

그들에게 제를 올리는 것인데, 제주시장부터 지역 유지들이 와서 절을 한다.
이 세경제부터 아주 볼만한 것들이 많다.


제례를 위해 차려진 제단이다.


유교 제례를 처음 본 것이라 진행하는 사람이 읊는 구호(?)도 낯설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정성껏 제를 올린다.


한해의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과 상업이 번창하기를 주로 기원한다.




그리고 한바탕 풍악에 맞춰서 놀고 나서, 제주목관아까지 거리굿을 하며 행진을 한다.

제주목관아는 제주를 관장했던 옛날 관청 같은 곳이다.
제주에서 행해지는 전통적인 행사는 모두 여기를 기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에 놀러와서 서울의 경복궁을 구경하는 것처럼 둘러봐도 좋은 곳이다.


먼저 만장이 앞선다.


아마도 이것이 춘등인 것 같다.
입춘굿을 알리는 등이다.


이건 '낭쉐'라고 부르는데, 내 짧은 제주어 실력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나무로 만든 소'란 뜻일 듯싶다.
'낭'이 나무이고 '쉐'가 소일 것이다.ㅋ


농사의 신인 자청비도 거리굿에 함께한다.


제주 시청을 나와


우리집 근처 큰길을 지나


동문시장에 있는 산지천 광장에서 다시 한바탕 풍악을 울린다.



뭔가 공연을 준비한 사람들이 각자의 마을에서부터 거리굿을 하며 이곳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제주목관아는 가깝다.
제주목관아 앞 광장에서 이날의 하일라이트인 '사리살성'과 '입춘휘호' 그리고 '광장거리굿'으로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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