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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산을 돌아 평평한 들이 나타났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우리는 이렇게 산을 오르고 평지를 걷고 산을 오르고 평지를 걸으면서 점점 고지대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평지를 가다가


오르고


또 평지


또 오르고


다시 평지

이렇게 조금씩 고지대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을 고도 600m인 땅을 계속 걷게 된다.
이 고원 지대를 메쎄타지역이라고 한단다.



스페인의 농업 경제 구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넓은 평지에 있는 밀밭과 보리밭에는 분명 경계가 안 보인다.
아마도 이 밭의 소유자는 엄청 큰 땅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밭 하나만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 규모가 한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저 앞에 미국에서 온 쌍둥이 형제인 강태규, 강남규 형제가 걸어가고 있다.
아빠와 함께 산티아고를 걸어보겠다고 준비하다가 아빠가 일 때문에 바빠서 둘이 왔단다.
대단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3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인데....
이란성 쌍둥이라는데, 남자아이들이라 말도 잘 안하고, 묵묵히 걷기만 한다.
나란히 걸으면서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참견쟁이인 나는 궁금해 죽겠다.ㅋ



오늘은 주로 이렇게 곧게 뻗은 끝이 안 보이는 길만 걸었다.
넓고 평지라 편하지만 그늘이 없어 너무 덥다. 사진을 다시 봐도 열사병에 토나올 것 같다.ㅜㅜ
다행히 오늘은 바람이 꽤 불어 가끔 땀을 식혀주었다.


양귀비인 빨간 꽃이 보리밭 가에 예쁘게 피어있다.
이 끝이 안 보이는 길과 360도 지평선이 보이는 평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경치이다.
더위와 발에 생긴 물집 때문에 천천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걸음을 힘들게 하루종일 걸었지만 그 이색적인 경치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기도 하다.


이때 남편은 등산 스틱도 가지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스틱만은 꼭 있어야 한다고 챙겨온 것이다.
짐의 무게를 다리가 모두 지탱하면 더 힘들다고 꼭 스틱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나는 스틱도 짐같아 싫던데, 팔을 열심히 휘저으며 걷는 게 좋더만.

아무튼 산티아고 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틱 아니면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체리 따주시던 프랑스 할아버지가 내가 스틱없이 팔을 휘휘 저으며 걷는다고 흉내도 내고 그러셨는데, 어쨌든 난 스틱도 지팡이도 짐 같아서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엄청 유명한 푸드트럭


졸고 있는 쌍둥이 형제


앉으면 무조건 신발부터 벗어야 한다.

허허벌판에 뜬금없는 푸드트럭이 있다.
이 트럭이 없었으면 내리 3시간 이상은 허허벌판에서 땀 뻘뻘 흘리며 걸었을 것이다.
태양과 맞서 몇 시간을 걸어온 사람들에겐 단비같은 장소다.
이 푸드트럭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스마트폰 지도에도 나온다. ㅋㅋ
고정된 집도 아닌 이동식 푸드트럭인데도 지도에 나오는 거 보면 산티아고를 걷던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세상 반가운 푸드트럭인 것이다.

쌍둥이 형제도 이곳에 들려 음료수를 사먹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지쳐보이길래 내가 “너희들 아침에 포도주 나오는 데서 포도주 마셨지?”하고 농담을 건넸더니 절대 아니라고 손사레를 친다.
뭐 안될 것도 없는데 이럴 때 한번 먹어보지 그랬냐니까 쑥스럽게 웃는다.
이들이 포도주를 마셨을까?
아무튼 음료수를 시켜 마시고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걸 보면 살짝 마셔본 게 틀림 없다.ㅋ


계속 흙길이다가 포장된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포장된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렇게 글귀를 새겨 놓았다.
이 글귀는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하루에 백번도 더 하는 인삿말이다.
Buen Camino(부엔 까미노), 의역하자면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지친 순례자들에게 먼저 이 말을 전하고 싶어도 아직 입에 익지 않아 자꾸 선수를 놓친다.
얼른 입에 익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래서 속으로 구령을 외듯이,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하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게 스페인말이라 스페인 사람이 이 말을 할 때가 제일 멋지다.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이 이 인사를 할 때와 스페인 사람들이 이 인사를 할 때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특히 마을을 지날 때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어감이 아주 따뜻하다.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같은 인사말인데 약간씩 사투리가 섞이는지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제주도에도 올레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
한참 올레길이 유명할 때는 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겨울부터 제주도 도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도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에게도 이런 인삿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사람에게는 특히 인사가 인색한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이런 말 하나 만들어서 우리도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습관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쓰잘데 없는 생각..ㅋ


목적지까지 5킬로 남았을 때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든 순례자들과 함께.
브라질 노인 세명, 이들은 나중에 우리랑 절친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혼자서 걷는 프랑스 할머니, 이 할머니는 계속 아직도 5킬로나 남았다고 투덜거리며 엄청 힘들어 하시더니, 차 하나를 길에서 얻어 타고 목적지에 들어 오셨다.
그리고 걸음이 느려 언제나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들 무리에 섞여 걷는 우리.ㅜㅜ


이렇게 항상 뒤에 쳐지는 후발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주 작은 나무그늘에 나눠 앉아서 정말로 한참을 쉬었다.
이날 목적지 마을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쉽게 나타나 주지 않았다.
우와, 너무 더워 일사병 걸리기 직전이다.
머리가 띵한게 약간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이대로 길에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평점도 좋고, 특히 한국사람들이 좋은 후기를 많이 써 놓은 알베르게 ‘오스트리아’에 묵기로 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해 알베르게 카운터에 직원도 어딘가에서 쉬고 있는지 카운터가 비어 있었다.
그래도 더위에 걸어온 순례객들을 위해 시원한 수박도 잘라놓고 먹을 수 있게 서비스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인데, 남편 말이 직원들이 독일어를 쓰고 알베르게 이름도 그렇고 아마 주인장이 오스트리아인인 것 같단다.

오늘 더운데 늦게까지 걸어와서 우리는 세탁 서비스를 받으려고 했다.
빨래를 해주는데 4유로인데 절대 우리 스스로 세탁기를 만지면 안된다.
우리가 직원이 없어 기다리다가 너무 피곤해 그냥 세탁기를 사용했는데, 잘 모르고 세탁기가 아니라 건조기에 빨래를 넣었다.
나중에 여자 직원이 와서 엄청 차갑게 혼내서 당황했다.
평점은 좋지만 직원이 너무 불친절해서 산티아고 여행 내내 가장 마음이 서늘했던 알베르게가 되었다.
약간 집나온 설움을 느낀 날이었다고나 할까?

이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걸어 간다고 절대로 느린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걷고 있으면 저 멀리 개미처럼 보이는 앞서가는 순례객이 무지 부럽다.
우린 이렇게 느리게 걸어서 언제 저기까지 가지? 하고 생각하지만, 금세 우리가 그들이 개미처럼 보이던 그 지점을 걷고 있다.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목적지에도 느리지만 걸어서 오후에는 도착한다.
걷는 게 위대해 보이는 곳이 산티아고이다.

내일은 목적지가 30킬로나 떨어진 곳이라 다 걷지 말고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묵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남편은 물집이 더 많이 잡히고 있어서 둘다 걷는게 더 느려졌기 때문이다.

보통은 중간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는 묵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묵는 사람이 거의 없으면 조용하고 편할 수도 있고, 어쩌면 장사가 안되는 집이니 관리를 소홀히 해서 지저분하고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어떨지는 자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할 일은 아니다.
아무튼 발이 너무 아파 우린 내일 뭐든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지금 보니 이 사진... 남편은 발이 너무 아파 어정쩡하게 서 있다.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것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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