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우리는 모두 사춘기를 지나왔다.
나는 성격이 무난한 편이라서 사춘기를 심하게 겪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때는 가장 삶과 인생에 대해서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절이었던 듯하다.
단지 정답을 전혀 알 수 없는 끝없는 고민이었던 건 함정이랄까?

 

은희는 사춘기를 지독히 앓고 있는 16살에 세상 제일 무섭다는 중2이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만화 그리는 걸 매우 좋아하는 아이이다.
그래서 우열반으로 가려서 수업을 하는 학교에서 은희는 열반에 속해 있다.

 

은희의 엄마 아빠는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다.
방앗간이 바쁜 날에는 온 가족이 나가서 일을 도와야 하는 평범한 자영업자 가족이다.

 

은희 언니는 공부를 꽤 잘해서 아빠가 학원도 열심히 보내고 내심 기대를 했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비뚤어져서 공부를 안하더니 강북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 갔다.
그래서 언제나 밥상 머리에서 아빠한테 구박을 받기도 한다.
은희와 같은 방을 쓰지만 현실 자매처럼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은희의 오빠는 요즘 아빠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다.
그래서 아빠도 엄마도 오빠에게는 뭐든지 오냐오냐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빠는 조금 폭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은희가 오빠에게 대들거나 하는 날에는 엄청나게 은희를 때린다.
은희는 그런 오빠에게 맞는게 싫지만 반항하면 더 맞을 수 있으므로 오빠가 지쳐서 안 때릴 때까지 그냥 맞고 있는다고 한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 슬쩍 오빠가 때렸다고 일러도 보지만, 엄마아빠는 크게 관심을 안 갖고 "싸우지들 말아라."하고 만다.

 

은희에게는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남자친구도 있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은희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씩 배워간다. 그러나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은희에게는 마음이 잘 맞는 단짝 친구도 있다.
둘은 같이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을 흉보기도 하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연애 상담도 서로 하고, 집에서 혼나서 상처받은 것에 대해서도 아픔을 나누고, 일탈도 함께 하고, 원수가 될 것처럼 싸웠다가 다시 절친이 되기도 한다.

 

은희가 그냥 좋다고 하면서 은희의 행동도 따라하고 은희에게 선물도 주고 은희 걱정을 하는 후배도 있다.
이 후배 역을 하는 아역배우는 내가 본 독립영화에 거의 매번 나오는 거 같다.^^

 

은희가 다니는 한문학원의 선생님은 은희에게 의지가 되는 유일한 어른이다.
엄마도 아빠도 은희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마음에 있는 얘기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다.
학교 선생님은 좋은 대학만 가라고 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사람 취급하기 때문에 은희는 학교 선생님은 거의 안중에도 없다.
한문 선생님은 그런 은희가 정말로 마음을 의지하게 된 진정한 어른이다.

 

이런 은희는 귀밑에 혹이 생겨서 어쩌면 안면 장애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큰 수술을 받는 일이 생긴다.

 

또,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등교해 보니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하며 난리가 난다.

영화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은희의 주변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런 내용이다.


우리가 사춘기를 정의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다, 주변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시기이다, 가치관이 성립되는 시기이다... 등등의 말을 한다.
이 영화는 사춘기 시기에 겪는 한 아이의 상태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은 어려서 세상에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서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어설프고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의도치 않는 문제가 불쑥불쑥 생기는 상황전개가 특히 잘 표현되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사춘기'를 떠올려 보았다.
은희처럼 심하게 겪지는 않았지만, 나혼자는 나름 진지했던 그 시절의 단편단편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무도 안 보는 일기장에 얼마든지 뜯어내고 볼 수 있는 작은 자물쇠를 잠궈놓기도 하고, 친구들과 뭔 비밀 이야기가 그리 많았는지, 그리고 나도 그때부터 내 방에 들어가면 방문을 단단히 닫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났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되어 있는 내가 그런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어야 할 지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아이들은 온전히 그 아이를 믿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만큼만 어깨를 빌려주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설프다고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는 것보다는 옆에서 지켜봐주는 그런 어른이, 사춘기 아이에게 가장 좋은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꼰대 노릇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할텐데....

요즘 아이들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꽤 괜찮은 영화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