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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외국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프랑스 영화이다.

 

음악을 전공한 부부 조르주와 안느는 나이가 들어서도 연주회를 다니며 노년을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파리에 있는 적당한 아파트에서 둘이 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언제나 행복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날 안느의 제자가 하는 연주회에 다녀와서 둘은 조용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식탁에 두런두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느가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
멍~하니 그저 초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안느는 잠깐 정신을 놓은 듯하다.
조르주가 안느를 계속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이 돌아온 안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병원에 가다녀온 안느는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마비증상이 와서 안느는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풍이 온 듯하다.
왼손과 왼발이 마비로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안느는 언제나 이렇게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집안에서 이동하거나 화장실을 갈 때는 조르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 다녀온 안느는 남편에게 한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한다.

나는 다시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조르주는 혼자 안느를 보살펴 주기로 했다.

 

서재의 긴 쇼파에서는 안느가 누워 책을 보고, 작은 쇼파에서는 조르주가 앉아서 책을 보았다.
언제나 음악 감상을 하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취미였던 둘에게는 안느의 마비가 그렇게 불편한 일은 아니었다.
정갈한 안느가 사람들이 자신의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고 입방아에 올리는 것이 싫다고 해서 가족도 잘 만나지 않고 보살핌도 남편에게만 받으려고 한다.

 

안느는 점점더 침대에 누워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조르주는 안느의 마비가 조금이라도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운동도 시켜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조르주의 병간호가 지극정성이어도 안느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딸아이가 찾아왔지만 안느는 거의 말을 잘 못하고 그나마 하는 말도 헛소리를 한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녀의 모습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르주의 병간호는 여전히 지극정성이다.
점점 보살피기가 어려워져 도우미를 시간제로 써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느의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도우미를 짜르고 힘들지만 조르주가 더 시간을 들여서 안느를 보살펴준다.

 

안느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면서 안느도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하다.
이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지 음식도 잘 먹지 않고, 물도 잘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안느 때문에 속이 상한 조르주가 어느날은 홧김에 안느의 뺨을 때린다.
아마도 오랜 병간호에 조르주의 마음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듯하다.

 

그리고 조르주는 안느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만다.

 

조르주는 유언장처럼 자신의 지금 상태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긴 편지를 쓴다.

 

프랑스 파리에서 평생을 음악을 하며 살았던 교양있는 부부의 노후가 어쩜 이렇게도 쓸쓸할 수 있을까?
사람이 품위있게 살다가 그 품위를 죽음 앞에서도 유지할 방법이라는 것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자신의 의지와 달리 몸도 마음도 허물어져 가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음 앞에는 평등하다는데... 정말로 잘 늙고 잘 죽는 방법은 무엇일까?
늙고 죽는 것이 슬프고 고통스럽지 않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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