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이번에 본 영화는 '춘희막이'이다.
영화에 대한 예고편조차도 본 적이 없고 개봉한 것도 모르고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였다.
그래도 요즘 어르신들의 영화를 계속 보다보니 연관되어 소개된 것이 있어서 보게 되었다.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은 없지만 특이한 동거를 하고 있는 첫째 마누라와 둘째 마누라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제주도에서는 아주 근례까지 이런 풍습이 있었어서, 큰어머니 작은어머니의 개념이 많이 익숙하다고 한다.

 

경상도 영덕에 살고 있는 두 할머니는 같은 남편을 두고 있다.
막이할매가 아들을 못 낳은 것은 아니지만, 사는 게 힘들고 가난해서, 아들 몇을 낳았지만 불행하게도 다 죽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줄 춘희할매를 들였다. 춘희할매는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

 

"지는 애 낳고 젖만 멕이고, 내가 다 키왔다."라고 막이할매는 말한다.
속도 많이 상했고 샘도 많이 났지만, 아들 낳으면 보내버릴려고 했는데, 양심 상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같이 살게 된 것이 46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춘희할매는 막이할매에게 "할매요, 할매요."하고 부른다.
아무래도 첫부인인 막이할매의 호령에 춘희할매는 시키는대로 다 한다.
상하 위계질서가 있어 보이지만, 춘희할매는 막이할매만 졸졸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의지한다.

 

장에 나가면 자기는 집에 있는 헌신을 신더라도 춘희할매에게는 3,000원짜리 슬리퍼도 사주고

 

눈 침침하지 말라고 안약도 살뜰이 넣어주고

 

어디 나설 일 있으면 춘희할매 머리 빗겨주고 로션 발라주는 것도 막이할매가 한다.

 

"돈을 알아야 내가 살림을 맡기지. 내가 천년 만년 사나?"하면서 춘희할매에게 셈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춘희할매도 나름 이 집안에서 자기의 몫을 열심히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씨받이로 이 집에 와서 막이할매 밑에서 궂은 일은 모두 했다.

 

막이할매 어깨도 주물러주고

 

배 아프다고 하면 배도 쓸어주고

 

짜투리 땅에 먹을 걸 심어 먹으려고 쟁기질도 소처럼 하고

 

혹여나 막이할매가 애들집에 들리느라 며칠 집을 비우면 "보고 싶다, 보고 싶다."하면서 잘 먹지도 않고 대문간에 앉아 기다리기만 한다.

 

막이할매는 절에 댕기니 교회에서 맛난 거 준다고 해도 안가는데, 춘희할매는 가서 먹고 꼭 이렇게 막이할매 먹을 걸 싸가지고 온다.

 

이런 두 사람의 동거는 큰 어려움 없이 계속 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막이할매에게는 걱정이 있다.
자기는 자꾸 늙고 언젠가는 자기가 먼저 죽을텐데, 셈도 모르고 치매끼도 있는 춘희할매를 어찌 혼자두고 갈지....

 

두 할매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이사온지는 18년이 되었다고 한다.
밭일을 해서 자기들 먹을 거 먹고 남은 건 조금씩 내다 팔아서 푼푼이 모은 돈이 천이백만원이 넘는다.
막이할매는 자기가 죽으면 그 돈으로 춘희할매를 양로원에 보내줄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얄궂은 풍습으로 인연이 되어 노년에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가 덤덤하게 전개되고 있는 영화이다.
씨받이 풍습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두 할머니가 언니 동생처럼 혹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돌봐주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쓸쓸히 혼자 늙어가는 많은 노인들보다 그들의 노후가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