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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각장애인이 쓴 글이란다.
급 관심이 간다.

친구는 ‘들리지 않는 삶’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들리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게는 ‘들리지 않는 삶’이 유일무이하다. 오히려 그래서 괜찮다. 들을 수 있는 삶을 동경하고 가끔 궁금하기도 하지만, 겪어본 적이 없으니 간절히 무엇을 듣고 싶은 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을 뿐이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가엾게 여길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듯 나 또한 계속 살아갔다. 모두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듯, 나도 보청기를 소중히 여길 뿐이다.

-농인은 그렇게나 우리와 다른 세상에 놓여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들이 뭔가 부족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 내 생각은 틀렸다. 작가의 이 문장이 나를 또한번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기분은 단단하게 고정된 게 아니라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가라앉거나 붕 뜬다. 어떨 땐 묶여있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있을 때도 있다. 완전 제멋대로다. 오랫동안 기분을 관찰한 바로는, 제멋대로 흩날리면서도 제 온도를 지키려는 고집이 있어서 뜨거웠다가 차가워질 때, 반대로 차가워지다가 뜨거워질 때는 굼떠진다. 적정 온도를 벗어난 기분은 정신과 육체까지 영향을 미친다.

-요즘 내가 기분을 잘 다스리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둘쑥날쑥한 기분의 상태 때문에 힘들다. 작가도 기분의 이런 날뜀에 대해 알고 쓴 듯하다.

넷플릭스, 시크하고 무뚝뚝한데 왜 이렇게 멋있는지, 넷플릭스 형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충성! 제 12,000원 얼마든지 가져가십쇼!

-이건 사대주의도 물질주의도 아닌 청각장애인의 진심어린 함성이다.
나도 이런 사정을 얼마전에 알았다. 최근 유행하는 이런 미디어 서비스를 하는 컨텐츠들이 많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다양하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그중 넷플릭스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전에는 올레 티비를 봤었는데, 월정액을 결제하고도 인기있는 영화는 유료로 운영하는 이상한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들어서 끊어버렸다.
넷플릭스는 그 컨텐츠에 스트리밍 된 것은 월정액으로 모두 볼 수 있다.
그래, 이게 바로 월정액이지.. 그리곤 언제나 넷플릭스만 본다. 거기에 없으면 안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급식실 언니의 테블릿에 티빙이 있는 것을 보고 둘러봤다. 그것도 유명한 것은 돈을 내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을 언니에게 들었다.
한국 영화에 한국어 자막이 잘 서비스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 있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무조건 한국어 자막이 있다. 외국 영화든 한국 영화든…
그러니 청각장애인인 작가가 넷플릭스 형님!이라고 부르며 얼마든지 내돈을 가져가십시오. 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
작은 배려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잘 때나 목욕할 떄를 제외하고는 항상 귀에 보청기를 달고 사는 나에게 이어폰은 사치다. 이미 보청기가 꽂혀 있는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을 공간은 없으니까. 가끔은 귓구멍이 두개, 세개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사소한 것에서 청각장애인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도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불편을 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입모양을 읽어 청력에 도움을 받는 사람은 마스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볼 수 없단다.
그래도 이어폰 문제는 현재 해결되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물건이었는데, ‘골전도 이어폰’이라는 것이 있어서 귀에 꽂지 않아도 뼈를 진동해서 소리를 전달한단다. 과학이 더더더 발달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했단다. 들을 수 없으니 분명 남들보다 느려 뒤쳐질테니 더 많은 책을 읽어서 스스로 많이 깨우치도록 지도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글도 잘 읽고 잘 쓴다.
청각 장애인들은 한국어보다는 한국수어가 제1언어기 때문에 한국어 읽기와 쓰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최근 들어 어려서부터 일반학교에 청각장애아를 보내는 사례가 많아서 읽기와 쓰기를 배우기는 하지만, 보통 아이들처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고된 길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의 중요함도 새삼 느꼈다.
문장력이나 서술하는 기술에서 그 어느 작가에게도 뒤지지 않는 솜씨였다.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대단한 청년을 만난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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