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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어보기로 했다.
전에도 여러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작가이다.
올해는 반드시 끝까지 읽어내겠다는 각오로 잡았다.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 보다는 예술과 기대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을 잘라내고, 우리의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역시 글을 만만하게 쓰지 않는다. 작가는 ‘그는 오후 내내 여행했다’라는 글에는 현실에 있는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실제로 여행을 가면 자질구레한 그래서 여행 자체를 번거롭게 하는 것들이 산재해 있는데, ‘오후 내내’로 압축해 버릴 수 있는게 여행기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데제생트의 경고(여행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사의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여자 친구와 바베이도스라는 멋진 휴양지에 놀러가서 음식점에서 나온 디저트 때문에 시덥지 않게 말다툼을 하고 여행을 완전 망쳐버린 작가의 고백이다.ㅋ

파리에서 지루하게 살던 보들레르는 인도로 여행을 갔다. 가던 중 배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동안 고생을 했다. 보들레르는 인도에 가도 마찬가질 거란 생각에 도중에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어딘가로 떠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마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대해 환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또한 삶에 대해 절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보들레르처럼 여행을 꿈꾸는 거 같다. 나? 나는 다행히(?) 삶도 즐기고 여행도 즐기는 스타일이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에구… 비행기 타고 싶다. 우리의 현실에서 피융하고 여행의 세계로 순식간에 솟아올라가게 해주는 그런 비행기를 타고 싶다.

우리의 눈에 감추어져 있었다 뿐이지, 사실 우리의 삶은 저렇게 작았다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실제로 볼 기회는 드문 세상이다. 그러나 매나 신에게는 우리가 늘 그렇게 보일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세상, 그때의 감흥은 정말 이렇다. 한눈에 보이는 저 곳에 내가 속해 있었구나…하고. 그리고 성냥갑 같은 건물과 비현실적으로 작은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하고 개미만한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보기도 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는 명제를 아주 잘 설명해주는 문장들이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맞다. 내가 일본 영화를 보면서 이국적이다라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을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어떻게 속박하여 그림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자연 가운데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하다!
따라서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화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기가 그릴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니체)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느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는 그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여행 중 미술관을 빼놓지 않고 다니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림을 볼 때 내가 감동하는 것이 바로 그 화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상에서 끄집어내어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 그림 취향이 대상 즉 사람이나 자연에 대한 취향이 어떠한지를 대변해주는 것이라니.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타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팡세)

-이 책에서 작가가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반고흐의 그림에 대한 가이드하는 내용이 있다. 고흐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 중에 고흐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더 흥미있게 열심히 읽다가 이 글을 보고 쫌 웃겼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보다는 그림에 더 열광한다는 일침에 좀 찔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니체가 화가는 좋아하는 것을 그려냈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것에 감동하여 대상을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는 생각이 더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사이프러스 나무나 올리브 나무를 앞으로는 다른 시각에서 볼 것이다. 고흐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퉁이는 예술가들이 그려주거나 글로 써준 후에만 돌아보게 된다.

데생에 대해 러스킨은 이렇게 말했다. “하마가 하마로 태어나듯이 어떤 사람은 화가로 태어난다. 자신을 기린으로 만들 수 없듯이 자신을 화가로 만들 수도 없다… 나는 목수를 화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목수로서 더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데생을 통해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의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데생 연습을 해야겠다.ㅋ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팡세)

-이 문장을 이 책에서 또 만났다. 걷기 책을 읽을 때 보았던 문장이다. 반가워서 또 깊이 생각하게 된다.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인류를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니체)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소수에 속하고 싶으면 자신의 경험을 잘 관리하고 주변을 잘 관찰하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러스킨처럼 내 주변을 ‘말그림’으로 묘사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소 어렵게 글이 전개되어 쉽게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많은 주제에 대해 색다른 각도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가 유명한 작가나 화가들의 방식을 쫓으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나 소소한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쓴 것이라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술을 알려주는 듯하다.
어쩌면 나도 다음 여행에서는 그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스케치도 해보고 글로도 표현해 볼 듯하다. 그러고 보면 그간의 여행에서도 꾸준히 글을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리고 했으니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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