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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단순한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신분의 차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런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과 우정이야기는 동화에서부터 소설, 드라마, 영화까지 다양하게 다뤄진다.

이번에 내가 본 영화는 '그린 북'이라는 영화이다.
처음에 제목과 포스터를 보고 두 남자의 끈끈한 우정을 다루는 영화이니 아마도 그린 북은 좋은 책이려니... 하고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미국이다.

 

주인공 토니는 뉴욕에 있는 클럽에서 일한다. 일종의 기도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클럽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힘으로 제압해 내보낸다.
어려서부터 허풍이 심해서 주변사람들은 그를 '떠버리 토니'라고 부른다.

 

토니의 가족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할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형제의 식구들까지 언제나 토니의 집에서 모여 밥도 먹고 야구 경기도 함께 보는 등 이탈이아 사람의 특징처럼 끈끈하고 수다스런 집안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신도 이주해온 사람이지만, 토니는 유색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집에 배관을 수리하러 유색인이 왔는데, 아내가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음료수를 대접했다.
그들이 가고 아내 몰래 토니는 그들이 먹던 컵을 쓰레기통에 마치 더러운 것을 버리듯이 버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일하던 클럽이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2달간 휴업을 하게 되었다.
클럽에서 일하면서 근근히 벌어서 집세도 내고 생활비도 하던 토니는 여기저기 자신이 일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사람은 셜리 박사라는 사람이었다.
면접을 하러 오라는 주소로 가보니 오페라 하우스에 살고 있는 셜리 박사는 피아노를 치는 음악가였다.
건달같은 토니와 엘레강스한 셜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셜리는 미국 남부에 공연 투어를 갈 생각이다. 이런 자신의 투어를 위해 운전기사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할 것이라 8주 정도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어쨌든 돈이 궁한 토니는 주급도 많이 준다고 하니, 흑인이어서 마음에는 안 들지만 운전 외에 다른 일은 돕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셜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토니와 계약을 한 음반사 직원이 그에게 전해 준 것은 8주 동안 타고 다닐 멋진 차와 '그린 북'이라는 이상한 가이드 북이었다.
그린 북은 공연 투어를 다니면서 셜리가 묵을 수 있는 호텔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 등의 주소와 설명이 수록된 책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말 많고 털털한 토니에게 깔끔하고 예의바른 셜리는 매사에 지적질이다.
기념품 매장에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돌을 슬쩍하는 사람도 토니고, 자동차 안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는 것도 토니고,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버리는 것도 토니여서 언제나 셜리는 정중하게 타이르고 가르친다.

 

최고의 음악가이고 교양도 두루 갖추었고, 매사에 예의바르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셜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은 놀랍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에 드는 양복을 가게에 들어가 입어볼 수도 없고,

 

공연 때문에 밤에 이동하는데, 흑인이 밤에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히고,

 

멋지게 공연을 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잠시 들릴려고 했더니, 밖에 있는 흑인 전용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하고,

 

공연 후, 저녁에 바에 앉아 술 한잔하려다가 흠씬 얻어맞기도 한다.

허풍쟁이에 다혈질인 토니와 음악적 경지가 높아 무대에서는 환영받지만 현실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셜리의 이 투어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확인해 보자.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돈도 많고 음악적으로도 성공하고 교양이 풍부한 셜리가 매우 고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관습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들을 짓밟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였다.
특히 미국 남부는 그런 인종차별 문제가 더 심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린 북'이라는 것이었다.
위험하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마치 피해다니 듯, 격리된 듯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인종차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인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이지만, 유색인이나 흑인들에게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1960대 미국인이 흑인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글로벌화되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의 문화는 글로벌화 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이런 잘못된 생각들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주제가 다소 무겁지만, 영화는 아주 유쾌하게 이끌어 간다.
그러나 유쾌함 속에 담긴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매우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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