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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전 이질로 풀밭에 코를 박고 쓰러졌던 작가는 다시 비행기를 세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코를 박았던 그 지점으로 돌아와 걷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좌절된 터키에서 이란을 거친 후, 새 여정인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걸을 예정이다. 여기는 마피아, 강도, 전쟁, 사막, 온갖 독이 있는 벌레들이 62살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란 남자들은 한결같이 수염을 기르는지 물어봤다. 그는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여자들한테 없는 거니까요.”

-나도 항상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였구나. 남자들의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잘 정돈된 비탈 위에 햇포도가 있었다 이 나라에서 포도주 소비는 금지돼 있기 때문에 이 포도로는 건포도를 만들 것이다.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사람들이 얘기한 바로는, 경작한 포도 일부는 증류해서 싸구려 독주를 만든다. 사람들은 내게 그 독주를 여전히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맛보게 했다. 이슬람의 ‘정의’는 범죄행위로 간주되는 이러한 행위에 가차 없이 채찍형을 내린다. 하지만 또다른 사람이 비밀스럽게 들려준 얘기로는, 적당히 돈뭉치를 쥐어주면 알라도 훨씬 너그러워진다고 한다…

-작가가 여행할 당시 이란은 경직된 사회였다. 경찰의 감시가 삼엄하고 우체통 보다 큰 ‘고발함’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터키에서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접했던 작가는 이어서 간 이란의 이런 경계심에 숙소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란에도 이런 예외는 언제나 있었다.
지금의 이란은 뭘하고 있을까?

매연과 죽일 듯이 달려드는 트럭과 엄청난 굉음을 참으며 터널을 지나 주차장에 있는 식당에서 차를 마실 때 트럭운전자들이 “다른 터널이 있는데, 훨씬 길고 아주 위험해서 보행자의 출입이 금지됐다, 그 터널은 절대 가지 마시오, 죽을 지도 모르니까.’라고 했다. 다음 터널을 지나게 해줄 운전자와 트럭을 타고 터널을 통과했다. 겨우 5미터에서 6미터에 불과 했다. 테헤란까지 다른 터널은 없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한다는 터널이 바로 내가 혼자 걸어서 지나온 터널이었던 것이다.

-책에는 이렇게 무서운 터널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터키에서도 이란에서도 작가는 터널을 목숨을 걸고 지나야 했다고 한다. 가끔은 이런 터널이 너무 싫어서 높은 산을 걸어서 넘기도 했다.

이란에서 내가 보낸 편지는 항상 교묘한 검열을 받은 흔적을 간직한 채 파리에 도착했다.

-이란은 잘 알 수 없는 나라였다. 낯선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은 많았지만 경찰의 감시 때문에 삼엄하기도 했다. 남자도 여자도 살을 내놓는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테헤란의 여자들은 다른 나라의 카톨릭 수녀들이 수건을 쓰는 정도로 적은 수만 차도르를 하고 있었다. 술은 금지되어 있지만 마약의 불법 거래는 성행하고 있었다. 카바르라는 사막을 가진 이란.

밤은 아름다웠다. 나는 밖에서 자는 것이 좋아졌다. 담을 넘어온 커다란 개가 다정스럽게 잠자리를 나눠 쓰자 하는 바람에 개의 몸에 붙어 사는 벼룩 떼를 선물로 받기는 했지만.

-여행하기에 악조건인 이란에서 작가는 나름의 여행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침 여덟시경 잠시 앉아서 경치를 감상했다. 멋진 경관이었다. 내 시야는 이틀 전 떠나온 메셔드까지 닿았다. 뱅글뱅글 돌면서 펼쳐진 계곡이 보였고, 그 다음은 벌써부터 이글거리는 태양이 비치는 넓은 광야로 시선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디서 왔는지 염소 떼가 나타났다. 이렇게 조용한 짐승들이 서둘러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적어도 300마리는 될 듯한 무리의 앞으로 10여 마리가 달려갔다. 그 앞에는 모래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라곤 없어서 먹이가 될 만한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발굽을 동동거리고 있는 염소 떼를 내가 호위했다. 십오 분쯤 동행하던 염소 무리가 당나귀를 타고 온 목동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염소 떼가 가는 방향으로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지만 풀 한 포기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이란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책을 보고 이란이 이렇게나 넓은 나라였나하고 새삼 놀랬다.

한달 간 이란을 걸어서 통과한 작가는 구소련의 점령지인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섰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경찰은 부패하고,나라 전체가 아주 불결했다. 이란과 터키에서 보았던 비위생적인 모든 것은 비교도 안 되었다.
술이 허용되었다.
러시아가 한세기 동안 점령하고 70년간 공산주의체제가 유지되었다.
카라쿰 사막을 품고 있다.

내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두려움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위험을 계산하게 된다.

-아마도 작가가 아무도 가지 않은(아니지 마르코 폴로는 갔지) 실크로드의 길을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힘이었지 싶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는데, 관광객이 들끓는 곳이 많았다. 엉터리 러시아어 실력 때문에 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 것도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고 키우면 아이는 죽는다고 한다. 나는 고독이라는 이 이상한 병에 전염될까봐 두려웠다… 머리는 벌써 프랑스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이 지독하게 보고 싶었다.

-이렇게 작가는 두번째 도보여행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사마르칸트가 가까워올 수록 빨리 걷다 못해 뛰어갔다고 한다. 두번째 도보여행을 빨리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4달 동안 2,745킬로미터를 걸었다고.

내게 여행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믿기 힘든 존재를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시골 구석의 소박한 조화로움에 충격을 받거나,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을, 내 자신이 하거나 생각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그의 기나긴 두번째 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그는 중국으로의 세번째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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