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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걷는 산티아고 길은 매우 상쾌하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걷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하지만 어김없이 10킬로 정도 걸으면 발바닥에서 신호가 온다.
그 아픔을 말로 표현하자면 발이 세로로 두쪽이 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마치 '또각'하고 잘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프다.

해가 땅에서 어느 정도 떠오르면 또다시 더위가 시작된다.
그래서 많은 순례자들이 아침 잠도 포기하고, 아침에 씻고 화장실 가는 것도 포기하고, 아침밥 먹는 것도 포기하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좀더 선선한 봄이나 가을이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6월에서 8월에 걷는 사람은 꼭 기억해야하는 원칙이다.
뭐 꼭 사전 지식으로 꼭 알아야 할 건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모르고 와도 산티아고 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몸으로 터득하게 되는 원칙이다.
그리고 며칠을 지내보고 스스로 터득하게 되면 그것 또한 꽤 큰 즐거움을 준다.
원칙을 먼저 세우고 그것을 따라하면 수월한 점도 있지만, 스스로 원칙을 알아내서 그걸 따라하면 좀더 자유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며칠째 고원지대를 걷고 있으니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것이 있다.
첫번째 마을을 진입할 때 본 운하이다.
고원지대에서는 농사가 잘 된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농작물에 병충해가 적고, 큰 일교차로 작물의 당도가 높아져 맛이 좋아진다.

 


마을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운하가 유명하다는 상세한 표현이 담긴 안내문이다.

하지만 지대가 높으니 물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스페인은 이 고원지대를 거의 농사를 짓는데 활용하고 있는데, 그래서 물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다.
보통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수로를 땅 옆에 도랑을 파서 지나가게 한다.
그런데 이곳의 수로는 땅 위에 관을 띄워서 물이 위로 지나가게 만들어 놓았다.
땅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누수가 생기는 것도 막으려는 생각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수로 관리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게 특이하다.

지나가던 스페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이 운하에서 꼭 사진을 찍으라며 스페인말로 뭔가를 한참을 설명해주셨다.
이 할아버지에게는 이 운하가 큰 자부심이어서 우리에게 자랑을 하셨을 것이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을 모르는 우리에게는 그냥 작은 물길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어쨌든 할아버지가 계속 쳐다보고 계셔서 사진은 한장 찍었다.

 


운하.


사실 너무 지쳐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운하를 설명해 주신 할아버지가 우리가 이렇게 운하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까지 지켜보고 계서서... 그랬더니 얼굴 상태도 아주 메롱하게 나왔다.ㅜㅜ

산티아고에서는 걷다가 마을이 나오고 바가 나오면 뭐든 먹으며 쉬는 건 철칙이다.
그냥 지나쳤다가는 뙤악볕 아래서 두세 시간 걷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다리는 찢어지게 아프고, 배는 고프고, 가지고 있는 물은 미지근한 물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낭패가 된다.

 

조금 전에 들렸던 카페에서 아침을 거하게 먹었지만 또다시 카페에 앉아 오늘 우리는 조금 고민을 했다.
아마도 우리가 쫓아가려는 동지들은 이 마을에서 어제 저녁에 묵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걸어서 그들을 쫓아가는 것은 조금 무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마을은 조금 큰 마을이어서 카페 앞에 버스 정거장이 있었다.
버스가 자주 오는 것 같은 데도 몇몇 순례자들이 매번 버스가 올 때마다 그 버스를 타고 있었다.
브르고스 쯤에서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다리가 많이 아플 때라서 여기서 버스를 타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우리도 30분 이상은 쉬면서 고민을 한 것 같다.

고민 끝에 우리의 결론은 어떻게든지 걸어서 쫓아가 보자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약국에서 산 발에 바르는 크림이 있는데 그걸 바르면 발의 피로가 조금 빨리 풀린다.
그리고 걸을 때 그걸 바르면 좀더 늦게 다리가 아파온다.
그래 열심히 크림 바르며 따라가 보자가 결론이었다.

확실히 산티아고에서는 경비가 덜 드는지 우리가 시작한 마을에서 처음으로 현금을 인출하고 여기서 두번째로 현금을 찾았다.
그전에 유럽여행할 때는 같은 금액을 이삼일에 한번씩 찾았던 거 같은데, 정말 산티아고는 경비가 훨씬 덜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돈만 찾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길 여기 저기에 있는 순례자 조형물도 꽤 볼만하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어떤 젊은 예술가가 만들었을 수도 있고, 스페인 정부 차원에서 만들었을 수도 있는 이 조형물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산티아고 길에 모여든 세계각지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닮아 있는 듯하다.

 


사진 한장 찍겠다고 위험했나?

 


가슴에 산티아고를 새겨놓은 조형물.

 


화살표만 따라 걸으라고!!

 


순례자 흉내내기.

 


난, 이 희미한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 꿈 속을 걷는 것 같다.

 


이렇게 또 힘을 내 보겠다고 샌드위치에 탄산음료를 큰 페트병에 든 것으로 먹었다.

이후에 작고 소박한 시골 마을을 하나 지나갔다.

 

사진에 보이는 차는 일명 '빵차'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빵빵빵하고 경적을 울리면 할머니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와 바게트빵을 사서 저렇게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신다.

 

이 마을은 작아서 알베르게는 없고 이렇게 일종의 민박집이 있다.
현관 옆에 써 붙인 'casa rural'라는 게 '민박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우린 아무생각 없이 물병에 물을 반만 담아가기로 했다.
물병에 물을 한가득 담으면 그것도 짐의 무게를 늘리는 것이므로 조금이라도 짐의 무게를 줄이자는 얄팍한 생각에서...
이 작은 마을을 지나 어마어마하게 지루한 길을 걷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모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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