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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은 '고추장'이다.

시골에 살면서 배운 것 중에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그것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귀한 경험을 했는데, 그건 바로 고추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집이나 고추장맛과 된장맛이 같이 좋을 수는 없단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는 고추장을 더 맛있게 담으셨는데, 내가 점점 어른이 되면서 엄마의 된장 맛이 더 좋아졌다.
내 입맛이 바뀐 것인지 엄마의 솜씨가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맛 차이가 났다.

그래서 엄마의 고추장은 그닥 달갑지 않았고(우리 엄마가 들으면 화낼 말이다ㅜㅜ), 시골에서 동네 아주머니에게 진짜 맛있는 고추장 담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우리가 시골에 살때 젊은 사람이 시골에 내려와 정착해 산다고 귀하게 여겨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떡을 하거나,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거나, 김치를 담거나, 나물을 무쳤거나 하면 항상 내 몫을 덜어주셨다.

그중 내가 딱 마음에 드는 고추장을 담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뭐라고 할까 시중에 파는 고추장 같은 맛을 내지만 깊은 맛이 나는, 그냥 찍어 먹어도 맛있고, 맨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고, 조림을 해도 맛있는 그런 고추장이었다.
몇날 며칠을 쫓아다니며 가르쳐 달라고 했다.
뭐, 무림 고수에게 무술을 배우려는 사람처럼 매일 매일 졸랐다.
그 아주머니는 목소리도 크고, 욕도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배우면서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ㅋ

그때 취미로 내가 손뜨개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뜨개방에서 내가 뜨개를 잘한다고 다들 나를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며 뜨개를 내게 배우곤 했었다. 그 당시 학원 강사를 했으니 이래저래 적절한 호칭이기는 했었다.
그런데, 그 욕쟁이 아주머니는 항상 나를 "야, 선생!"이라고 불렀다.ㅋ

아무튼 내가 그 아주머니가 너무 뜨고 싶어하는 조끼를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고추장 담는 걸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때도 욕을 바가지로 하셨지만, 어쨌든 딜이 성사되어 고추장 담는 걸 가르쳐주시기로 했다.

우리집 고추장 담는 건 아무데서나 못 배우는 거야.
올해 내가 담는 거 옆에서 한번 보고, 선생 니가 담고 싶은 만큼 재료를 준비하면 내가 다시 알려줄께.

그래서 그 아주머니 집 고추장 담는 날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엿물 다리는 걸 배웠다.
그게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 고추장은 항아리에 담아 장독대에 두어도 여름에 끓어 넘치지 않는다. 이건 집에서 고추장을 담아본 고수들만 아는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 아주머니의 비법으로 고추장을 담으면 절대로 끓어 넘치지 않는다.

<욕쟁이 아주머니의 고추장 비법>

일. 준비물 : 고추가루(10근), 엿질금(350g 짜리 6봉지), 소금(천일염 2되), 찹쌀가루(보리쌀가루도 가능, 2되), 메주가루(2kg), 물엿(9kg)


필요한 각종 재료들.. 그림으로 표현 못하는 게 많네.ㅜㅜ

준비물부터 남다른 클라스를 자랑한다.
아주머니는 모든 재료는 점촌 중앙시장에 있는 '대우 기름집'에서 사야 한다고 하셨다. 시장 물건 중 원산지를 속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집 재료는 모두 믿을 만하다고..
그러고도 내가 잘못 사올까봐 직접 사오시고, 계산서를 주셨다.ㅋ


고추가루 10근을 준비하는데, 그해 우리 고추농사가 망해서(우린 왜 자꾸 농사를 망할까?ㅜㅜ) 청양고추밖에 수확을 못했다. 요즘 고추가루 많이 나오는 고추는 병충해에 취약하다. 우리는 고추에 농약을 전혀 치지 않아서 일반 고추는 모두 병이 들어 풋고추 몇개 따먹고 말았다. 그래도 청양고추는 매운 맛 때문에 병충해가 그닥 없는 편이다. 그래서 청양고추만 엄청나게 수확을 했다.


고추 말리는 데는 트럭 짐칸이 최고다.

그런 사연으로 10근을 모두 청양고추 가루로 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니들 고추장 먹다 죽는다."고 말려서 일반 고추가루를 2근 섞기로 했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일반고추가루 8근에 청양고추가루 2근을 한다는데, 우린 비율을 반대로 하게 되었다.

고추장을 담는 고추가루는 방앗간에서 빻을 때 특별히 "고추장 담을 거에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방앗간에서는 두어번 더 방아를 찧어주어 고추가루가 아주 곱게 된다.
우리 고추가루를 빻던 방앗간 할아버지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우리 고추가루를 빻아주셨다.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ㅋ


너무 매워 마스크까지 하셨지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방앗간 밖에서 줌으로 당겨 사진만 찍었다.ㅋ

엿질금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한 다음에 말린 것이다.

우리는 찹쌀가루로 하지 않고 보리가루로 했다. 그 아주머니 말씀이 그해는 보리가루가 더 상태가 좋다고 했다. 난 그것까지는 구분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하라는 대로 난 보리가루로 했다.

그리고 물엿은 시장에서 딱 9kg짜리를 판다. 아마도 고추장 담는 황금비율에 맞게 파는 것 같다.

고추장은 된장과 달리 삼일이면 담을 수 있다. 요즘처럼 패스트 푸드가 많은 시대에 삼일이면 긴 시간이지만, 그래도 삼일 고생하면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다.

이. 재료가 준비되면 먼저 엿질금을 큰 면주머니에 넣어 큰 다라에 물을 담고 넣어 놓는다. 물은 많이 잡지 않는다. 이걸 저녁에 담가 놓고 처리는 다음날 아침에 하는 것이다.
고추장을 담는 첫날은 엿질금만 물에 담아 놓으면 된다.


고추장 담기는 과정이 길어서 우선 고추장 담기 위해 해야 하는 준비까지만 정리하고 2부는 고추장 담는 과정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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