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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게.
만일 내가 감자라면
그렇게 꽉 움켜쥔 주먹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하진 않으리라
어린 바닷게에게.
만일 내가 바닷게라면
그렇게 매순간 삶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기 몸보다 더 큰 다리를 갖고 있진 않으리라
거미에게.
만일 내가 거미라면
그렇게 줄곧 허공에 매달려
초월을 꿈꾸진 않으리라
벌에게.
만일 내가 벌이라면
그렇게 참을성 없이 순간의 고통을 찌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진 않으리라
언덕에게.
만일 내가 저편 언덕이라면
그렇게 보잘 것 없는 희망으로
인간의 다리를 지치게 하진 않으리라
그리고 밤에게.
만일 내가 밤이라면
그렇게 서둘러 베개를 빼 인간들을
한낮의 외로움 속으로 데려가진 않으리라
난 이런 시를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류시화를 좋아하는 거 같다.
감자에게 꽉 움켜진 주먹이라고 하는데서 완전히 매료되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시에 대해서 배울 때 그렇게 배웠다.
세상에 매일 있는 것들을 또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으면 시를 쓸 수 있다고...
류시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시에 담았다.
그래서 시어가 어렵지도 않다.
말도 어렵지 않게 한다.
그러니 시가 쉽게 읽히고 쉽게 생각이 든다.
류시화의 시를 읽고 있으면 시에게로 한발짝씩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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