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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의 첫날을 잘 자고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위해 일찍 일어났다.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기로 했다.
이곳에서 조식으로 각종 해물을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다.
특이하지만 한국인의 아침밥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어제 자전거를 접어서 객실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고 주인아저씨가 신기해 하셨는데, 아침을 먹고 다시 자전거를 가지고 나와 가게 앞에서 착착 자전거를 펴니 주인아저씨, 지나가는 사람, 같이 이 숙소에 묵었던 외국인들까지 우리 자전거의 변신을 보고 너무 신기해했다.
외국인 아저씨는 자전거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며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우리 자전거는 10킬로가 조금 안된다.
장정 어른이 들면 가뿐하게 들 수 있는 무게라 외국인이 눈이 동그래지며 놀랜다.
괜히 우쭐 ㅋㅋ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목포시내로 들어왔다.
영산강 자전거길의 시작점인 영산강 하굿둑을 찾아가야 한다.
길에 이렇게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데가 자전거길이다.

 

말그대로 탄탄대로, 목포의 자전거길 너무 잘 되어 있다.
인도에 있는 자전거길도 장애물이 별로 없고, 턱이 진 곳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게 깎아놓았고, 길도 이렇게 널찍하다.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동안 이렇게 좋은 길은 한적한 해안도로가 아니면 본 적이 없다.
제주도 시내의 자전거길은 도저히 자전거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여긴 제대로 된 자전거길을 만들어놓았다.

 

영산강하굿둑으로 가려면 저 뒤에 보이는 육교를 건너가야 한다.
우리는 시작부터 자전거를 짊어지고 육교를 건널 생각에 앞이 깜깜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계단 옆으로 아주 낮은 경사로 자전거를 타고 육교를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육교를 건널 수 있게 해놓은 다리를 한국에서 처음 봤다.
완전 감동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끌바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육교를 건너 영산강 하굿둑에 도착했다.
이곳에 왔더니 이런 표지판이 있었다.
자전거 국토종주길에 드디어 드러서는 것이다.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이 표지판을 너무 건성건성 봤다.
시작이라고 되어 있으니 시작이겠지... 하고 믿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달려보기로 했다.

 

남편은 드디어 자전거 바지도 입었다.
나는 너무 달라붙는 거 같아서 그냥 자전거 속바지(흔히 자전거 빤스라고함.ㅋ)만 입었더니 겉으로는 표시가 전혀 안 난다.
분명 남편이 이렇게 서서 핸드폰에서 지도도 확인하고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영산강을 옆에 끼고 넓고 평탄한 자전거길이 쭉쭉 뻗어 있어서 너무 좋아 아무 생각없이 계속 달렸다.
그런데 7킬로를 달렸는데도 '영산강 하굿둑 인증센터'가 나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기점 0.1km'라고 써 있는 것을 우리가 놓친 것이다.
바로 백미터 앞에서 왼쪽 옆으로 들어가면 인증센터도 있고, 출발하기 전에 물이나 간식도 사갈 수 있는 매점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마냥 자전거길이 좋다며, 육지라 뭔가 좀 다르다며, 신나게 내달린 것이다.
육지 첫 도장을 못 찍고 가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겠어.

유턴하자.ㅜㅜ

7킬로를 돌아와 첫 인증 도장을 찍고 좋다고 찍은 사진이다.
사진 뒤에 인증센터 부스와 간판 사이로 보이는 계단 위로 난 길로 우린 아무것도 못보고 스윽 지나갔던 것이다.
잘 보이라고 이렇게 빨갛게 부스를 만들어 놔도 육지 자전거 여행의 첫날인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어리바리했던 것이다.

 

아무튼 다시 시작.ㅋ
매점에서 물과 간식을 조금 사가지고 출발하기로.

우와~ 근데 정말로 자전거길 잘 만들어놓았다.
제주도는 길에 돌도 많고, 턱도 많고, 주차된 차도 많아 안 좋은 자전거길에 속한다더니 정말이다.
여긴 약간 졸릴 정도로 평탄한 길 뿐이다.

 

두번째는 느러지관람전망대 인증센터이다.
말 그대로 전망대라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여긴 올라가기가 좀 힘이 들었다.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조금 더 고개를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는데, 그런데는 안 올라가는 걸로.
지금까지도 오르막이 조금 심했는데, 전망대까지는 좀더 경사가 심하고 길도 안 좋아 분명 자전거를 끌고 들고 가야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관광에 초점을 맞춰 자전거길을 벗어나 다 보고 가다보면 추석 전에 경기도까지 못갈 수도 있으니, 이번 여행은 자전거 여행에 충실하기로 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라, 자전거길을 달리는 내내 보이는 약간 노랗게 익은 벼들이다.
이런 논길을 보니 전에 살았던 상주가 많이 생각났다.
산티아고에서 봤던 지평선만 보이는 밀밭과 달리 우리 논들은 산들이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교행이 가능한 넓은 자전거길은 언제봐도 놀라웠다.

 

다음은 죽산보 인증센터이다.

 

죽산보 인증센터 부스 앞에 이런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우린 또 이 안내문을 흘려본게다.ㅜㅜ
자전거길을 완주한 후에 유인 인증센터에서 받은 번쩍번쩍하던 인증 스티커를 여기서 준다고 적혀 있는 것이다.
우린 당연히 여기서'도' 준다고 이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서'만' 준다는 것이었다.ㅜㅜ

그리고 아래 주절주절 적혀 있는 것이 그냥 추어탕집에서 광고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우리는 영산강하굿둑에서 담양댐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담양댐에서 영산강하굿둑으로 내려오는 사람도 아까 우리가 되돌아갔던 그 인증센터에는 유인 인증센터가 없으니 여기서 꼭 스티커를 받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여기저기 붙어 있는 안내문을 잘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 고생하는 일이 생길테니...ㅜ

 

전라도에 와서 꼭 만나보고 가야 할 사람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같이 걸은 한국인 동지들이 전라도 광주에 산다.
그때의 인연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들리겠다고 연락을 해두었었다.

그래서 여기쯤 와서 카페를 하고 있는 비오아저씨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비오 아저씨는 지금 죽산보면 열심히 달려서 광주까지 오란다. 저녁 같이 먹자고.
참고로 이 아저씨는 자전거 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거기다 우리는 여기서 광주 시내가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를 잘 몰랐다.

그래! 길도 평탄하고 좋으니 열심히 가면 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더 달렸다.

 

다음은 승촌보 인증센터이다.
여기 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우리 자전거에는 앞이랑 뒤에 있어야 하는 라이트가 없다.
여행 전에 자전거에 장착하려고 했는데, 제주에는 브롬톤 부품 파는 곳이 없어 장착을 못했다.
그러니 제주도도 아니고 낯선 전라도에서 라이트 없이 자전거를 타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아저씨한테 전화했더니, 딱 기다리란다. 곧 데리러 오겠다고.
아저씨네 카페는 주인같은 손님이 많이 오는 곳이라, 손님한테 카페를 맡기고 잠깐 오시겠단다.ㅋ

 

금방 오겠다는 아저씨는 한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하셨다.
승촌보를 옆으로 놓고 지나는 가 봤지만 여기 보까지는 와보지 않아서 근처에서 길을 잃으셨단다.ㅋ
언제나 어리버리한 아저씨이다.
이 아저씨는 매우 똑똑하지만 생활면에서는 매우 어리버리하다.

반가운 사람 얼굴 보겠다고 열심히 오다보니 우리도 난생 처음 엄청난 거리를 달렸다.

 

아저씨네 카페 이름은 '갈매나무'이다.
우리가 도착해 보니 주인같은 손님들은 아저씨가 길을 헤매느라 늦게 오시는 바람에 카페문을 잠그고 귀가했다.
손님이 문을 닫고 가다니, 정말 주인같은 손님들이다.

카페 분위기는 딱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비오아저씨의 스타일은 술 좋아하고, 커피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고, 수다도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스페인 커피는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다고 투덜거리며 산티아고를 걷던 아저씨가 또 자신의 커피 내리는 실력을 자랑하며 정성을 들여 커피를 내려주셨다.

 

뭐라뭐라 한참을 설명해주며 내려준 이 커피..
하지만 우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서 피곤한 상태에 배도 고파서 제대로 커피맛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죄송^^

 

광주 멤버 중 한명인 문태형씨도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카페로 왔다.
이것저것 안하는 것 없이 다 유통하는 유통업을 한다는 태형씨는 언제나 재미있는 사람이다.
요리 실력도 좋고, 미식가이기까지 한 사람이다.
태형씨가 착착 접힌 우리 자전거를 비오아저씨 차 트렁크에서 내리는 걸 보고

이 사람들이 외발 자전거를 타고 국토 종주를 하네?

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ㅋ
게다가 태형씨도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인데, 우리 자전거처럼 작은 자전거로 하루만에 여기까지 왔다고 많이 놀랬다.
어리버리 비오 아저씨는 '그런거야?'하고 옆에서 이해 안된다는 리엑션을 하시고...

 

미식가인 태형씨가 광주에서 이 시간에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기집이라며 우리를 데려간 곳은 '꽃담'이라는 집이다.
정말로 맛있는 소고기와 쏘맥을 먹고, 다시 비오 아저씨의 카페로 왔다.

 

오래된 풍금 뒤에 있는 술 냉장고.
아저씨가 우리한테 저 술을 맘껏 마시라고 했는데, 이날 100킬로를 달렸고, 내일도 계속 달려야 하는 우리는 간단히(?) 밤 2시까지만 마시고 헤어졌다.

이분들 때문에 전라도 광주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도시가 되었다.

 

무리했네.ㅜㅜ
이동거리가 98킬로지만, 우린 처음에 7킬로를 유턴해 갔다왔기 때문에 실제 달린 거리는 거기에 14킬로를 더해야 맞는 거지??
그래도 제주도에서는 평균속도가 10킬로가 안 나왔었는데, 육지오니 길이 좋아서 평속이 11킬로가 넘었다.
이날은 너무 무리를 해서 광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호텔에서 묵었다.

이 글은 2017년 브롬톤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던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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