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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30킬로를 걸어야 나타나는 logros(로그로스)이다.
이 도시는 꽤 큰 도시이다.
그곳까지 가려면 점심을 먹은 마을에서 서너 시간은 더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우린 점심을 아주 든든히, 절대 지치지 말고 끝까지 갈려고 아주 든든히 먹어 두었다.


불필요한 짐을 버려 약간은 가벼워진 가방이니 걷는 게 좀더 수월하리라 믿어본다, 믿어본다, 믿어본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나타나는 마을에 따라 순례자가 마을을 맞이하는 느낌은 매우 다양하다.
작은 마을인 경우는 그냥 몇 걸음 걷고, 몇 집 지나면 마을의 시작에서 마을의 끝을 통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큰 도시를 지나가는 경우는 느낌이 다르다.
허허벌판을 걷다가 지평선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해서 몇시간을 그 마을을 앞에 보며 걷게 된다.
아마도 산같은 것으로 막혀있지 않는 대평원이 갖는 특징일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가 우리가 가려는 도시라는 걸 알고 걸으면 목적지가 눈에 보여서인지 힘은 좀 나긴 하지만 곧 닿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걸어서 쉽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도착할 듯 말 듯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길가에 있는 이정표만이 우리가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큰 도시는 그냥 지나쳐 갈 때도, 그 도시를 진입해서 도시를 벗어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작은 마을을 지나갈 때는 마치 순례길 가에 장식처럼 몇몇 집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큰 도시가 다가와 가면 길보다 건물과 사람, 자동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큰 도시가 나타나려고 하면 길부터 달라진다. 넓고 곧은 아스팔트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순례자들은 큰 차도 옆을 걸어가게 된다.

차들이 옆에서 쌩쌩 달리는데, 큰 배낭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보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빠름과 느림의 공존은 마치 현재과 과거가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동차라는 문명을 모르지 않는 나는 이미 20킬로 이상 걸은 그때 쯤 내가 이짓을 왜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렇게 차를 타고 가면 벌써 도착했을 저 도시를 우리는 지금 몇시간째 단지 그곳으로 향하고만 있는 듯하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니들이 고생이 많다~~

겠지....


작은 마을이나 허허벌판에서는 가끔 하나씩 있는 이정표도 눈에 잘 띈다. 자연 속에 서 있는 입간판 같은 이정표는 어디에서든지 눈에 확 들어온다.

하지만 큰 도시에는 순례자를 위한 이정표가 잘 안 보인다. 복잡한 도시에 들어서면 아무리 자주 여러 곳에 표시를 해 놓아도 워낙 도시가 복잡해서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특히 오늘 로그로스로 가는 길은 이런 큰 도시가 갖는 특징이 더 두드러졌다.

오늘 30킬로 코스 내내 길의 삼분의 일이 아스팔트길이어서 순례길답지가 않았다.
원래 오늘 분량이 장거리이기도 했지만 중간 마을에서 오늘의 걸음을 멈추려다가 더 걸은 것이어서 많이 지치기도 했고, 길까지 아스팔트 길이 많아 5시까지 걸은 우리에게는 매우 지쳐 있었다.
게다가 아스팔트 옆을 걷는 것은 소음과 먼지도 견디며 걸어야 해서 더 힘든 하루였다.


도시가 크니까 도착해서 숙소를 찾는 것도 막막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 아니면 산티아고 길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에는 인포메이션이 있다.
거기 가면 씨티맵도 구할 수 있고,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너무 오래 걸어 지치기도 했지만 큰 도시 때문에 막막했던 우리도 인포메이션부터 찾았다.

그런데!!! 우린 오늘 또 새로운 것을 알았다.

인포메이션은 평일엔 보통 2시면 문을 닫고 주말엔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늦게까지 걷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2시만 지나면 그닥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처럼 잘 못 걸어 5시까지 더 힘들게 걷고 더 지친 순례자들이 있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에 울컥했다.ㅜㅜ

어쩌겠는가 돌아다니며 알베르게를 찾는 수밖에...
이럴 때 무조건 마을 중앙까지 가야한다. 그래야 숙소도 있고 식당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 입구쯤에서 바에 앉아 정보를 수집해 본다. 와이파이가 되는 바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도에 나온 것을 위주로 찾아봐야 한다.


멋진 성당이 보이는 곳에서 정보 수집 중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 찾아간 알베르게는 도시 중간쯤 위치한 곳으로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다.
평점은 이 도시 숙소 중 가장 높았는데, 분위기가 좀 엄격한 느낌이었다.
외출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 놀라웠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가서 직원에게 설명을 듣기로는 저녁도 8시 15분에 모두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한다. 개인 행동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분위기가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이 많다는 것을 우린 그때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평점이 좋은 이유는 있다.
바로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어느 마을이든지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의 가격이 가장 싸다.
하지만 이런 알베르게에는 무시무시한 베드버그가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때는 몰랐다.
그냥 우리는 뭔가 좀 까다롭다는 생각에 여기서 묵지 않기로 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도시 초입으로 걸어나와 두번째로 평점이 좋은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어쩌면 베드버그와의 만남이 조금은 지연된 셈이었는데,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ㅋ


짐을 풀고 씻는데 사람들은 벌써 다 씻고 짐 정리까지 하고 쉬고 있어서 오히려 샤워장이 한가하고 좋았다.
지친 몸에 힘을 주려면 먹어야 한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이런! 대부분의 가게가 씨에스터로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몇몇 문을 연 식당도 음료나 맥주만 판매하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어야 밥을 판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8시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뭐가 맨날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지...ㅜㅜ

만약에 우리가 남들처럼 12시나 늦어도 2시쯤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아마도 씻고 숙소에서 한숨 자고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원기를 회복한 몸으로 이런 큰 도시에서 구경 거리도 많으니 도시 구경을 하며 돌아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으므로 더 걸을 힘은 한개도 없었다.

그래도 저녁이 되어가니 점점 문을 여는 가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페인에 왔으니 빠에야를 한번 제대로 먹어줘야지 한다는 생각에 저녁은 빠에야집으로 갔다.
이 집은 광장에서 빠에야로 유명한 집인지 한국 사람들도 저녁을 먹으러 이곳으로 왔다.


이 가게의 여 종업원은 머리를 삼분의 이 이상 삭발을 한 쎈언니였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슬쩍 사진도 찍어 보았다.
그래도 인상과는 달리 매우 친절한 종업원이었다.
우리가 스페인 말을 잘 못알아 들으니까 알아들을 때까지 영어로 했다가 바디랭귀지로 했다가 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 주었다.
순례자를 대상으로 파는 빠에야는 크게 맛 차이는 안 나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상대해 주면 기분좋게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우리가 스페인의 태양을 좀 만만히 본 경향이 있다.
남들은 더워서 새벽에 출발해 가능하면 12시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더위를 덜 탄다며 한낮 태양 아래서 며칠을 걸었더니 남편 얼굴이 너무 많이 타서 꼭 히말라야라도 등반한 사람같이 되었다.


오늘은 남편도 많이 지친 것 같다.
계속 목이 타는지 맥주도 많이 마시고, 물도 엄청 마신다.
어제부터 알베르게가 너무 더워 땀을 많이 흘리고 잤는지 나는 땀띠도 나려고 한다.

도시가 크니까 마트도 큰 게 있고, 이런 저런 가게도 많이 있어 볼거리도 많지만, 우린 너무 지쳐있었다.
지친 우리는 마을 구경은 고사하고 겨우 생필품 가게를 찾아서 물병만 두개 샀다.


그 동안은 물을 페트병에 든 것으로 사먹었다. 걸으면서 산 물을 다 먹었는데도 가게가 안 나오면 마을 식수대에서 그 페트병에 물을 보충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마셨다.
그런데 날이 더우니까 페트병에 든 물은 금새 미지근한 물이 된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 도시 주변을 걸으니까 물이 미지근한 정도를 넘어 약간 뜨뜻해졌다.
이런 물병이면 물의 냉기를 좀더 유지해 주겠지 하고 기대하면서 두개 구매했다.
결론은 좀더 낫긴 했지만 오후의 땡볕에 미지근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ㅜㅜ
오히려 페트병보다 무거운 것이 어째 잘못 선택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좀 느리게 미지근해지는 것에 위안을 하며 한동안 이 물병을 가지고 다녔다.

물을 가능하면 덜 무겁고 더 시원하게 가지고 다니는 요령은 식수대가 나타날 때마다 가지고 있는 물을 모두 버리고 새물을 보충하는 것이다.
마을이 얼마만에 나오는지를 체크해 곧 마을이 나오면 반 정도만 담아가는 것도 요령이다.

물을 너무 많이 담아가면 그것도 짐이다.

오늘은 미국 유타주에서 온 에릭과 폴라 커플을 알게 되었다.
신혼부부인지 핑크색 남방을 커플로 입었고, 숫기는 없지만 잘생기고 예쁜 남녀다.
다른 사람들이랑 말을 잘 안하던데, 내가 말을 걸었더니 반가웠는지, 나중에 만나서도 우리 이름을 부르며 매우 반가워했다.
아마 본인들도 친구를 사귀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이름을 잘 외우고 있었다.
어제부터인가 후발그룹에 속해 같이 걷는 친구들이다.
사실 그들은 영어를 너무 굴려서 발음하고 요즘 젊은 미국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쓰는지 우리가 금방금방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우리와 통성명을 한 후에는 우리를 만나면 솰라솰라솰라 엄청 말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점점 매일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는 것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편은 성씨로 자기를 소개해 ‘Moon’이라고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늘에 떠있는 달이랑 같냐고 묻고는 쉽게 남편의 이름을 기억해준다.

내 이름은 쉬운 이름인데 외국인들이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몇년 전 영국에서 병원을 가야할 일이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네 이름을 우리는 메이라고 읽어.”라고 말해주었다.
‘MI AE’라고 써 있는데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읽는단다.
그래서 쉽게 나를 May라고 소개한다.
대부분 잘 발음하고 쉽게 기억해 부르는데, 가끔 ‘마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어 웃으며 고쳐주기도 하곤 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남이 나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를 사귈 때 서로 이름을 쉽게 불러야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특히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호칭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다.
그래서 서로를 알고 친해지는데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인들은 서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이름을 부르며 상대와 대화를 한다.
처음엔 나도 좀 어색했는데, 여정 중간 쯤부터는 60이 훨씬 넘은 사람에게도 쉽게 이름부터 부르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하니까 저절로 평등의식도 생기는 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둘은 산티아고에서 Moon과 May로 활동했다.ㅋ

30킬로라는 먼 길을 걸어와서 밤에 곯아떨어져 자야했지만, 우리가 묵은 숙소는 한방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자고 있어서 서로의 체온에 밤새 숙소가 후끈후끈했다.
다리는 너무 아프지만 더위 때문에 거의 한잠도 자지 못하는 산티아고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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