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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13(46,903걸음)


어제 우리가 잔 알베르게의 방은 사람이 적은 방이었지만 날이 더워 그런지 매우 더운 밤을 보냈다.
너무 더워 잠도 깊이 못자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날과 달리 일찍 길을 나서느라 5시도 안된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가 30킬로로 멀기 때문에 일찍들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덩달아 일찍 길을 나서기로 했다.

아침마다 짐을 싸면서 살피는 것은 우리 짐에서 필요없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짐을 싸면서 여분의 양말과 여분의 손수건을 버렸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여분의 물건이란 사치다.

우리 걸음이 너무 느려 매일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니 오늘은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하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아침도 안 먹고 숙소를 나서니 해가 뜨지 않아 사방이 어스름하다.
그 바람에 숙소 앞에서 찍은 사진도 마을 중앙에 있는 성당 사진도 완전 운치있게 나왔다.



이렇게 일찍 나서는데도 우리가 선두 그룹은 아니다.
그간 사람들이 일찍 출발한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해도 안 뜬 이 시간에도 벌써 반 이상의 사람들이 출발한 걸 보고 깜짝 놀랬다.

어쩜 우리가 걸음이 느린 게 아니라 출발이 늦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를 나서 한시간 이상 걸었는데도 아직 주위에 새벽 어스름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새벽에는 걷기가 아주 수월하다.
며칠 동안 우리가 걸은 킬로수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우리는 평균 한시간에 3킬로 정도를 걸었다.
그런데 새벽에는 한시간에 4킬로를 걷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벽에 나섰다는 것도 이렇게 새벽에 나서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매일매일 잘 걷는 요령을 배우고 있다.

오늘 아침엔 순례길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어디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 고양이도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다.
순례묘라고 해야 하나?
한참을 우리를 따라 걸은 고양이였다.


나를 이끌 듯 나보다 앞장서 걷기도 하고.


애교를 부리는지 벌렁 드러눕기도 하고.

해 뜨기 전 어둠의 시간과 해가 눈 부시게 비치는 낮시간 사이의 시간은 모든 사물이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색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하늘의 색도 더 푸르고 구름의 색도 더 하얗고 밀밭은 더 깊은 노란색을 드러내고 작은 풀도 큰 나무도 아주 인상적인 색을 보인다.
이 때는 사람도 그림자도 길도 마을도 모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이 아주 멋지게 찍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공기 또한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쾌한 시간이다.
그래서 컨디션도 최고조인 시간이다.

이렇게 새벽에 길을 나서고부터 아침마다 남편에게 했던 말이 있다.

“이런 컨디션이면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을 거 같어.”

그러나 이런 컨디션이 유지되는 시간은 오전 9시 전까지만이다.ㅜㅜ
그래서 이때 10킬로에서 13킬로 정도만 걸어내면 그날의 순례길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내 발은 어김없이 10킬로가 넘으면 발바닥이 찢어지게 아팠다. 발바닥이 세로로 딱 두쪽이 나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하면 걷는 속도는 현저히 줄게 된다.

오늘 아침은 우리도 남들처럼 첫 마을에서 해결했다.
오늘에야 안 것이다. 사람들이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안 먹고 나가는 이유를...
이렇게 첫 카페가 그날의 아침을 해결하는 곳이었다.ㅋ


아침을 먹고 걷다보니 포도밭에 약을 치고 있었다.
땅이 경사 없이 평평하면 밀이나 보리를 심고, 조금 경사가 있는 곳에는 이렇게 포도를 심어 놓은 것 같다.
우리가 본 대부분의 포도밭은 이렇게 모든 일을 기계로 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었다.


밭에 저렇게 큰 기계가 들어가다니..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포도밭이 넓다.

우리나라 시골 과수원은 기계로 일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거의 사람 손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시골에는 일손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농촌에는 젊은 사람도 별로 없어서 농부의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저 넓은 포도밭에서 젊은 농부가 기계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땡볕에서 일일이 손으로 농사짓는 모습이 생각나서, 또 마음이 짠해진다.

포도밭을 지나 오르막을 한참 오르다 보니 정상에 푸드트럭이 있었다.
전 마을에서 아침도 먹었고, 아직 오전이라 맥주를 마시긴 그렇고 해서 탄산 음료를 마셨다.
한국에서는 남편도 나도 탄산 음료는 입에도 안 대는데 여기서는 탄산 음료가 짱이다.ㅋ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허정임씨가 늦게 도착을 했다.
우리보다 한시간은 늦게 출발했다는데도 벌써 우리를 따라잡은 것이다.
발에 물집이 너무 심하게 잡혀서 정말로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었는데도 꽤 잘 따라온 것이다.
물집이 발가락뿐만 아니라 발바닥에까지 잡혀서 도저히 계속 걸을 수가 없다며, 오늘은 중간 마을에서 쉴 생각이란다.
그리고 내일은 버스를 타고 레온까지 점핑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도 물집 때문에 발이 아파 중간 마을에서 쉴 생각도 있어서 중간 마을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푸드트럭 옆에는 조셉이란 사람이 목걸이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우리가 거기 앉아서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으니 조셉이 옆에 와서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강남스타일.’ 등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어를 한껏 뽐내면서.ㅋ

조셉이 하는 말이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유행이 있단다.
6년 전에는 스페인 사람이 많이 걸었는데, 그 다음은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 이태리 사람 그러더니 요즘은 한국사람이 제일 많이 온단다.
그래서 자기도 여기서 장사하면서 한국말을 많이 배우고 있단다.

허정임씨는 미국에서 5년 살았던 경험 때문에 영어를 엄청 잘한다.
조셉과 영어로 한참을 대화하더니 공짜로 목걸이를 얻었다.
영어를 잘하니 이런 것도 선물받고 좋겠다하며 엄청 부러워했다.
나는 사실 허정임씨가 선물을 받은 것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이 더 부러웠다.


남편이 뒤로 우리에게 길에서 체리도 따주셨던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가 엄청나게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계셔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 분들은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시고 프랑스말만 할 줄 아시기 때문에 우리와 의사소통은 전혀 안 되지만 그래도 볼때마다 너무너무 반가워하신다.

"너희는(바디랭귀지) 부두부두, 우리는(바디랭귀지) 두두두두”

라고 하시는데, 아마도 너희는 천천히 걷고 우리는 빨리 걷는다는 얘기 같다.
이런 걸 보면 언어가 의사소통의 다는 아닌 거 같다.
영어 잘하는 허정임씨보다 우리가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 단체와 더 자주 말하고 더 자주 웃고 더 친했다.

허정임씨는 진짜로 중간 마을에서 머물렀고, 우린 아침에 일찍 나온 터라 중간 마을에 왔을 때 12시도 안된 관계로 그냥 더 걷기로 했다.
이 마을을 지나치면 오늘의 거리인 30킬로를 모두 걸어야 해서 우린 짐을 더 줄였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하루종일 걸어야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우비를 사서 가지고 왔었는데, 날씨 어플을 보니 계속 비 예보가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무릎과 허리가 아플 거 같아 보호대를 가지고 왔었는데, 발에 잡힌 물집이 더 아파서인지 무릎이며 허리가 아픈지를 모르겠단다.
그래서 우린 허정임씨와 헤어진 비에나라는 마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우비와 보호대를 과감히 버렸다.

발이 아플수록 가방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버리는 것'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었다.

짐을 좀더 줄이고 목적지까지의 나머지 길을 걸었다.
30킬로를 넘게 걸은 게 처음이어서였을까?
이날 나머지 여정은 매우 힘이 들었다.
거의 막판에는 500미터에 한번씩 땅바닥에 주져앉아 쉬었던 것 같다.
미국 샌프란치스코에서 온 쌍둥이 형제가 4시 넘어 우리를 추월했을 때, 몇몇 사람들이 중간에 택시를 불러타고 목적지로 가는 것을 보았을 때, 5시가 다 되어 브라질 어른들이 우리를 추월해 갈때,

그 때마다 우리는 주문처럼 ‘내일은 버스를 타자.’라고 말했다. ㅜㅜ


어떻게든 오늘 30킬로를 걸어내겠다는 우리를 이끄는 건 노란 화살표뿐이다.
더 가보자구!!!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 길위의 것들을 모두 눈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랬다.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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