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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이주해 와서 나는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귤밭에서 귤을 따는 '귤알바'이다.

제주도의 귤은 제주시부터 심기 시작해 지금은 서귀포의 귤이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제주시에도 여기저기 귤밭이 많이 남아있다.

제빵학원을 같이 다녔던 언니 중에 제주시에서 도자기 공방을 하면서 공방 옆에 딸린 귤밭을 가꾸는 언니가 있다.
제주도에는 워낙 귤밭이 많아서 겨울에 들어서면 귤 따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력이 모자라다고 한다.
언니네 귤밭은 600평으로 크지 않고, 농사 경험이 짧은 언니네가 직접 가꾸는 밭이라서 농약도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귤이 상처도 많이 나고 크기도 작고 나무도 작업하기 좋게 가꾸지 않았다.
이런 밭에는 겨울이 되면 전문적으로 귤따기 일을 하는 일꾼들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일하기도 불편하고 일해도 티가 안난다는 이유이다.

그래서 언니가 지인들에게 귤따기 알바를 할 사람 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지난 달까지 바빴던 나는 이번 달부터 한가해져서 '어디 귤알바 없나?' 하던 차라 냅따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다른 귤알바와 달리 언니는 그날 보낼 택배만 따면 되기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만 일한다고 한다.
그것도 10시에 갔더니 그때부터 핸드드립 커피도 내려주고, 옷도 챙기고, 설렁설렁 시작해서 11시가 넘어서 귤밭에 들어갔다.


언니가 직접 볶았다는 커피빈으로 그 자리에서 갈아서 내려준 커피는 아주 고소하고 향긋했다.

정말로 귤밭은 인위적으로 가꾼 흔적이 거의 없다.
나무 사이에 길도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한참 귤을 따다 보면 내가 밭 어디쯤 있는지 헷갈리기 일쑤이다.
귤은 너무 작고, 새가 엄청 쪼아먹었지만, 농약맛도 안나고 너무 맛있는 귤이었다.


귤나무가 복잡하게 자라고 있어서 귤밭의 길을 찾기가 어렵다. 언니가 그래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앞에 산이 있어서 그늘이 지는 곳에는 너무 습해서 대형 선풍기를 놓아두었다. 제주도는 의외로 습한 지역이 참 많다.



귤이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 하는데, 이런 귤은 많지 않다. 언니네 귤은 거의 왕밤 정도의 크기이다.ㅋ

귤따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무가 크지 않으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필요도 없고 그 자리에 서서 가위로 꼭지만 잘 따서 바구니에 담으면 된다.


길이 좁은 귤밭에 최적화된 리어커다. 아주 날씬하다.


이렇게 바구니에 따 놓으면 리어커 담당하는 사람이 컨테이너 상자에 담아서 옮긴다.

점심에는 언니가 아저씨랑 비양도에서 낚시로 잡았다는 대왕오징어를 삶아주셨고, 통통한 갈치도 구워주시고,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도 해 주셨다.
겨우 한시간 일하고 먹는 점심이라 미안하기는 했지만, 귀한 음식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갈치구이와 대왕오징어 데친 것.


김치찌개와 뜨끈한 밥

오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귤을 따고 4시에 파했다.

나는 알바비는 안 받고 귤을 육지로 두 상자 택배를 보내 달라고 했다.
제주도에 살아도 쉽게 맛있는 귤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렇게 맛있는 귤을 보면 무조건 육지 식구들에게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꼬다마'라고 너무 작아서 팔 수 없는 것을 한봉지 얻어왔다.


작은 귤을 비닐 봉지에 담아서


상자에 담아


며칠 전, 막 쓰겠다고 중고로 구입한 자전거에 싣고 왔다.ㅋ


이게 작아도 얼마나 맛있는지, 며칠 내에 다 먹고 다시 가서 귤을 더 사먹으려고 갔었다.

언니가 알바한 날 내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많이 못 주었다며 콘테이너 상자를 가지고 오면 거기에 듬뿍 담아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가서 귤을 따고 한상자 값을 치르려고 했는데, 그동안 따 놓은 것이 있다고 그냥 한상자를 주셨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귤을 한상자 얻었다.

이번 겨울 나는 귤부자로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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