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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12.(34,433걸음)

오늘도 아침에 출발 전 짐을 챙길 때 우리는 버릴 것을 찾았다. 오늘은 빨래할 때 쓰려고 가지고 온 비누를 버렸다.
대부분의 숙소에 비누가 없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땀에 젖은 옷을 물빨래만 하고 땡볕에서 삶듯이 말리기로 했다. 스페인의 해는 너무 강렬해서 빨래는 정말 바삭하게 잘 마른다. 언제나 뽀송뽀송하다. 그러니 비누 빨래는 숙소에 비누가 있는 날만 하기로...ㅋ


알베르게에 딸린 레스토랑은 너무 비싸서 어제 저녁 먹은 걸로 만족하고, 아침은 걷다가 먹기로 하고 출발했다.
자자, 오늘은 21킬로를 걸어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로 가 보자.
어제부터 슬슬 산티아고의 재미를 알게 된 우리는 오늘은 어디서 뭘 먹고, 뭘 구경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약간 들뜨기까지 했다.

스페인의 여름 날씨 아니 스페인의 6월 날씨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비가 거의 안 온다.
온도는 매우 높고 습도는 매우 낮다.
그래서 언제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고, 구름이라도 있는 날이면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을 볼 수 있다.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아주 시원하다.
아침 6시 전후로 해가 떠서 저녁 10시 전후로 해가 진다.
8시 정도부터 해가 기울면서 아주 시원하고 맑은 날씨로 변한다.
이런 날씨를 갖고 있다면 씨에스터는 아주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씨에스터는 오후 2시부터 4, 5시까지의 낮 휴식 시간이다.
이 시간을 보통사람들은 낮잠 시간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잠을 자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가게문까지 모두 닫고 거리에는 거의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휴식을 취한 후 반나절이나 환한 상태로 남아있는 그들의 오후는 활기차서 시끄럽기까지 하다.

해가 있을 때는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람에게는 스페인 날씨는 죽음이라고 말하던 길에서 만난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우리나라라도 이렇게 해가 오래 떠 있다면 뭔가 조치를 취했겠지 하고 난 생각했다.


오늘은 이렇게 하늘에 구름이 많아 어제보다 훨씬 덜 덥다.

출발한지 30십분 안되어 우리는 엄청난 곳을 만났다.
우린 여기를 '우리의 성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콸콸콸 나오는 포도주라니~~

너무 신났다.
산티아고 길에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와이너리인데,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벽면에는 멋진 문양과 함께 수도꼭지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다른 하나는 언제나 와인이 콸콸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이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란다.



사진처럼 대문 안쪽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구조여서, 우리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것을 발견한 것이 너무 기뻤다. 사진에서 보면 저렇게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한적한 길이었고, 우린 좀 늦게 천천히 가는 편이라 길에 순례자들이 거의 없었다.
앞서 가던 아가씨가 거길 들어가 와인을 따르는 걸 남편이 우연히 보는 바람에 우리도 이 은혜로운 와인 수도꼭지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나서 와인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마지막으로 물병 하나에 포도주를 가득 담았다.
우리가 거기서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자전거 부대 아저씨들도 들어와 “비노, 비노!”하며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우린 또 그 자전거 부대 아저씨와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난 ‘비노’가 와인이란 뜻임을 비노가 콸콸콸 나오는 수도꼭지에 흥분한 아저씨들에게 들어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두개의 물병 중 하나를 포도주로 채워 걷다가 중간에 물이 모자라 고생은 했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걷는 내내 너무 더워서 와인은 마시지도 못했다.
좀더 걷은 게 익숙해진 후 우리가 이 수도꼭지를 만났다면, 아마도 우린 그 근처 마을에 머물며 원없이 와인을 마셨을 지도 모르겠다.
이 날은 걸은 지 겨우 삼일째 되는 날이었으므로, 마음에 여유가 좀 없어서 그저 계속 걷는데 마음이 급했던 것이 아직도 후회가 된다.ㅋ


한참을 걷다보니 악세사리를 파는 좌판이 골목에 뜬금없이 펼쳐져 있었다.
좌판을 지키는 사람도 없어 뻘쭘하게 구경을 했다. 그 좌판이 있는 안쪽으로 있는 집이 아마도 대장간인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불에 쇠를 녹여 이런 악세사리를 만들고, 그 중 몇개를 지나가는 순례객들에게 팔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그 중 하나를 사려고 하면 대장간 안에서 일하시던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흥정을 하는 모양이다.
함께 구경하던 외국인이 사진에서 보이는 아주 무거워 보이는 쇠로 만든 와인 셀러같은 걸 보고, “이걸 사서 배낭처럼 매고 가라.’라고 농담을 해서 한참을 웃으며 이것저것을 구경했다.


이 사진을 보면 노란 밀밭에 그림자가 반만 드리워져 있다. 그만큼 해가 뜬 것이다. 이렇게 해가 뜨면서 그림자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탐쿠르즈 닮은 네델란드인 리치아드씨를 만났다.
그도 우리처럼 늦게 숙소에서 출발하고 이것저것 경치구경도 천천히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목적지에는 항상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 보면 이 아저씨는 탐쿠르즈를 너무 닮았다.

슬슬 다리가 아프다. 이제 어딘가에서 밥도 먹고 한참을 쉬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늘만 나오면 주저앉아 신발을 벗는 건 쉴 때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침을 숙소에서 안먹고 한참을 걸어와 여기서 먹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숙소에서 일찍 나서서는 이렇게 처음에 만나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그것이 순례자들의 룰인가 보다.
최대한 일찍 출발해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에 그날의 순례를 마치려는 의도이다.
첫 마을에 있는 첫 카페에서 잠깐 휴식도 취하고 아침도 먹는다.
이때쯤부터 새벽의 찬 공기는 없어지고 서서히 태양의 뜨거움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아침을 먹으면서 물도 든든히 챙기고 얼굴이나 팔, 다리 등 드러난 살에 썬크림도 바르고, 발에 바세린 로션도 바르고 하면서 그날의 본격적인 순례를 준비한다.

그래서 항상 첫 카페는 분주하고, 그 집은 장사도 잘된다.
딱 첫 카페여야 한다. 한걸음이라도 더 가서 있는 카페는 절대로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순례길에서 벗어나 있는 카페 같은 경우는 당연히 파리날리기 일쑤다.
어쩌다 첫 카페가 된 이런 집은 대박인 것이다.

시끌벅적한 카페 앞 테이블의 사람들을 보니 아직까지는 활기차다.
아침을 안 먹고 출발해 거의 한두 시간은 걸은 것이라 든든하게 주문했다.
중년이 된 내 나이에 밥은 에너지다.
이렇게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먹어도 남들처럼 잘 걷지는 못한다.

우리의 걷는 패턴을 보면 항상 오전 9시까지는 젊은 사람들과 걷다가, 12시가 넘으면 중년 아주머니 아저씨와 걷는다.
그리고 2시가 넘으면 노인들 그룹에 끼어 걷다가, 4시가 다 되어 가면 우리 둘만 뒤쳐져 걷고 있다.ㅠㅠ
우리의 걷기 패턴은 마치 무슨 수수께끼 같다.
그래도 느리지만 꾸준히는 잘 걷는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에 일찍 서두른 탓에 목적지에 2시 반에 도착했다.
점점 우리도 잘 걷고 있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또 열심히 걷다보니, 믿을 수 없이 뾰족한 삼각산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저 산을 넘어서 가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리의 우려와 달리 산 중턱을 돌아서 지나 넘어갔다.
산티아고 길은 그렇다.
절대로 저렇게 뾰족한 산을 직선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산을 돌고 마을을 돌아 완만한 경사로 걷다보면 어느새 그 산 옆을 지나고, 다시 산을 돌고 마을을 돌아 완만한 경사로 걷다보면 그 산이 어느새 우리 뒤에 있다.
그래서 언제나 평지와 약간의 오르막, 약간의 내리막을 걷는 것 같다.


꾸준한 오르막과 점점 뜨거워진 태양 때문에 땅만 보며 걷게 되는 시간이 있다. 그러면 눈에 들어오는 건 이런 풀꽃들이다.


그 뾰족산을 건너기 위해 산을 돌아 도착한 마을은 꽤 높은 고도에 위치한 마을이다.
카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차의 경적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빵빵빵하고 나더니, 잠시 후 또 빵빵빵하고 난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빵빵빵.
이 깊은 산속 마을에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무슨 성깔 사나운 양반이 운전을 저렇게 하나하는 생각에 그 차가 나타날 쪽을 째려보고 있었다.
조그만 승합차인데 우리 앞에 와서도 다시 빵빵빵.


‘뭐야, 사람도 없는데.’하고 생각하며 계속 지켜봤다.
승합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더니 차 뒤의 짐칸 문을 연다.
그리고 빵을 몇개 들고는 옆집으로 간다.


그 집 문 앞에는 할머니 한분이 나와 계신다.
운전자는 할머니에게 빵을 건넨다.
빵 배달 차였던 것이다.
이 깊은 산에 빵집은 없고, 이들에게 빵은 주식이니 매일 먹을테고, 저런 할머니가 매일 빵을 굽긴 힘들테고.
그래서 여기엔 우유를 배달하듯이 빵을 배달하는 차가 있나보다.
그리고 아저씨의 크락숀 소리를 듣고 빵을 배달 받을 사람들은 알아서 나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날 드실 한개반의 바케트 빵을 받으셨다.
빵차가 빵빵빵한 것이었다.


이 마을에서 우리는 약간 고민을 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우린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마을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정말로 한참을 앉아서 고민을 했다.

버스를 탈까?

한참을 실제 버스 정류장에 앉아도 있어봤다.
하지만 결국은 노란 산티아고 이정표를 따라 계속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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