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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가난한 역사를 품고 있다.
이제 제주도로 이주해 온지 2년도 안된 내가 그들의 힘들었던 역사를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배운 제주 구황음식에서 많이 배고팠을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그대로 다 이해되지는 않았다.

과거 제주는 유배지였다. 조정에 밉보여 더이상 정치에 나서지 말라고, 물리적으로 격리를 시켜 벌을 주던 곳이 제주였던 것이다.
제주에 유배를 온 김추사 김정희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먹을 것에 대한 푸념을 적어보냈을 정도로 제주에는 마땅히 맛있게 풍족하게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육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제주도도 일본인들에게 수없이 수탈을 당했다고 한다.
해조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그때부터 제주에서 나는 톳이나 모자반 등을 수탈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제주산 해조류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고구마 재배가 아주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자연 조건인 제주도에서도 고구마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여겨 제주도에서도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물론 제주도에서도 고구마 농사는 잘 되었다.
그러므로 고구마가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제주도 사람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제 시대 일본 사람들이 제주도에 고구마 전분 공장이나 당면 공장을 세워, 제주도에서 나는 고구마를 거의 사 들였다고 한다.
고구마 재배가 잘 되는 환경이어서 고구마를 많이 심었지만, 거의다 일본인 소유의 당면 공장으로 들어가고, 제주민들은 고구마 말린 거나 겨우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패전으로 돌아가고 공장은 거의 문을 닫고 마지막 제주민이 공동 소유하고 있던 당면 공장만 면면히 이어가다가 지금은 그 공장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문시장에 가면 아직도 시장에서는 대기업 당면이 아니라 노끈으로 묶어 파는 당면을 판다.
당면 공장이 있던 제주 역사의 흔적 같기도 하다.

그리고 4.3으로 7년 이상 흉흉한 세월을 보낸던 제주도민은 더 힘든 가난을 겪어야 했다.
4.3의 역사는 너무 길고 복잡한 이야기이므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시절 제주도민은 정치적 탄압과 더불어 더큰 가난과 싸워야 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해안 지대 5km 안쪽에 살고 있는 사람을 모두 해안으로 나오게 하는 '소개령'이 선포되자, 정치적인 이유로 산으로 숨어든 사람은 숨어지내느라 고생하고, 산간지대에서 해안으로 강제 이주당한 일반사람은 그 사람들대로 타지에서 먹을 게 없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섬에서는 평소에도 먹을 거리가 귀했다.
살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제주사람들은
메밀가루 한 됫박, 보리쌀 서너 줌, 감자 몇 알..
그렇게 품에 안고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숨어 들었다.
또한
해안 마을로 내려온 이들도 집 떠나 고생은 매한가지였으며
공포와 함께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양용진 선생님 글

마을 저장소 흙바닥에 박혀있던
빼때기(절간고구마 : 말린 고구마)라도 줍는 날에는
남몰래 주머니에 넣어놓고 손톱만큼 깨물어
침으로 불리면서 반나절을 입에 물고 다니며..
그렇게
목숨을 이어갔다.
-양용진 선생님 글

쌀이 거의 재배되지 않는 제주에서 효자곡물은 아무래도 메밀이었다.
따뜻한 날씨로 이모작이 가능한 메밀은 배고픈 제주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메밀은 고려시대 원나라 사람들이 제주 도민에게 나쁜 생각으로 퍼뜨렸다는 얘기가 있다.
메밀에 독성이 있어서 이걸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메밀을 항상 무와 함께 먹었다고 한다.
메밀의 독을 해독하는 성분이 무에 들어 있었다니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제주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난 식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도 사람들은 메밀로 밥도 해먹고, 떡도 해먹고, 수제비도 끓여먹고, 멀건 국에 메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먹으면 든든하게 해 먹었다.

제주 음식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음식이 그래서 많이 있다.

대표적인 구황음식을 이번에 배운 것이다.
선생님은 피난 음식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아마도 4.3때 산으로 숨어들어간 사람이나 해안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근근히 배를 채우던 음식이어서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다.

감저 범벅

전에도 말했듯이 감저는 '고구마'이다.
고구마를 숭덩숭덩 썰어 메밀가루로 범벅을 해서 먹는 것이다.


빼때기 죽

고구마를 오래두고 먹기 위해 말린 것을 빼때기라고 한다.
거의 곰팡이가 슬어서 먹어도 되나 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걸 곰팡이를 박박 씻어서 팥과 차조를 넣어 끓인 죽이다.


풀죽

보리, 차조, 메밀과 온갖 산에서 나는 풀을 뜯어넣어 끓인 죽이다.


모멀 조베기

메밀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것이다.


삶은 빼대기

말린 고구마에 핀 곰팡이를 박박 씻어 그냥 삶아 먹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제주의 모습은 현재는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불과 10여년 전부터 있었던 변화이고, 제주도 사람치고 부자 아닌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생겨난 것도 겨우 3, 4년 전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난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제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습성 중 '조냥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조냥정신이란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정신이라고 한다.
아마도 '절약정신'이라는 말일 것이다.
오랜 가난에서 온 나름의 생활 습관일 것이다.
제주음식 강의를 같이 듣는 젊은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십여년 전만해도 제주 티비 같은 데서 권장하는 제주의 정신이라며 공익광고 같은 것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제주 사람들 스스로도 궁상맞은 제주인의 습성이라고 생각한다니...
그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강의를 같이 듣은 언니 하나가 딱 그 조냥 정신이 몸에 베인 사람이다.
그 언니는 언제나 자기 컵을 들고 다니며 종이컵 쓰는 우리를 나무란다.
수업시간에 떡을 배우면 체치고 남은 찌꺼기를 모두 모아 다음날 견과류를 넣고 먹기좋은 간식으로 쪄온다.
식자재로 쓰고 남은 자투리도 거의 모두 그 언니가 챙겨서 집에 가지고 가신다. 우린 대충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버리는데...
언제나 부지런히 걸어다니시고, 뭐든 부지런히 하시는 분이라 언제봐도 깔끔하니 부지런한 분이시다.
그러니 제주의 '조냥정신'은 너무나 과한 소비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정신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 제주에 부는 바람이 정말로 좋은 건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처참하기 그지 없는 우리가 배운 이런 음식들은 가난한 제주민들이 오랫동안 먹었던 일반 음식이다.
어두운 과거를 끄집어내어 이런 걸 재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제주의 이 구황음식이 요즘 들어 웰빙 음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 식자재가 너무 비싸서 고급음식으로 취급받고 있다니 아이러니하긴 하다.

짧은 시간에 급변하는 제주를 보는 '육지껏'은 오늘도 생각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제주로 이주한지 2년도 안된 내가 적은 제주의 역사는 오해와 왜곡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의 역사는 기록된 것이 적고 거의 구술로 전해오는 탓에 전승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허점 투성이인 내 이 기록도 일정 정도는 가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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