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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2017.6.11.(39,606걸음)

아침에 일어나면 버스를 타든, 순례길을 포기하든, 결단을 내리겠다는 생각으로 뒤척이며 잠을 잤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부시럭부시럭 짐을 꾸려 색벽부터 길을 나선다. 이런 작은 소란스러움 때문에 알람 소리도 없이 잠에서 깬다.

게다가 우린 이층침대에서 자는 것도, 침낭 안에 들어가 자는 것도, 낯선 사람과 자는 것도 모두 낯설어 깊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통은 유럽여행을 오면 일주일 정도 시차 적응을 하느라 밤에는 잠을 설치고 낮에는 졸고 그러는데, 어제 낮에는 걷는 게 너무 힘들어 졸 새가 없었고, 밤에는 낯설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낮에 계속 걷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단박에 시차 적응을 했다.

가방을 꾸리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여분의 물건을 몇가지 버렸다. 산티아고에서는 여분의 물건은 불필요한 짐이 되는 것들이다.
남편도 몇가지 짐을 버리는 것 같았다. 나보다 훨씬 과감하게.ㅋ

남편이 자꾸 우리가 쓰는 침낭을 버리고 싶다고 해서 말리느라 고생 좀 했다.
가끔 어떤 알베르게는 새벽에 춥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는 자는 내내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린다.
그래도 베드버그에게서 우리를 지켜주는 건 침낭이라고 알고 있는 나는 결사 반대를 했다.
다행히 거의 마지막 날까지 뭐든지 버리는 남편에게서 나의 침낭을 지켜냈다.

어제 리셉션 아가씨인 수산나가 이 알베르게는 아침 식사를 멋지게 제공한다고 매우 자랑을 했었다.
샌드위치며 시리얼, 각종 빵과 음료수 등 다양하게 갖춘 아침 식단은 자랑할 만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면서 어제 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러고 한상 차려놓고 먹느라 우린 좀 늦게 출발했다.

"이상하네. 자고 일어나니 딱 걸을 수 있을 만큼만 힘드네. 어제는 죽을 만큼 힘들더니?"
"그러게. 우선 다음 목적지까지 그럼 걸어가 보자."
"그래. 잘 걸으려면 두둑히 먹어두자고.ㅋ"

이렇게 우리의 고민은 간단히 끝났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걸을 수 있을 만큼만 힘들었다.


어제 힘들어서 죽을 것 같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아침엔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우린 이때까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숙소에서 아침을 거의 먹지 않고 새벽같이 출발한다는 것을.
더워지기 전에 가능한한 많이 걸어 두려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우리는 잘 걷겠다고 아침을 두둑히 먹고, 화장실 볼일까지 보고 나서서 많이 늦었는지, 길에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제 이 마을에 우리랑 비슷하게 하위 그룹으로 도착한 사람들이 우리처럼 느즈막히 어슬렁 어슬렁 숙소에서 나와 우리랑 같이 걷고 있었다.

하위그룹 멤버는 탐크루즈 닮은 미국아저씨(나중에 알고보니 네델란드사람이었다), 목소리 낭랑한 홍콩아가씨들, 샌프란치스코에서 온 고등학생인데 같이 오기로 한 아빠가 바빠 둘만 왔다는 교포 쌍둥이 형제 그리고 우리이다.
아침에 이렇게 다시 만나니 서로 멋쩍게 인사를 나누었다.

새벽에 알베르게가 있던 마을에서 떠날 때 기분은 참 상쾌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차분하다.

하루 여정이 얼마나 고될지에 대한 걱정은 일도 없는 시간이다.

어제 시에스타 시간이 지나고 시끌거리던 골목에는 길을 나서는 순례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만 걷자고 하며 눈물의 맥주를 마셨던 집도 아침엔 조용하다.


조용한 거리

배낭에 덜 마른 빨래를 달고 오전 중 걸으며 말린다.
해가 등 뒤에서 뜨기 때문에 내 배낭이 딱 좋은 빨래 건조대가 되는 것이다.
어떤 과감한 외국 아주머니는 속옷까지도 이렇게 메달고 말린다.


내 가방에도 양말이며 수건, 티셔츠가 주렁주렁.ㅋ

오늘도 걸으면서 우리는 꽃구경을 한다.




조는 거 아님.ㅜㅜ 순간 포착이 잘못 되었을 뿐이다. 이 노란 꽃이 길에 너무 예쁘게 노랗게 노랗게 피어 있어서 걷는데 많은 위로가 되었어서... 아무튼 난 절대로 조는 거 아님.

길에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꽃의 생김새가 꼭 달맞이 꽃처럼 생겼다.
이 노란 꽃의 향기가 짙어서 언제나 냄새로 먼저 알아채게 되는 꽃이었다. 눈보다 코로 먼저 아는 꽃이었다.


걷기 시작한지 한시간이나 되었을까? 우리 앞에 나타난 압도적인 비주얼의 산이 있었다.
저 산을 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스페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뾰족한 산이니 기념 사진이나 찍자며 둘이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 순례객이 “내가 찍어줄까?”라고 물어왔다.
힘들게 걷는데, 우리 사진 찍느라 지체하게 하는 게 미안해서 우린 사양을 했다.
그 여자는 긴 치마바지를 입었고, 이어폰을 끼고 혼자 뭔가를 들으며 너무나 힘겹게 걷고 있었다.
이렇게 스치듯 만남 여자랑 오늘 저녁에 같은 방에서 자게 된다는 건 까맣게도 몰랐다.
그 여자는 미국에서 온 크리스틴이라는 투덜이 아가씨였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란 게 없는 것 같다.
일정이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언젠간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
그때 우리한테 호의를 보일 때 자연스럽게 받아줄 걸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몇 시간이라도 더 먼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테니까.
아직 걷기 초보라 순례길에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지 덜 파악됐을 때의 얘기다.
아무튼 이 뾰족산은 넘지 않고 다행히 옆으로 돌아서 걷는 순례길이었다.


오늘도 우리를 인도해 주는 이정표.

한참을 걷다보니 첫번째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마다 있는 식수대 옆에 한 아주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체리와 살구, 오렌지를 좌판에 벌려놓고 팔고 계셨다.
이 아주머니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신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작은 마을들에 있는 사람들은 숙소 직원이든 카페 직원이든 길에서 만나는 마을 주민이든, 거의 영어를 못하고 스페인 말만 한다.
가격이 엄청 싸서 손짓 발짓해서 체리와 살구를 샀다.
우리나라에서 최소 만원은 할 양을 1유로, 한국돈으로 1,300원에 팔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농가의 사정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농가에서 생산된 과일을 농민이 시장에 내다 팔 때는 아주 싼 가격에 넘긴다.
하지만 그 과일을 시장에서 사먹는 소비자는 매우 비싼 가격으로 그걸 사먹는다.
즉 생산하는 농민도 소비하는 소비자도 손해를 보고, 중간 유통업자만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경우는 농가에서 이렇게 직접 파는 가격이나 시장에서 우리가 과일을 사먹는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즉 시장 과일 가격도 매우 저렴한 것이다.
우리가 농가의 소득까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소비가가 바가지는 안 쓰고 과일을 사먹고 있다는 뜻이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순례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식수대에는 물도 있고 쉴 의자도 있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아주머니에게 체리며 살구, 오렌지를 한두 봉지씩 사들고 서로 나눠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들 한봉지씩 산 과일

캘리포니아에서 온 루시아는 친구 캐시랑 함께 걷고 있다. 루시아는 수다쟁이고, 캐시는 새침떼기이다.
노부부도 함께 했는데,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부산에 와서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부는 산티아고에 6년 전에도 왔었는데, 다시 왔다고 했다.
나이가 정말 많으셔서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지팡이에 의지해 매우 느리게 느리게 걷고 계셨다.
어제 만났던 동규씨도 뒤따라 와서 합류했다.
어제 엄청나게 빠르게 걷더니 그래서 많이 피곤해 늦잠을 자고 늦게 출발했다고 오늘은 쉬엄쉬엄 걸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사진에 루시아도, 할아버지의 지팡이도 보인다. 그림자는 동규씨.ㅋ

아무리 그늘이 좋고, 이야기가 재미있어도 하루치의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한참을 걷다가 나타난 다음 마을은 먼 곳에서 그 마을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깜짝 놀라게 하는 모습을 갖고 있었다.
약간의 경사진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마을의 집들이 땅 위에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도 무심코 이렇게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집들이 층층히 쌓여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나타난다.
걷느라 힘들더라도 힘든 거 잊고 멋진 순간을 포착해 사진을 찍으면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곳이 산티아고이기도 하다.

걷다가 저멀리 마을이 보이면 아주 반갑다. 보통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다시 힘이 난다.

어제 하루 힘들게 걷고 우리는 오늘부터는 작전을 바꿨다.
걷다가 마을이 나오면 무조건 자리잡고 푹 쉬기로 한 것이다.
쉬어갈 지점에 마을이 있고, 쉬어갈 지점에 가게가 있고, 쉬어갈 지점에 식수대나 의자가 있다는 룰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쉬어갈 지점이 나왔는데 “아직 걸을만한데?”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면 얼마 안가서 그늘도 없는 곳에서 맨 바닥에 주저앉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이 나오면 가지고 있는 물도 있고, 아직 배도 고프지 않더라도 어디 그늘에 들어가 배낭 내려놓고, 신발도 잠시 벗어 놓고 푹 쉬어야 한다.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가게도 아주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난 골목길에 주저 앉아서 쉬고 있다.

스페인의 시골마을의 분위기는 동화같다.
수백년은 되어보이는 돌벽도 색이 약간 발한 듯해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길은 좁지만 돌길로 깔끔함을 보탠다.
어느 집이나 작은 베란다에는 울긋불긋한 꽃화분이 하늘거린다.


그렇다고 모든 마을이 동화같이 예쁘기만 하지는 않다.
어떤 마을에는 무너진 집도 많고, 사람이 살 것 같은 집은 별로 없고, 그저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나 카페 혹은 바만 있는 마을도 있다.
특히 산티아고 길에 있는 마을 중에는 까미노 마을이라고 해서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해 유지되는 마을도 있다고 한다.

한국도 시골 마을에는 사람이 엄청 줄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고, 마을 전체에 아이라고는 한명도 없는 마을이 부지기수이다.
까미노 마을에서 무너진 건물을 보면서 작년까지 살았던 상주 시골의 작은 마을들이 많이 생각났다.

걷는 게 힘들어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저 걷기만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길이 산티아고 길이다.


저 높은 곳에 보이는 것이 다리가 아니라 물이 이동하는 수로이다. 대규모 농사에 어울리는 엄청난 물관리이다.

걷는 내내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 그룹이 있었다.
여덟명이 단체 여행을 오신 듯하다.
영어는 못하시고 오직 프랑스 말만 하신다. 얼마나 왁자지껄 걸으시는지 언제나 시선을 끌며 걷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를 만날 때마다 프랑스 말로 유쾌히 인사를 하셨다.
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많으신 그분들이 젊은 우리보다 훨씬 잘 걸으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다가 완전히 우리가 그분들에게 뒤쳐져서 한동안 앞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그분들이 길가 나무에 메달려 시끌벅적하고 계신다.
할머니들은 나무 아래서 나무 위를 쳐다보며 재잘거리고 계시고, 할아버지들은 길가 가드레일에 올라가 나무 가지를 잡아당기면서 뭔가를 열심히 하느라 나무에 가린 상체는 보이지도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체리가 먹음직스럽게 익은 게지.
할아버지들은 나무 가지를 잡아당기며 익은 체리를 따서, 아래에서 모자를 벗어 들고 계시는 할머니들에게 딴 체리를 주고 있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나이 든 분들은 참 극성이다.


그 체리 다 따 드시고 가실 듯 모자 가득가득 체리가 담겨 있고 당신들도 먹으면서 지나가는 우리에게도 한움큼을 나누어 주셨다.
한참을 땡볕에서 걸어와서 였을까, 더위에 지쳐 단것이 땡겼을까, 아무튼 내가 태어나 먹어본 체리 중 맛이 으뜸이었다.


체리를 얻어 들고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봤는데도, 여전히 나무에 메달려 계신다.

체리를 따 먹느라 한참을 뒤쳐진 그 분들이 삼십분쯤 후 언덕길에서 우리를 또 앞지르셨다.
아마도 이때쯤 이 분들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우리 둘이 엄청나게 느리게 걷는다는 걸...ㅜㅜ

산티아고 길에서 우리보다 못 걷는 사람을 우린 아직 한번도 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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