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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음식 이름부터가 한껏 낯설다.
그래서 그 이름에서부터 제주음식을 만드는 이 시간이 재미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긴다.
이날 수업은 양용진 선생님이 진행하셨다. 양용진 선생님이란 분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강의에서 한두번은 거론되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란 말인가?
기대가 되는 선생님이었다.

다음 웹툰에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라는 것이 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olddog

거기에서 난 처음 양용진 선생님을 웹툰으로 봤다.
오~ 왠지 예술가같은 풍모를 가지고 계시는 선생님이셨다.


<올드독이 그린 양용진 선생님 따라 그려보기>

그리고 오늘 그 선생님의 첫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모자 때문에 더 예술가처럼 느껴졌다. 멋진 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이신 거 같다.


기대되던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선 제주음식은 그 이름부터가 모두 낯설다.
웬만한 음식은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음식인 줄 알 수 있다. 최근 해외여행을 몇번 다녀온 후로는 외국음식도 그 이름으로 대충 짐작할 정도가 됐는데, 도대체 제주도 음식은 이름부터 쌩판 모르겠다.ㅜㅜ 그래서 음식 이름을 들어도 뭔 요리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행히 양용진 선생님은 제주어를 함께 설명해 주시는 자상함까지 겸비하셨다.

제주어는 참 재미있지만,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기록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배우려고 하면 언어인지라 그 느낌이 살지 않은 상태에서 문자로 접해봐야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어서, 몇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었다.
그렇다고 제주에 이사와서 하나둘 알게 되는 제주도민에게 제주어를 배우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오히려 그들이 더 난감해 한다. 본인들은 그냥 어려서부터 쓰던 말이라 딱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90프로 이상의 제주사람들의 대답이다. 그러니 본토 발음으로 배우려는 것도 실패다.

그런데 양용진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는 많이 달랐다. 음... 맛을 살려 제주어를 구사할 수도 있으시고, 적당히 어원이나 상황을 들어 제주어를 설명도 해주시는 능력이 있으셨다. 대~박~ 내가 찾던 제주어 선생님이시다. 아닌데, 제주 음식 선생님인데... ㅋ

설명 능력이 탁월하신 양선생님의 음식 이야기도 진정 ‘스토리텔링’이라는 타이틀에 적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멋진 강의를 듣게 된 것이 분명하다.

우선 오늘의 제목인

낭푼밥상

이라는 말부터 설명을 해주셨다.

언뜻 들으면 ‘양푼에 차려주는 밥상이구나’하고 쉽게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지나칠 이름이다.
그러나 여기서 ‘낭푼’은 ‘양푼’의 제주도 사투리가 아니다.(헉!!)
제주는 나무를 ‘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스텐볼처럼 큰 그릇을 ‘푼주’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낭푼’은 ‘나무로 된 큰 그릇’이란 뜻이다. 원재료가 나무로 된 것이 낭푼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양푼이 아닌 것이었다.
우와~ 그냥 지나치기에는 제주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말이었던 것이다.

옛날 제주밥상은 가운데 나무로 된 큰그릇(낭푼)에 밥을 하나가득 담고, 주변에 반찬을 둘러 놓고, 다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의 밥상을 대표하는 표현이 ‘낭푼 밥상’이 된 것이다.


<낭푼밥상>

양용진 선생님은 제주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낭푼 밥상’이라는 식당도 운영하고 계신다고 한다.
완전 제주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낭푼밥상(향토음식)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평화길 162번지(유수암리 965번지)

육지 사람들의 평은 우선 비싸다, 그리고 맛이 그닥 없다,란다.
하지만 이런 혹평에는 제주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제주에 대한 낯설움 때문에서 오는 오해가 대부분인 것을 수업을 들으면서 차차 알 수 있었다. 그곳의 음식은 아마도 대부분 '배지근한 맛'이었을 것이다.ㅋ
그리고 전통의 맛을 보존하는 식당의 맛이 현대인에게 ‘싸고 맛있는 집’이었다면 더 말이 안되는 것이겠지? 큰 깨달음이었다, 내게는...
진짜 제주맛을 알고 싶다면 이곳을 적극 추천한다. 선생님의 손맛이 예술이다~^^

양용진 선생님의 첫수업은 ‘제주 음식의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 제주 음식은 단순하다.

정말 제주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요즘 관광으로 급부상하는 제주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생겨나는 가게들 때문에 화려하고 복잡하고 자극적으로 변해 있지만, 제주 전통의 맛은 그런 게 아니다.

제주 음식이 단순한 이유는 제주 사람들이 바쁘고 언제나 신선 재료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 다른 조리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가난했던 제주사람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밥상 하나도 번거롭게 차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낭푼에 밥을 한데 퍼서 있는 반찬 꺼내놓고 빠르게 먹어야 했다고 한다. 반찬은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생선, 가까운 텃밭에서 뽑은 야채 등이 다였다.

제주도는 텃밭을 ‘우영팟’이라고 부른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따로 야채 저장고가 없고 그냥 우영팟에 먹을 야채를 심어놓고, 끼니 때마다 그때그때 따 먹었다. 그러다 보니 우영팟 자체가 냉장고 신선칸 역할을 했다.

육지는 텃밭에서 야채를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짧다. 그러다 보니 길가에 꽤 넓은 공터에 많은 야채를 심어서 먹고 이리저리 조리해서 저장하고 한다. 그러다 보니 텃밭이 그냥 바깥 쪽으로 노출되어 있다. 개방형인 것이다.
반면 제주의 우영팟은 자기집 냉장고와 같은 것이므로 그리고 거기서 매끼 반찬을 해 먹어야 하므로, 집 안쪽 뒷마당 쪽으로 숨어 있는 폐쇄형이다.

둘째, 제주 음식은 제철에 충실한 음식이다.

이런 이유는 두가지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모순되지만 먹을 게 없어서이고, 먹을 게 많아서이다.(뭐래니..ㅋ)

제주사람들은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우선 주식으로 먹을 곡식 농사가 잘 되지 않는 땅이 문제이다. 쌀 농사는 거의 못 짓고, 보리나 메밀, 좁쌀 농사로 주식을 해결해야 했는데, 그것도 제주 전지역에서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식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제주에서는 쌀이 귀해서 쌀밥은 잔치날에만 해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흰 쌀밥을 부르는 이름도 '희고 고운 밥'이란 뜻의 '곤밥'이다.

반면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에 나가 30분 정도만 애를 쓰면 밥상에 오를 해물을 공수해 올 수 있었다. 딱히 보관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보관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시사철(뭐 한겨울에 한달 정도는 빼고) 야채를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지방이니 우영팟에서 그때그때 나는 야채를 먹을 수 있었다.
가난해서 저장해 먹진 못했어도, 제철 음식을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조건은 되었던 것이다.

셋째, 어울림과 공동체 문화를 표현하는 음식이다.

이런 특징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양반과 평민의 밥상, 남자와 여자의 밥상, 어른과 아이의 밥상으로 구분하여 개별 밥상을 구현했다고 하기 보다는 밥상의 구성상 언제나 어울림과 공동체 문화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인들이 각자 자기 그릇에 한그릇씩 음식을 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해서 이 세번째 특징은 한국인의 밥상이 갖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양용진 선생님은 특별히 제주 밥상이 더 그렇다고 설명하셨지만, 난 반댈세.ㅋ

넷째, 제주 음식은 단순한 양념으로 만들어진다.

정말로 제주 음식의 기본 양념은 다른 것 다 버리고 그냥 ‘된장’이다.
정말로 재미있게도 ‘된장’이다.ㅋ
제주 된장이 육지 된장과 다른 것은 나중에 된장을 배울 때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아무튼 된장으로 시작해 된장으로 끝나는 것이 제주 음식이다.

제주 사람들은 찬물에 된장을 풀어 후루룩 마시고 끼니를 해결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란다.

최근 들어 고추장으로 양념한 제주 물회라든지, 관광객에게 엄청나게 인기있는 갈치조림이라든지 이런 데에서는 제주 음식의 정취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씀이셨다.
아주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정말이란다.
제주 음식은 고추가루로 양념한 음식이 없다니...
제주도 고추는 단맛이 강해서 병충해가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추가 빨개질 때까지 못 두고 거의 풋고추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빨간 고추가루가 아주 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춧가루는 고급 음식에 조금 뿌려먹는 고명의 역할을 했다니...

다섯째, 제주음식은 신선한 채소를 우영팟을 통해 자급자족해 많이 섭취한 탓에 영양면에서 균형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우스갯 소리도 해주셨다.(실제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영양이 균형잡혔던 옛 제주 음식을 먹은 제주도 사람들이 장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영양은 균형이 잡혔지만, 못먹어서 영양이 부족했단다.
제주는 가난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여섯째, 제주 음식에서 단백질 섭취의 경로는 육고기가 아니라 어패류였다.

이건 제주가 섬이라서 갖는 특징이다.
최근 들어 과다한 육고기의 섭취로 생기는 성인병의 대안으로 등푸른 생선이니 하는 것이 인기있는 걸 보면 제주는 좋은 단백질 섭취 습관과 환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하면 생각나는 게 흑돼지지만, 정작 제주 사람들은 아주아주 큰 잔치에서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곱째, 제주 음식은 주식이 다양하고 국이 발달했다.

주식이 다양한 이유는 하나다. 쌀농사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쌀 대체 곡식을 먹다보니 주식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쌀이 풍부해 쌀밥을 먹어야 밥을 먹은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육지 사람들(나도 여기에 포함된다.)에 비해 요즘 유행하는 웰빙 밥상을 제주도 사람들은 먹어 온 격이다.
하지만 지금의 잣대로 해석하자면 좋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매우 가난하고 배고팠다고 한다.

국이 발달한 것은 앞으로 제주 음식을 배우면서 알게 될 것 같은데, 지금 내 눈치로는 된장 풀어 어떤 야채를 넣느냐에 따른 다양성일 듯해서, 실체는 다양하지 않을 것 같기도...ㅋㅋ

이렇게 양용진 선생님의 첫 제주음식 스토리텔링이 시작되었다.
이론으로 들어도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그리고 오늘 실습한 제주 음식은 감저밥, 돗괴기국, 자리젓지짐, 풀고치젓국무침, 된장드레싱이었다.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문화가 느껴진다.

제주음식 실습은 다음 편에...^^

내가 배운 제주어 정리
낭푼 : 나무로 된 큰그릇
우영팟 : 텃밭
곤밥 : 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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