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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을 걷다보면 정말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된다.
몇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일년에 한달 정도 유럽여행을 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농한기인 겨울에 세달 정도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자유롭게 해야 해.'하는 생각으로 패키지 여행을 거부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외국을 가보지 않은 남편이 혼자서 비행기, 숙소 등을 스마트폰 하나로 다 알아보고 예약해야 했었다.
꼼꼼한 성격에 혼자 그런 걸 준비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겠지만, 그래도 직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혼자 그걸 다 해냈다.
그렇게 간 자유 여행이었지만 그곳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무래도 언어적 한계도 있고, 쉽게 외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산티아고는 달랐다.
산티아고에 간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길을, 비슷한 속도로 걷는 곳이 산티아고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례객들은 매일 비슷한 마을에 도착을 해서 몇몇 알베르게에 나뉘어 잠을 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어떤 그룹이 패키지 여행처럼 뭉쳐 다니는 느낌이 든다.

걸으며 경치도 감상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중간중간 먹기도 많이 먹지만, 더 많이 하는 것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짧게든 길게든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언어? 영어를 잘하면 좀더 도움이 되겠지만, 영어를 잘하는 것이 더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지만은 않는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영어권 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이태리, 독일, 브라질, 캄보디아 등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걷고 있다.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라 젊은 사람들처럼 글로벌하게 영어를 쉽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인삿말 “올라(안녕)”와 “부엔카미노(좋은 여행되세요)”만으로 서로에게 아는 척을 하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친근감을 표현할 수 있다.
어쩌다 좀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아는 영어, 할 수 있는 몸짓(바디랭귀지)을 모두 동원해 할 수 있는 만큼만 소통하면 된다.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면 오늘 건넨 '올라(hola)'가 다음 날 건넨 '부엔까미노(buen camino)'가 하루하루 쌓여서 친구를 만들어준다.


나는 “부엔카미노”라는 인삿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갔다.
자꾸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부엔까미노~"라고 인사를 하길래 남편한테 물었더니, 산티아고 길에서 서로에게 잘 걸어라, 행운을 빈다는 뜻으로 나누는 인사란다.
영어로 하자면 “Good road”가 될라나?
그리고 산티아고 길에서 외국사람도 많이 물었지만 딱히 한국말로 표현할 말은 없는 듯하다. 어디엔가에서 한자로 정도(正道)라고 쓰여 있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의역해서 “좋은 여행되세요.” 정도?
아무튼 낯선 인삿말이 입에 안 익어, 첫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일부러 더 열심히 "부엔까미노~"라고 인삿말을 전했다.
아마 그 인삿말이 내 입에 익는데 2, 3일 걸린 듯하다.

그렇게 첫날 걷는 길에서 만난 친구들.


산티아고 와서 처음 알게된 미국에서 온 션과 던.
처음엔 알베르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인줄 알았는데, 오늘 길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는지 뒤에서 오고 있었다. 그들은 친구들이랑 큰소리로 떼창을 하며 걷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호텔 캘리포니아"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로 목청껏 부르고 있었고, 우리를 앞질러 가면서는 "부엔까미노~"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우리를 가뿐히 앞질러 갔다.
그들은 언뜻 보면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외모이다.
친구 넷이 같이 산티아고에 온 듯하다.
청년답게 매일 매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동행하는 친구가 매일매일 바뀐다.

이 친구들은 매우 사교적이라 우리가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우리에게도 계속 말을 많이 건다.
특히 어린 친구들의 영어는 더 못알아 듣겠다. 빠르고 건들거린다고 할까? 아무튼 교과서적이지 않다.ㅜ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만날 때마다 “하이, 션”, “하이, 던”하고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이름을 불러주어서였을까?
이틀 정도 지나서 션이 나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너의 이름을 잊었어. 다시 알려줄래?”라고 물어 내 이름을 다시 알려주었다.
그 후로는 그들도 우리에게 이름을 붙여 인사를 건넸고, 그리고 여전히 못알아듣는 많은 말을 우리에게 해댔다.
특히 초반에 남편이 발에 생긴 물집 때문에 잘 못 걸어서 자주 길에 앉아 쉬면서 옷핀으로 물집을 터뜨리기도 하고 밴드를 다시 붙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둥그렇게 우리를 감싸고 서서 한참을 괜찮냐며 걱정스럽게 물어보고 우리가 다시 걸을려고 일어설 때까지 지켜보다가 우리가 잘 걷는 걸 보면 "부엔까미노~"라고 인사를 하고 앞서 걸었다.
한 일주일 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속도가 달라져 그들을 더는 못봤다.
그들과 함께 나란히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쉬웠다.
특히 초반에 우리는 친구 사귀는 기술이 미숙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하는 것을 매우 쑥스러워했었다. 그들과 매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일주일간 매일 같은 길을 걸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그들이 '호텔캘리포니아'를 열심히 부르며 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만 있었다.

어느새 미국인 친구들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 넓디넓은 밀밭만이 펼쳐진다.


밀밭


또 밀밭


밀알이 거의 영글었다. 곧 수확철일 듯하다.


이 한장의 사진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허허벌판을 걷다가 이렇게 나무 그늘과 의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쉬어가게 된다. 산티아고 길에는 딱 쉬어야 하는 타이밍에 이런 그늘과 의자가 있다. 힘이 좀 남는다고 이걸 지나쳐 가면 잠시 후에는 어김없이 땡볕아래 흙바닥에라도 앉아 쉬어야 한다. 그러므로 쉼터가 나타나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

사진에서 자전거를 타고 계시는 분은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해 12,000킬로미터를 자건거로 여행하시는 중이라는 할아버지다.
“매일 자전거로 100킬로 가까이 가다보면 너무 힘들지.”라는 말을 하시면서도 얼굴에는 자부심과 행복이 비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는 70일간의 유럽 여행 중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는 한국인 동규라는 친구이다.
“저는 한국사람도 재밌는 사람이라는 걸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머리도 여행 오기 전에 내가 직접 노랗게 염색했어요.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큰소리로 신나게 인사를 나눠요. 영어는 되든 안되든 대화를 이어가려고 뭐든 막 말해요.”
이렇게 말하는 동규씨는 정말로 쾌활한 청년이다.
짐도 얼마나 많이 짊어지고 가는지 허리가 휠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간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무지 빠르다.
젖은 신발이 싫다며 비올 때를 대비해 운동화 외에 샌들도 준비해 들고 다니고 있고, 베드버그(이놈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가 너무 싫어 침낭은 철벽 방어를 할 수 있는 매우 큰 침낭을 베낭 위에 얹어서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콜라를 좋아한다며 배낭에는 항상 콜라를 들고 다니고 있었고, 먹을 것도 다양하게 많이 가지고 다닌다. 옷도 이것 저것 매우 많은 그의 배낭은 그의 어깨 살까지 벗겨놓았다.
우리는 엄청난 짐을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다니는 그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매우 유쾌했고 신나보였다.
사실 그는 며칠 후 짐이 너무 무거워 넉다운이 됐는지 이삼일 우리보다 뒤쳐졌었다. 물론 빠른 걸음 때문에 다시 우리를 앞질러 갔지만...

그리고 나무 옆에 있는 돌무더기와 십자가.
그 십자가에는 사진도 한장 붙어 있다. 아마도 벨기에 사람인가 보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이런 십자가를 자주 보게 된다.
지금은 이 길이 많이 유명해져서 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중간중간 마을에 쉴 수 있는 카페나 바, 그리고 숙소도 있고, 많은 정보도 있지만, 과거에는 말그대로 고난의 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가 죽는 사람도 있었단다.
그러면 그들을 기리기 위해 그가 걸어서 간 지점에 혹은 꼴까닥 넘어간 지점일까 아무튼 그쯤에 이렇게 십자가를 세워 그를 추모해준다고 한다.
나도 걷는게 너무 힘들어 농담처럼 친구들에게 “순례길이 순교길이 될까 두렵다.”고 했었다.
우리가 걸으면서 처음 만나는 십자가여서 좀 마음이 숭고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모든 이야기를 나누며 그늘에서 한참을 쉬다가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동규씨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우리도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걷다가 처음 만난 마을은 정말 반가웠다.
작은 바가 있어서 모든 순례객들은 여기에서 물도 채우고, 맥주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그늘이나 의자에 앉아 쉬기도 한다.


알베르게도 함께 운영하는 작은 바이다.


누구도 이런 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왜? 다리가 엄청 아프거든...


우리를 한참이나 앞서서 열심히 걷던 동규씨도 여기서 쉬고 있다.
"거봐요. 뭘 그렇게 힘들게 걸어요. 짐도 무거운데 천천히 걸어요."라고 하는 우리의 말을 안 듣고 동규씨는 또 먼저 앞서 부지런히 걷겠다며 출발했다.
물론 그는 매일 목적지까지는 똑같이 갔다. 단지 우리보다 몇시간 먼저 도착할 뿐.

방금 전 마을에 바가 있고 모든 순례객이 그곳에서 쉬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 마을을 지나고부터는 계속 오르막이고 자갈길이었다.


자갈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올라가다 쉬면서 쌓은 돌탑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나도 '이 오르막이 끝나게 해주세요.'라는 마음을 담아 돌탑을 쌓았다.


고난의 길, 자갈길, 오르막길, 땡볕, 무거운 짐, 갈증...
절대로 힘차게 빨리 걸을 수 없는 길이 계속 되고 있었다.


이렇게 걸어 올라간 길에는 산티아고 사진에서도 꽤 유명한 조형물이 있는 언덕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 걸은 27킬로 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조형물들이었다.
나는 여기를 '바람의 언덕'이라고 불렀다. 원래의 이름은 ‘용서의 언덕’이다.
순례자들이 이쯤 와서 그간 자기가 용서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용서하는 그런 언덕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올라오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것을 모두 날려버릴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자꾸 '바람의 언덕'이라고 말하게 된다.

오늘 코스 중 여기가 꼭대기라는 말은 아침부터 여기에 올 때까지 계속해서 오르막을 올랐다는 뜻이다.
기온은 30도를 넘는데 그늘을 만들어줄 건물도 나무도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돌길을 올라 여기에 도착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시원한 바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서는 옹기 종기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끝없는 상념에 빠져 있다.
용서를 했는지, 바람을 즐겼는지, 상념에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순례자들의 행렬을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서는 모두모두 사진 한장씩을 찍는다.


이 글을 정리하다가 이 사진 한장에 한참을 다시 생각에 잠겼다.
힘들게 올라온 남편을 찍어준 사진인데, 그 뒤에 이날 이후 길에서 친구가 된 내 외국인 친구들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때는 그저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며칠 후 동지같은 친구가 된 친구들...

친구가 타인이었던 순간의 사진이라니... 재밌다.

여기서는 스치듯 지나간 가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처럼 보이는 미국에서 온 가족 순례객이다.
딸은 다리에 온통 벌레에 물린 자국이 있고, 그것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짜증이 얼굴 한가득이었다.(그 아들과 딸도 위의 사진에 있었다. 놀랍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좀 불편하신지 걷는 게 신통치 않아 들고 있는 등산 스틱에 몸무게의 반은 싣고 걷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 아이의 다리가 걱정되어 “혹시 베드버그에 물렸니?”하고 물었더니, “아니야, 모기야.”라고 답하는게 다급해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서는 베드버그에 물리면 물린 사람이 희생자이지만, 베드버그를 옮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그 아이도 화들짝 놀래 자긴 모기에 물린 것이라고 황급히 답한 거 같기도 하다.
사실 난 그 때까지 베드버그의 악명을 잘 모르고 있었으므로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 내가 베드버그에 물리고 보니 그때 그 아이의 다리에 난 상처는 분명 베드버그에 물린 상처였다. 엄청 가렵고 아팠을텐데... 다시 보니 더 딱하다.
게다가 산티아고에는 그 아이의 다리를 그렇게 처참하게 만들 모기가 그닥 없다.
내가 나중에 베드버거에 물려 그 고통과 기분을 알고 나니 그 아이가 자기 스스로 얼마나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을지 알것도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그 할아버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한국이 북한 때문에 매우 댄저러스한 나라라며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본 것이다.
우리가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은 했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의 설명에도 계속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할아버지 때문에 남편은 화가 났나보다.
나중에 나한테 "난 저 할아버지 다리가 더 댄저러스하구만."하고 한마디 했다.

산티아고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그렇다.
우선 북한 때문에 잘 알려진 나라인 것 같다.
사실 외신에 나오는 것이 김정은과 북한 미사일일테니 그들이 그런 인상을 갖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길에서의 또다른 한국은 “산티아고에는 아주 많은 한국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아주 많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새록새록 알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산티아고를 걷는 첫날부터 그렇게 사귀고 싶었던 외국인 친구를 하나둘 갖게 되었다.
이건 매우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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