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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9일

세상 열정적인 스페인 사람들, 밤이 늦도록 먹고 마시고 떠들더니 아침엔 그저 새소리만 들린다.
시차 적응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해뜨길 기다렸다.
어제 숙소 찾느라 만이천 걸음이나 걸어 힘들다고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톡을 했더니.
앞으로 산티아고를 걸으면 60만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오빠랑, 26만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남동생 말에 급! 또! 막! 겁이 나기 시작했다.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온 나.
산티아고를 너무 만만히 봤을까?
오늘 아침 어떤 블로그를 보니 한국서 걷기 예행 연습을 엄청 하고 왔다던데.
난 겁이 없는 걸까? 대책이 없는 걸까?
헐~ 그래서 난 많이 쫄았다.
진짜 그렇게 힘들게 걸어야 하는 걸까?

스페인 사람은 Wifi를 "위피"라고 한다.
티비 예능 프로였던 ‘윤식당’에서 신구가 외국인이 와이파이 되는지를 물으며 “위피?”하니까, “위스키?"하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숙소 할머니가 위피가 어쩌구 저쩌구 설명해주시는데 그게 와이파이 사용법을 설명하고 계시다는 걸 못 알아듣고 조금 헤맸다.


부산에 여행갔다가 만든 피규어.
여행다니면서 우리가 간곳에 세워 놓고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했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길에서 만나는 이런 저런 풍경에 이 피규어를 세워 놓고 멋진 사진을 찍어 보겠다고 들고 왔다.
그래서 마드리드 숙소 베란다에 피규어를 세워 놓고 사진을 한장 찍어 보았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산티아고 순례자 차림으로 피규어를 하나더 만들어볼까도 생각 중이다.


숙소에서 백 걸음 정도만 걸으면 나타나는 지하철역을 어젯밤엔 한시간도 넘게 걸려 헤매다 찾았으니...
오랜만에 오는 외국 여행지라 당황했나?
아님 너무 늦게(밤 10시) 도착해서 힘들었나?
어쩜 13시간의 장거리 비행으로 잠도 잘 못자고, 피곤해서 상황파악을 잘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안 헤매길 바랄 뿐이다.

드디어 우리의 산티아고 여정의 시작인 팜플로냐로 가기 위해 아토차 렌페(atocha renfe)역에 왔다.
우린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피레네 산맥 구간을 뺐다.
우선 피레네 산맥 넘기가 매우 힘들다는데, 거기 넘다가 산티아고 길을 아예 포기할까봐서다.
그리고 피레네를 넘으려면 프랑스 쪽으로 들어가 생장으로 가야 하는데, 제주도에서 파리로 가는 항공편이 간단하지 않아서이다.
제주에 공항이 있는 잇점을 적극 활용하고 싶었는데, 파리를 가려면 우선 인천 공항까지 가야했다. 제주도에서 슝~ 외국으로 날아가고 싶었다.ㅋ
그래서 우리는 피레네 산맥 넘는 것을 빼고 그냥 팜플로냐부터 산티아고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생장부터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팜플로냐까지 오는데 2, 3일 걸린다니 우리는 남들보다 3일 정도 앞에서 걷는 셈인가?
하지만 나중에 여정이 다 끝나고 나니 피레네 산맥을 뺀 것이 제일로 후회됐다.
아무리 자신이 없어도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아마 우리는 피레네 산맥부터 시작했어도 다 걸어냈을텐데 말이다.
사실 이번에 걸어보고 우리도 우리 자신을 잘 몰랐었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무척 잘 걷는다.
빠르게 걷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걷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다.
게다가 남들보다 더위도 많이 안탄다.
산티아고를 걸어보고 알아낸 우리의 대단한 능력이다.

이때만 해도 우린 산티아고 길을 다 걸을 거란 계획은 없었다.
뭐 걷다 중간에 차도 타고, 힘들면 걷는 여행을 중단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는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렌페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기 위해 이렇게 번호표를 끊고 기다려야 한다.
번호표도 두 종류가 있다.
오늘 렌페를 타는 사람들 번호표와 다른 날 렌페를 타는 사람들 번호표가 다르다.
렌페는 당일 표를 사는 것보다 예약을 하는 것이 많이 저렴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하러 역에 와서 대기표를 받아 표를 사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해도 값이 저렴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여행이 일찌감치 계획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렌페 표도 당일 구매해야 했다.
일인당 62.80유로이다.
올~ 꽤 비싸다.


아침도 안 먹고 기차역으로 온지라 기차역에서 간단히 샌드위치에 에스프레소도 한잔했다.
유럽의 샌드위치는 빵이 참 맛있다.
바케트빵으로 만들어 좀 딱딱하고 질기지만 식사대용으로 먹으면 참 든든하다.
에스프레소도 싸고 맛있다.
앞으로는 한동안 이런 아침을 먹게 될텐데 첫 아침 식사라 그런지 맛이 참 좋다.

이곳에서부터 산티아고에 가는 사람들이 부쩍 보이기 시작한다.
큰 배낭을 짊어진 사람, 긴 여행에 약간 긴장된 사람, 연신 지도를 확인하며 여정을 계획하는 사람, 누가 봐도 그들은 산티아고에 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설레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담긴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렌페에 탑승했다.
고속 기차지만 소음은 크지 않은 기차이다.
그러나 앞에 앉은 스페인 어린이가 아이패드로 열심히 게임을 하시는 중이라 좀 시끄럽다.
어딜 가나 애들은 똑같다.
게임이 잘 되면 좋다고 소리지르고, 잘 안되면 짜증내고 울고 그런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허허벌판.
마드리드에서 출발한지 오분도 안 돼서 이런 허허벌판만 달리고 있다.
포도밭, 아니면 산, 아니면 흙길, 아니면 끝없이 펼쳐진 밀밭.
혹시 우리가 한달 동안 이런 허허벌판만 걷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재미없는데?
미세먼지가 있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저 멀리 산들.
좋겠다, 미세먼지 없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3시간 남짓을 갔다.
이때까지도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걸으러 왔는데, 걸으면 어떨지 왜 걷는지 어떻게 걸을지, 뭐 그런 생각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넓은 스페인땅 감상과 맑은 스페인 하늘에 감탄하며 팜플로냐로 갔다.

맵스미(maps me)라는 어플이 있단다.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글맵은 뜨질 않는데, 이 맵은 위치를 추적해서 지도에 우리 위치도 알려준단다.
기나긴 산티아고 길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남편이 찾아낸 맵이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산티아고 길에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래도 숙소 찾고, 남은 킬로 수 체크하고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어디로 가는가 보다는 얼마나 가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산티아고 여정의 시작점인 팜플로냐역에 떨어진 우리.
이제부터 뭘해야 하나?
숙소까지 버스를 타야한데서, 버스 기다리는 중이다.
난 요때 잠깐 당황했었다.
시작에 대한 어떤 생각도 해보지 않고 왔던 것이다.
그냥 어딘가에서 시작한다는 표 하나 받고 거기서 시작하면 되겠지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작점에 비행기 타고 기차까지 타고 왔는데, 곧장 걷는게 아니고 여기서 하룻밤 숙소에서 자고 아침에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뭐야, 순례길에 접어들기가 참 녹녹치 않구나.

산티아고 길에서 순례자들이 자는 숙소를 ‘알베르게’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안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있다.
그중 팜플로냐는 큰 마을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걷다보면 마을이 너무 작아서, 걸어서 열댓집만 지나가면 마을이 끝나는 아주 작은 마을도 많이 있다.
그러니 숙소를 찾아 버스를 타고 가는 팜플로냐는 매우 큰 마을인 것이다.
또한 산티아고를 걷다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말에 몇가지가 있는데, 그중 “넌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냐?”라고 묻는 게 있다.
그때마다 내가 이 마을의 이름을 얘기하게 되므로 아주 인연이 깊은 마을이 되시겠다.
“팜플로냐!”


숙소 찾아가는 길에 있는 "소몰이"동상.
7월이 되면 이 마을에 소몰이 축제가 있단다.
풀어놓은 소가 사람을 덮치는(?) 뭐 그런 축제란다.
티비에서 몇번 본 적이 있는 축제인 거 같은데, 이 마을로서는 꽤 자부심을 갖고 있는 축제인 듯하다.

이 축제 때가 되면 이 마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흰티를 입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사람들이 온 마을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나중에 산티아고 길을 함께 걸었던 동규라는 친구는 이 축제에 참여하가겠다고 중간에 순례길 걷는 속도를 남들의 두배를 내서 먼저 산티아고에 갔다가 팜플로냐로 다시 와서 이 축제에 참여한다고 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젊은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축제이다.
“제 평생 언제 소한테 쫓겨 보겠어요?”하면서.ㅋ


숙소 가는 길 집들이 알록달록하니 예쁘다.
골목 끝에 보이는 성당은 산 마리아 성당이란다.
우리가 여름에 유럽에 여행을 온 건 처음이다.
정말로 6시가 되고, 8시가 되고, 10시가 되어도 해가 떨어지질 않는다.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날이 주말인데다가, 낮에는 씨에스타 시간이라 문을 연 상점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쉬는 시간을 확실하게 확보하는 생활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알베르게(순례자들의 집)이다.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커다란 조개가 입구에 떡하니 걸려 있다.
호텔이나 호스텔 혹은 팬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알베르게라고 부르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두고두고 정감가는 호칭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신다.
어떤 두 외국인 청년이 우리를 배정받은 침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우린 그들이 여기 직원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우리와 같은 순례자였다.
가끔 주인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해 이렇게 순례자들끼리 서로 돕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후로도 길에서 며칠 자주 만났던 션과 던이라는 미국 청년들이었다.
어쨌든 오늘 자고 내일 아침까지 먹는 걸로 11.50유로, 그리고 순례자 수첩 2유로 주고 구입했다.


이게 순례자 수첩.
이게 있어야 알베르게에서 할인도 받고, 코스 따라 도장도 받아,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이걸 보고 순례자 수료증 같은 걸 준다고 한다.
난 도대체 이런 것도 전혀 모르고 갔다.
이 순례자 수첩도 묘한 매력이 있다.
순례자라는 소속감도 주고, 우리가 뭔가 하루하루 걸음을 걷듯, 뭔가 하루하루 수집해 모으는 것도 같고, 도장 모아 수료증을 받는다는 게 실적을 쌓아 자격증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 같다.


알베르게 안은 2층 침대가 일층과 이층에 꽉 들어 차 있어 아마 백명은 잘 수 있는 듯하다.
숙소라는 게 이렇게 침대만 왕창 있다.
나, 이때도 좀 쫄았다.
여기 저기 낯선 사람들이 누워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 피곤에 지친 사람도 있고, 뭔가 숭고한 순례길을 가느라 비장해 보이는 사람도 있고, 혼자인 사람, 여럿인 사람 등.
처음 눈 마주친 파란 눈의 아저씨는 옷도 거의 안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 치자 ‘올라’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얼떨결에 나도 ‘올라’라고 답했지만 순간 당황 ㅋ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침대를 배정받아 거기서 쉬고 있다.
뭐 칸막이도 없이 남녀 구분도 없이.
나중에 화장실과 샤워실도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하는 걸 보고 더 쫌.

동생과 한 톡.
“여긴 침실도 화장실도 샤워실도 모두 남녀 공용.”
“샤워실도?”
“응, 화장실이랑 샤워실도 같은 곳에 있어서, 옆 칸에선 똥누고 있는데, 그 옆 칸에선 샤워하고 뭐 그래.”
“헐~~”

숙소에 오면 와이파이가 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거라 그런지 연결 상태는 그닥 좋지 않다.
그래도 첫 숙소에서 받은 황당함을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현장감 있게 알리고 싶어서 간단히 이렇게 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한국인 커플이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 봤다.
그래도 삼일 선배라고 그들에게 의지가 됐다.
그 중 “이 정도면 괜찮은 숙소에요.”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지만, 앞으로 숙소 상황이 어떨지 꽤 긴장됐다.
제작년 처음 마드리드에 왔을 때, 부킹닷컴에서 저렴한 숙소를 얻었더니 너무 낡고 창문도 없어서 밤새 애궂은 와인만 마시며 “내가 이런 데서 잘려구 해외여행 왔냐구.”하며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긴장 좀 했다.
남편 따라 자주 여행 다니면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내가 잠자리를 좀 가리는 편이라서....


저녁은 수다쟁이 아저씨가 하는 가게에서 파니니와 맥주를 먹었다.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지만 수다쟁이였다.
한국에 대해서도 엄청 아는 척을 했다.
우리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여긴 스페인이라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도 많고, 또 한국에서 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듣기가 원활하지 않을 때였다.

아저씨가 뭐가 자꾸 free라고 하면서 가게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라고 했다.
우리 딴에는 혹시 순례자한테 맥주 한잔 정도는 서비스로 주나 해서 하라는 대로 했다.
그리고 맥주도 추가로 한잔씩 더 마셨다.
그런데 다 먹고 계산하는데, 파니니 값이나 맥주값이나 다 받았다.
저렴해서 둘이 15유로로 마무리는 됐지만, 도대체 아저씨가 열번도 더 말했던 free는 뭐지?
나중에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 와서 남편이 찾아보니 그 아저씨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글을 e-book으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카페에 오는 손님들에게 무료(free!)로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란다.
아저씨의 관심사는 지구환경이라는 것도 남편이 알려줬다.
나중에 우리가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간판에 북카페라고 써 있었다.
얼떨떨해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게 더 많았다.

영어 듣기도 워밍업이 덜 되면 쉬운 것도 엉뚱하게 못 알아듣는다.
뭘 무료 제공하는지 궁금해하며 그 카페에 앉아 시청 광장 앞에 북적이는 여행객들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니, 아직 걷는 걸 시작은 안했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그리고 왠지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광장에 순례길 안내소도 있어 지도도 하나 챙겼다.
아마 그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안내소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무 정보도 없이 왔기 때문에 내일 아침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남편 말이 내일 아침에 나와 보면 사람들이 배낭을 매고 한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거란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따라가면 된다나?
진짜? 뭐 그래?
아무튼 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로 대충 방향만 잡았다.
어쨌든 스페인 서쪽으로만 가면 되는 거란 말이지?!?

여기 알베르게에 한국사람이 꽤 많은가보다.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무늬 뺏지(가장 작은 것)도 샀는데, 그 상점 아저씨도 한국말로 인사를 능숙하게 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이 많이 온다는 뜻이겠지?
한국사람들 참 대단하다.

우리는 여지껏 짐 걱정밖에 하지 않았다.
짐이 무거우면 걸을 때 힘들 거라며 짐의 무게를 줄이는 데만 신경을 썼다.
남들 다 사는 조깨껍데기도 무겁다고 안 사다가 중간에 가서 사고, 남들 다 들고 다니는 산티아고 가이드 북도 안 사서 남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놓고 보고, 남들 다 짚고 다니는 지팡이도 안 사고 그나마 가지고 갔던 등산 스틱도 중간에 버렸다.
그러고도 우리는 초반 일주일은 짐 무게 줄이기에 혈안이 되었었다.
한국 사람이 꽤 있으니 그들에게 물었어도 됐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우리 스스로 겪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듯하다.
우선 산티아고의 목적은 걷는 데 있다.
걷는 데 필요한 정보야 건강상태 잘 조절하며 열심히 걸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 우리가 제주 올레길은 좀 걸어봤는데, 그 올레길이라는 것이 서명숙씨가 산티아고를 걷고 와서 착안해 구상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올레길과 비슷하리라고 생각했다.
숙소나 관광, 음식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준비한다면 여행이 주는 맛을 절감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낯선 곳에서 자기 스스로 세상을 경험하는 재미가 큰데, 낯선 곳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다 알아버리면 애써 간 해외여행의 재미를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생각이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에 마이너스가 되진 않았다.
사실 못 보고 놓친 것도 많고, 완벽하지 않아 아쉬운 것도 있고, 불필요하게 고생한 것도 많지만, 모르고 갔기 때문에 더 큰 걸 얻어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낯선 여행과 낯선 잠자리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첫 동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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